한국 정치사의 거대한 전환을 촉발한 도화선도 교육 문제였다. 권력 배경을 가진 한 체육특기생의 대입 및 학사 특혜가 파헤쳐지는 과정에서 온갖 적폐들이 드러났고 국민적 공분으로 번져갔다. 상위권 대학이 점점 더 기득권층 자녀 중심으로 돼간다는 인식이 커지고 정치권에서 대입전형을 손질하겠다는 제안도 나왔다. 전 국민이 교육전문가라는 한국 사회에서 당신은 대입전형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가?
필자가 사석, 토론회, 또는 칼럼 등을 통해 만나온 다양한 연령대의 기성세대는 요즘의 대입전형에 대해 대부분 비판적이었다. 본고사 세대, 학력고사 세대, 수능 세대 등으로 갈렸지만 대개 과거 자신이 통과한 방식에 일종의 향수를 갖고 있었다. 말도 많은 지금의 복잡한 대입전형 대신 차라리 예전처럼 시험 중심으로 투명하고 단순하게 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교육의 평가기준: 효율성, 형평성, 적절성
지금 대입전형의 대세는 수시전형이다. 수시전형 대 정시전형의 모집 비율이 7대 3이 될 정도로 대학들의 수시전형이 확대돼왔다. 정부는 고교교육 정상화를 표방하며 입학사정관전형, 학생부종합전형 등 수시전형 확대를 정책적으로 지원해왔다. 상위권 대학들은 수시전형을 선호하는 분위기고, 수시입학생들이 대학에 와서 평균적 학업성과가 더 양호해졌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수시 확대는 상위권 대학의 우수 학생 입도선매 전략이며, 그 대상은 주로 특목고, 자사고, 고소득 학군 출신이라는 의혹과 비판이 있다. 학생부종합전형의 경우 합격과 불합격의 이유를 알 수 없는 ‘깜깜이 전형’이고, 어느 고교에서 어떤 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원서 준비가 확연히 달라지는 ‘복불복 전형’이며, 내신등급이 높아야 원서를 써주고 될 만한 학생을 밀어주는 ‘몰아주기 전형’이라는 비판을 받곤 한다. 또한 전형의 종류가 너무 많고 복잡해서 차라리 수능처럼 평가의 객관성이 확보된 단일한 전국 시험에서 1점이라도 높은 학생이 선발되는 것이 공정하다는 것이다.
필자는 교육을 바라볼 때 자원배분의 일반적 평가기준인 효율성과 형평성 외에 적절성을 생각해왔다. 교육적 자원배분에서 투입 대비 산출의 양적 크기로 측정되는 효율성(efficiency), 투입 및 산출의 사회구성원들 간 격차로 측정되는 형평성(equity)뿐 아니라 생산과정과 산출의 질적 내용으로 평가해야 하는 적절성(relevancy)을 보고자 했다. 예컨대 한국과 핀란드는 만 15세 대상 국제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최상위권의 성적을 나타내왔지만 학생들의 총공부시간당 성적을 계산해보면 여전히 최상위권인 핀란드와 달리 한국은 하위권으로 떨어진다. 한국 학생의 경쟁이 도를 넘은 결과인데, 투입시간 대비 성적의 기준에서 한국 교육의 효율성이 낮다고 하겠다. 또한 사교육 지출과 부모의 교육 관여 등 투입의 계층 간 격차가 확대된 것은 공정한 경쟁의 기준에서 한국 교육의 형평성이 악화돼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정부가 나서서 경쟁 완화를 위해 절대평가를 도입하고 학원 영업시간을 규제하며, 저소득층 자녀의 교육비를 지원하는 것만으로 한국 교육을 바람직한 모습으로 이끌 수 있을까? 여전히 학생들이 학교와 학원에서 주입식 강의 중심의 수업을 하고 다섯 개 보기 중 정답을 찾는 기술을 익히는 것이 교육의 주된 모습이라면, 이런 교육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높이는 것으로 아이들이 미래사회를 살아갈 역량을 키우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교육현장에서 무엇을, 왜 ,어떻게 가르치고 배우는가라는 교육 본령의 문제, 즉 교육의 내용과 방법에 관한 질적 문제를 지나칠 수 없고, 이것이 교육의 적절성 문제다. 다시 말해 한국의 교육체제가 길러내는 학생들을 미래인재라고 부를 수 있을지의 문제다.
