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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희삼의 인적자본론선생님, 벌써 세 시가 됐어요?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KDI 겸임연구위원 2018년 02월호





최근 초등학교 저학년의 오후 하교시간을 늦추는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 1~2학년은 한 시, 3~4학년은 두 시, 5~6학년은 세 시에 마친다. 주된 대립 구도는 초등학교의 돌봄기능을 강화할 때 기대할 수 있는 편익을 강조하는 입장과 학교와 교사의 추가적인 부담을 강조하는 입장 사이의 충돌이다. 관련된 주체들의 입장을 상상해보자. 초등학생 자신의 입장은 매우 중요하지만 나중에 언급하기로 한다.

우선 초등학교 학부모는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 그만큼 더 일할 수 있고 학원비도 덜 쓸 수 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유치원보다 일찍 마치는 탓에 직장을 그만둬 경력단절여성에 합류하는 엄마가 늘어난다. 초등학생의 사교육 참여율(통계청, 2016년)이 80%(중학생 63.8%, 고등학생 52.4%)에 달하는 것도 방과 후 돌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학원 뺑뺑이’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교사 입장에서는 교대를 나와 어렵게 교사가 됐는데, 학교가 돌봄기능도 하라는 것은 교육에 보육의 책임까지 얹는 것처럼 느껴진다. 외부강사 중심으로 방과 후 활동을 늘리는 것도 그 시간 중 일어날지 모르는 안전사고 등에 대한 책임을 학교와 교사가 지고 있는 한 달갑지 않다.

 

학교의 돌봄기능 강화를 바라는 사회적 수요에 직면한 교육계

이런 형국이니 학교의 돌봄기능 강화를 바라는 사회적 수요에 직면한 교육계의 반응은 수세적이고 다른 지원책 없이는 반대하는 입장이 되기 쉽다. 그런데 이 이슈를 여성의 경제활동 증가에 따라 늘어난 보육 수요를 학교가 일부라도 감당해야 하는 것 아닌가의 문제로 정리하는 것은 그렇게 지혜로워 보이지 않는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나이지리아 속담을 구현할 만한 지역사회의 공동체 의식이 없다. 또한 학생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무관하게 모두 ‘우리 아이들’이라는 생각으로 교사와 부모들이 합심해 아이들의 중퇴를 막고 성적을 높였던 과거 미국 가톨릭계 학교가 보여준 사회자본도 없다. 빈 교실을 어린이집으로 활용하는 청원은 학교의 사고 책임 부담을 덜어주는 방식으로 이뤄냈지만, 보육과 교육을 구분하는 교사들에게 돌봄에의 동참을 요청하기는 어렵다.

해법은 무엇일까?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신의 것은 신에게’라는 말을 떠올린다. 초등교육이 돌봄의 분담 요구에 끌려가는 대신 새로운 교육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가는 것이다. 2001년 55만명이던 출생아 수가 2016년 40만명, 2017년 36만명까지 떨어진 상황이니, 초등학생 수는 앞으로 더욱 줄어들 것이다. 교육 전문가인 교사들은 돌봄의 주체가 아닌 대신, 교육을 통해 아이들 한명 한명을 고령사회 한국의 미래를 짊어질 생산성이 높은 인재로 길러내는 데 기여해야 할 사명이 있다.

이 중대한 사명은 인공지능을 필두로 한 4차 산업혁명이 바꿔놓을 직업세계 속으로 들어갈 아이들에게 필요한 핵심역량을 키우는 교육을 통해 수행할 수 있다. 인간이 인공지능에 밀리지 않는 의사소통 및 공감능력, 복잡한 문제를 협력해 해결하는 능력 등이 대표적인 미래역량이다. 그리고 이를 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들 간의 수평적 상호작용이 많은 수업이다. 놀이를 겸한 활발한 수업에서 출발해 아이들끼리 서로 가르쳐주는 수업, 모둠별 토론 및 발표와 협력적 문제 해결 시간이 많은 수업, 학생들 스스로 찾아낸 문제를 협동해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공유하고 결과를 발표하는 프로젝트 학습 등이다. 이런 교육은 학습자가 흥미와 생동감을 느끼고 교우관계도 개선되며, 교사 또한 더 큰 보람과 효능감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상적이다. 전통적인 주입식 수업은 주어진 시간에 교과서 진도를 많이 나갈 수 있지만, 이제 이런 수업은 명을 다해 간다. 스마트폰만 꺼내면 교사가 넣어주려는 지식 이상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세상, 자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교실이 이를 대변한다. 한국은 교수학습법의 국제비교에서 학생들 간의 협력, 즉 수평적 수업의 빈도가 낮고, 일방적 강의, 즉 수직적 수업 경향이 강한 나라로 분류됐다.

그런데 학생들 간의 상호작용이 많은 수업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거꾸로 교실(ipped classroom)에서 수업 중에 일방적 강의를 듣는 대신 동영상 강의를 미리 보고 와서 수업에서는 학생들 간의 상호작용이나 교사와 학생 간의 상호작용 시간을 많이 갖도록 하는 데는 수업 중에 이를 다 하기가 어렵다는 이유도 있다.

