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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꽃보다 아빠체감시간
유신재 한겨레신문 경제부 기자 2017년 10월호



육아휴직을 마치고 1년 만에 돌아온 회사에서 마주친 동료들의 반응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육아의 어려움을 알지도 못하는 이들이 “잘 쉬다 왔냐” 묻는 말에 상처받는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쌍둥이와 함께 1년에 걸친 감정수련 과정을 거치고 나니 그런 소리에 발끈하거나 속상해할 경지는 지났다.


당황스러웠던 것은 회사 사람들 태반이 내가 1년이나 자리를 비운 줄 모르는 눈치였기 때문이다. 대단한 환영을 기대한 것도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엊그제 본 사람처럼 지나쳤다. 간혹 오랜만이라며 인사하는 이들도 내가 1년 만이라고 밝히면 “벌써 그렇게 됐냐”며 깜짝 놀라는 모습이었다.


가 없어도 회사는 잘만 굴러가는 정도가 아니라 내 빈자리는 티도 안 나는구나, 마음 한편이 서늘해졌다. 육아휴직을 마친 엄마들 중 상당수가 회사에 다시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은, 물론 나쁜 상사와 후진적 조직문화 탓일 테지만, 이런 감정이 그들을 더욱 위축시키고 제대로 싸워볼 힘을 갉아먹은 면도 있는 게 아닐까. 여전히 대다수 아빠들이 육아휴직을 낼 엄두를 못 내는 데에는 이런 ‘사회적 자아 소멸’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도 한몫하는 게 아닐까.


좀 뻔뻔해질 필요가 있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그렇게 느낄 필요가 전혀 없다. 나도 예전에 육아휴직을 다녀온 동료들, 1년 동안 해외연수를 다녀온 선배들을 보면 “벌써 왔냐”고 했던 것 같다. ‘당신이 없는 줄도 몰랐다’는 뜻은 추호도 없었다. 각자 출입처에서 외근을 하는 기자들의 업무특성상 빈자리를 알아채기가 더 어려운 면도 있다.


그러니까 회사에서의 시간과 집에서의 시간이 다르다고 이해하면 될 일 아닌가. 더구나 지난 1년이 어디 보통 1년이었나. 대통령이 탄핵되고 새 정부가 들어서는 격변을 겪은 기자들의 1년과 집에서 아이들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놀아주기를 반복하며 보낸 1년이 다를 수밖에 없지 않나.


심리적 시간의 상대성 이론에 한동안 골몰하다가 지난 주말 아이들을 데리고 강원도의 한 리조트에 다녀왔다. 겨울이면 스키장으로 변할 산꼭대기에 토끼, 양, 염소, 다람쥐, 닭, 오리 따위를 모아놓은 작은 동물농장이 있었다. 두어 달 전에도 과천 서울대공원 어린이동물원에 다녀왔던 터라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당시 쌍둥이들은 부모의 기대와 달리 동물들을 보고도 시큰둥했다. 그때 녀석들이 제일 좋아했던 건 급수대 수도꼭지였다. 끝도 없이 물을 틀었다 잠갔다 반복하며 급수대 앞을 떠날 줄 몰랐다.


이번엔 달랐다. 아이들은 동물 우리 앞에서 ‘꺅꺅’ 비명을 지르고, “기여어(귀여워)!”를 연발하고, 팔짝팔짝 뛰며 주체할 수 없는 흥분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몇 주 전만 해도 길에서 마주치는 강아지 근처에도 못 가던 아이들이라 동물 줄 먹이는 사줄 생각도 안 했는데, 쌍둥이들은 다른 아이들이 바닥에 흘린 먹이를 주워다 토끼 입에 넣어줬다.


바깥세상 못지않게 우리 아이들도 빠르게 변하고 있었던 게다. 남의 자식은 금세 졸업하고 금세 제대하고 금세 결혼한다더니, 매일 가까이 붙어 지내는 내 자식들의 변화에는 둔감했나 보다. 이제 출근 전에만 잠깐씩 아이들 얼굴을 볼 수 있게 됐다. 아이들의 시간이 더 빨라지게 생겼다. 한눈팔다간 놓치는 게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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