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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경제학 소믈리에사교육 의존도 세계 1위, 한국 교육의 민낯
남기곤 한밭대 경제학과 교수 2018년 02월호



2016년 한 해 동안 초·중·고교 학생들의 사교육비로 지출된 금액은 총 18조원이었다. 올해 유아 및 초·중등교육 부문에 투입될 교육부 예산이 대략 54조원 규모이니, 공교육에 투입되는 비용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사교육비로 지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의 학부모들은 왜 이처럼 자녀 사교육에 많은 돈을 쏟아붓고 있는 것일까?
자식을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런 질문 자체가 이상하다. 사교육이라도 시켜서 자녀의 성적을 올리고 좋은 대학에 입학하도록 돕는 것은 부모로서 당연한 의무 아닐까? 오히려 정말 궁금한 것은 사교육 문제가 왜 한국에서만 이렇게 논란이 되는가 하는 점이다. 해외 뉴스에서 다른 선진국의 사교육 문제가 이슈로 보도된 경우는 잘 기억이 나지 않으니 말이다. 외국에서는 부모가 자녀의 교육과 장래 출세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일까? 그래서 사교육이 극성을 부리지 않는 걸까? 우선 다른 나라들의 사교육 실태 동향을 살펴보자.


대부분의 OECD 국가에서는 청소년이 사교육에 참여하는 경향 자체가 적어
필자가 2008년 『한국경제학보』에 발표한 논문에서는 OECD에서 실시하고 있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Program for International Study Assessment) 2003년 자료를 이용해 사교육시간에 대한 국제적인 비교분석을 실시했다. PISA는 OECD 국가의 만 15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읽기, 수학, 과학 분야의 학업성취도와 문제해결 능력을 측정하는 조사다. 2000년부터 3년 간격으로 계속 시행되고 있는데, 잘 알려져 있듯이 지금까지 모든 조사 시점에서, 그리고 모든 과목에서 한국 청소년의 학습능력은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이 조사에는 학업성취도 점수 외에도 학생 개인과 학교 수준에 대한 다양한 설문조사 결과도 포함돼 있는데, 필자가 관심을 가졌던 사항은 일주일 동안 과외나 학원 같은 사교육에 참여한 시간에 관한 정보다. 논문의 핵심적인 분석 결과는 이렇다. 한국의 15세 청소년의 일주일간 학습시간은 49.4시간으로, 30개 OECD 국가들 중 가장 길다. 핀란드 학생에 비해 20시간 정도가 길고, 일본 학생에 비해서도 17시간이나 길다. 학습시간 중 학교에서 이뤄지는 보충수업에 6.6시간, 학교 밖 사교육에 4.7시간이 사용된다. 모두 세계적으로 많은 수준이다. OECD 국가들의 평균치는 보충수업 1.4시간, 사교육 1.1시간이다. 한국과 사교육 시간이 유사한 국가는 그리스, 멕시코, 터키 정도이고, 이 외 대부분의 OECD 국가에서 청소년의 사교육 시간은 1시간을 밑도는 추세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사교육 시간과 학업성적과의 관련성이다. 상관계수를 구하든 회귀분석을 하든, 한국에서는 이 두 변수가 매우 강한 플러스의 값을 보이고 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일수록 사교육을 더 많이 받는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와 같은 상황은 매우 예외적인 경우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두 변수 간에는 오히려 마이너스의 상관성을 보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우리나라처럼 플러스 값을 보이는 경우는 체코, 그리스, 일본 등 손에 꼽히는 정도인데, 이들 나라에 비해서도 한국은 두 변수 간 상관성의 정도가 훨씬 크다.
이러한 분석 결과는 대부분의 OECD 국가에서는 청소년이 사교육에 참여하는 경향 자체가 적을 뿐만 아니라 주로 학업성적이 뒤처져 있는 학생들이 이를 보충하기 위한 치료전략(remedial strategy) 차원에서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한국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성적을 더 높이기 위한 강화전략(enrichment strategy) 차원에서 사교육 참여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사교육 의존도 높은 이유, 좋은 대학에 입학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프리미엄이 크기 때문
결국 사교육은 어쩔 수 없는 숙명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논문의 분석 결과는 보여준다. 자본주의시스템에서 선호되는 일자리와 그렇지 않은 일자리가 있기 마련이고, 어느 나라 부모나 자녀가 성공하기를 바라며 이를 위해 자녀의 학업성적이 높아지도록 도우려 한다. 그럼에도 한국처럼 사교육에 의존해 자녀의 성적 향상에 전념하는 것은 극히 예외적 현상이다.
왜 그럴까? 가장 의심을 받아온 ‘범인’은 공교육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공식적인 교육이 부실하니 어쩔 수 없이 사교육에 의존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공교육에 투자되는 예산이 적어 콩나물시루와 같은 학급에서 부실한 수업을 받기 때문일 수도 있고, 평준화체제로 인해 학습능력이 서로 다른 학생들이 함께 섞여 수업을 받다 보니 모든 학생들이 학교 교육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모두 충분히 개연성 있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러한 요인들이 사교육의 ‘주범’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지난 10여년 동안 학교 교육의 여건은 크게 개선됐다. 유아 및 초·중등교육 부문의 교육부 예산은 2008년 31조원에서 2018년 54조원으로 연평균 5.8%씩 증가해왔다. 이 기간 동안 학생 수는 크게 감소해 중학교의 경우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2008년 18.8명에서 2017년 12.7명으로 줄었다. OECD 평균인 14명보다도 더 적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사교육 지출은 감소하지 않고 있다. 지난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고교 다양화 프로젝트가 추진돼 전국에 수십개의 자사고가 설립됐고, 평준화 시스템은 사실상 와해됐다. 그렇다고 사교육비가 줄어들지는 않았다. 특목고나 자사고를 다니는 학생이라고 해서 사교육을 덜 받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는 많다. 이러한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중학교 단계 사교육이 극성을 부리는 현상들도 자주 관찰된다. 한국의 부모들만 유독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라면,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사교육 의존도가 높은 이유는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입학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프리미엄이 실제로 크기 때문일 것이다.
선망이 되는 소수 일자리의 지나친 고수익, 여기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예상되는 불안정한 고용과 낮은 임금 수준의 막다른 일자리들, 개인적으로 헤쳐나갈 수밖에 없는 노후의 고단한 삶. 불평등한 노동시장 구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수한 대학에 입학하는 것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는 사회. 사교육에 매달리는 근본 원인은 바로 이와 같은 사회적 불평등에서 찾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희망이 있다. 노동시장 구조를 보다 평등하게 만들고 개인 삶의 어려움을 사회 공동체가 보듬어 더불어 같이 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면, 지금처럼 개인의 출세에만 목숨을 걸고 사교육에 전념하는 극단적인 모습은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어렵거나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대부분 OECD 국가의 일반적 모습이기도 하다. 사교육에 낭비되는 아까운 비용을 줄이고, 이 학원 저 학원에 내몰리다 축 처진 한국 청소년의 어깨를 추켜올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다.


참고문헌
· 남기곤, 「“대학 진학은 서울로”, 합리적인 선택인가?」, 『경제발전연구』, 제18권 제1호, 2012, pp. 8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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