효율성, 형평성, 적절성의 관점에서 본 대입전형 바람직한 대입전형 방식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도 위 세 가지 평가기준을 적용해볼 수 있다. 시험 한 방으로 전국 수험생을 줄 세우는 방식은 ‘수능 로또’라는 말이 있을 만큼 가혹하지만 단일한 기준의 선별은 효율적이고 객관적이다. 정시전형의 장점은 바로 이러한 효율성과 객관성이다. 그런데 객관성이 반드시 공정성, 나아가 형평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1980년대 사교육이 금지됐던 시대에 학력고사 한 방이 가질 수 있었던 공정성은 온갖 사교육이 존재하는 시대의 수능 한 방이 가질 수 있는 공정성과 다르다. 대학에 균형선발로 입학한 학생들에 대한 일부 정시입학 학생들의 비하 태도는 수능점수가 만들어지는 과정, 특히 한두 개의 신경향 문제를 풀어야 1등급이 가능한데 이를 위해 전문가의 도움이 결정적일 수 있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과정상의 불평등이 무시된 점수의 논리는 객관성의 이름으로 정당화된 불공정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정시전형의 복원이 입시의 효율성과 객관성을 높일 것은 분명하지만 지역 및 계층 간 교육격차의 완화로 이어질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지금도 정시에서 강세를 보이는 특정 고교 학생이나 입시 사교육 중심지의 재수생에게 유리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그런데 대입전형이 고등교육은 물론 유·초·중등 단계의 교육과 평생의 학습 습관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력을 고려할 때 반드시 필요한 평가기준은 ‘적절성’이다. 객관성을 이유로 5지선다형 수능이 계속된다면 한국은 OECD 국가 중 고교 수업시간에 객관식 문제풀이 연습을 하는 희귀한 나라로 남을 것이다. 수시전형이 확대되고 다양한 비교과활동에도 주목하는 추세는 그런 활동을 통해 미래인재의 역량, 예컨대 창의, 소통, 협업, 비판적 사고 능력이 키워진다는 세계 교육계의 인식과 궤를 같이한다. 최근 4차 산업혁명이 예고하는 미래는 교육의 근본적 변화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수능 역시 선다형이 아닌 논서술형,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 등급제로 전환하고 이에 맞게 아래 단계 교육의 수업방식과 평가방식을 바꾸자는 주장을 접한다면, 이를 객관성과 효율성의 기준에서만 보고 반대하기보다는 적절성의 관점을 넣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수저계급론까지 등장한 시대에 대입전형에서 공정성, 나아가 형평성은 어떻게 제고할 수 있을까? 먼저 저신뢰사회에서 공정성을 확보하는 방식은 주관성이 개입하지 못하는 객관적인 지표를 만들어 점수로 관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교육 영역에서 진정한 공정성은 인생의 출발 및 성장과정에서의 실질적인 기회 균등과 이를 위한 차등적 공공 지원(정의로운 차등)으로 도모될 수 있다. 또한 학생선발의 주체인 대학들이 스스로의 가치를 학생의 성장, 특히 불리한 환경에 놓인 잠재력의 발굴과 만개에 둘 때 재학생들의 다양성과 교육적 형평성이 높아진다. 가계의 교육경쟁이 치열해지고 계층 간 투입 격차가 커진 상황에서 어떤 대입전형 방식을 취하더라도 정부와 대학의 적극적인 조치 없이는 형평성 확보가 어렵다. 대입전형의 내용과 방식은 적절성의 관점에서 설계해 안정적으로 운영하되, 대학의 입시 부정은 시도할 엄두를 못 내도록 엄단하며, 교육 형평성 제고에 앞장서는 대학을 언론 등 사회가 높이 평가하고 정부도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
그간의 대입전형 변천사는 그때그때의 입시제도에 대한 대중적 불만을 수용한 잦은 제도 손질로 점철됐다. 모두를 당장 만족시킬 이상적인 대입전형은 없겠지만 다음 세대의 미래를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있다. 대학은, 정부는, 정치인은, 그리고 우리 자신은 적어도 방향성 면에서 입장 정리가 됐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