 

해법은 돌봄의 분담 요구에 끌려가는 대신 새로운 교육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가는 것

OECD 교육지표를 보면 2013년 기준 한국 초등학교의 수업시수는 연간 632시간으로 OECD 평균인 802시간(최고는 캐나다로 919시간)보다 훨씬 짧다. 최장의 근로시간을 가진 한국이 초등 수업시수는 가장 짧은 편이니, 초등학교 학부모들이 일·가정 양립에 어려움을 겪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전 학년이 같은 시간에 마치는 나라들이 다수인 가운데, 학년별로 수업시수가 다른 것은 한국과 일본이 오히려 특별하다. 더욱이 한국은 1~2학년 560시간, 3~4학년 657시간, 5~6학년 725시간으로 일본(1학년 638시간, 2학년 683시간, 3학년 709시간, 4~6학년 735시간)보다 시수가 짧고 저학년에서는 더 짧다. 보육이 아닌 교육의 차원에서도 수업시수를 늘릴 여지가 있는 것이다.

또한 한국 초등학교는 대부분 40분 수업 후 10분 휴식의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 초등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적 한계를 고려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수업을 블록처럼 묶어 80분 동안 다채로운 활동을 하고 휴식시간을 20분으로 늘려 충분히 쉬게 한 일부 초등학교에서 교육적 효과와 수업만족도가 높게 나타난 사례도 있듯이 수업방식에 따라 긴 수업이 좋을 수 있다.

이제 초등학생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생각해보자. 무엇이 아이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가장 좋은 길인지의 문제다. 아이가 세 시까지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는지에 따라 아이의 현재 행복감과 미래인적자본이 달라질 수 있다는 관점에서 이 문제를 보자.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아이들이 각자의 부모가 쓸 수 있는 돈이나 시간과 관계없이 최고의 교수학습법 전문가인 담임 선생님이 이끌어주는 학교 수업에서 또래 친구들과 협력하고 표현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활발한 상호작용을 하면서 즐거워하며 미래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오후에 아이 혼자 집에 방치돼서는 할 수 없고, 설령 엄마가 있더라도 둘이서는 할 수 없고, 아이의 미래보다 영리가 우선인 학원에 맡겨서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다시 교사의 입장으로 돌아가 보자. 수평적 상호작용이 많은 수업은 모둠별 활동에 필요한 시간을 아이들에게 충분히 줘야 한다. 교사가 수업시간이 늘어난 만큼 강의교재를 추가로 만들거나 목청을 더 쓸 필요는 없으며, 기다려주고 지켜봐야 한다. 아이들이 생각하고 함께 만들어낸 것이 새로운 지식과 배움이 되는 구성주의적 학습모형에서 교사도 한 명의 참여자요, 학습자다. 또한 초등학교 1~2학년 수업이 지금처럼 1시에 끝나도 교원은 근무시간(08:00~16:30) 동안 학교에 있어야 한다. 교무실에서 행정업무와 잡무를 하는 시간이 줄면, 그 시간에 본연의 업무인 수업을 더 멋지게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입장을 생각해보자. 초등학교의 돌봄기능 제고는 학부모의 여망을 안은 보육당국의 요청에 교육계 반발을 의식한 교육당국이 난처해할 사안이기 쉽다. 그런데 인공지능 시대의 생존기술이라고도 하는 사회적 기술(social skill), 즉 동료들과 상호작용하며 협업하는 능력은 어린 시기에 크게 형성된다. 따라서 교육계가 수업혁명을 통해 이를 선도하겠다고 선언하며, 초등학교의 시수 확대도 이 관점에서 스스로 주도하는 방법도 있다.

 

미래인재를 기르고 격차를 예방하는 교육 본연의 사명에 중심 두길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인구의 감소에 따라 초등교사 1인당 학생 수는 2000년 32.1명에서 2017년 16.4명으로 격감했고, 학급당 학생 수도 같은 기간 36.5명에서 22.3명으로 줄었다. 교원의 주당 수업시간도 2005년 26.8시간에서 2016년 21.2시간으로 줄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원 임용 적체가 심하지만 행정당국과 재정당국이 교원 증원에 쉽게 동의하기 어렵고, 오히려 내국세의 일정비율로 나가는 지방교육재정 교부금이 기존 시스템에서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는지 주시하는 형국이다. 그러나 교육계가 고령사회의 저성장·고부담 충격을 극복할 미래인재들을 혁신적인 교육방법으로 길러내겠다는 비전과 실천계획을 보여준다면, 추가로 필요한 인력과 재정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도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는 대규모의 교육실험에 막대한 돈을 투입했지만 교육적 성과는 크지 않았던 경험을 갖고 있다. 교사를 추가로 채용하고 교실을 늘리는 데 엄청난 비용을 들였지만, 소규모 학급이라고 반드시 더 나은 성과가 나타나지는 않았던 것이다. 효과가 나타난 경우는 학급당 학생 수 20명 이하에 맞게 교수학습법의 전환이 이뤄졌을 때였다. 그리고 학급당 학생 수 감축의 긍정적인 효과는 저학년일수록, 학습부진 학생일수록, 열악한 환경의 학생일수록 크게 나타나고 장기적인 효과도 있었다.

한국에서도 초등학교부터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일 수 있게 지원하되, 교사가 교수학습법을 바꾸고 개별 학생에 대한 피드백을 늘린다면 교육격차 해소에도 기여할 것이다.

한국의 초등학교 하교시간을 늦추는 논쟁은 좀 더 미래를 볼 필요가 있다. 단기적으로 정규수업 연장이 여의치 않아 방과 후 수업을 늘리는 방식을 모색할 수도 있고, 일단 점심시간이나 휴식시간을 늘리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의 돌봄기능 제고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좀 더 충분한 시간 동안 좀 더 작아진 학급에서 좀 더 상호작용이 많은 수업을 통해 미래인재를 기르고 격차를 예방하는 교육 본연의 사명에 중심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선생님, 벌써 세 시가 됐어요?” 수업에 흠뻑 빠진 초등학교 저학년들이 이렇게 묻게 될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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