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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희삼의 인적자본론‘다이내믹 코리아’와 ‘수저계급론’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KDI 겸임연구위원 2018년 03월호



“부디 대한민국에서 처음 가져본 행복과 꿈을 뺏지 말아주십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와 20만명 넘는 동의를 받았던 가상통화(암호화폐) 규제 반대 글의 일부다.
가상통화 투자는 ‘수저계급론’이 팽배해지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잘만 하면 수저 색깔을 바꿀 수 있는 기회로 여겨졌다. 2017년에 연중 최고 20배까지 뛰었던 비트코인의 하루 세계 거래 중 21%가 한국에서 이뤄지기도 했다. ‘김치 프리미엄’이라 불릴 정도로 한국 거래소의 비트코인 가격이 유독 높았던 것은 그만큼 가상통화 단타거래를 통해 돈을 벌고자 하는 한국인의 욕구가 강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외의 다른 가상통화까지 포함하면 전 세계 거래액의 30%가 국내 거래액이었다. 특히 가상통화 투자자의 60%인 180만명이 20~30대였을 정도로 컴퓨터에 익숙하고 다른 희망은 없는 청년층 일부에게 잠시나마 꿈을 꾸게 했다.





韓 대학생 절반, 성공요인 1순위가 부모의 재력이라고 인식
필자는 2017년에 한국, 중국, 일본, 미국 4개국 대학생 각 1천명씩, 총 4천명을 대상으로 청년의 성공요인에 관한 인식을 조사했다. “귀국에서 지금 청년들이 성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 무엇입니까? 재능, 외모, 성격, 노력, 부모의 재력, 인맥, 우연한 행운 중에서 3순위까지 골라 주십시오.”
〈표〉에서처럼 한국 대학생의 절반은 청년의 성공요인 1순위가 부모의 재력이라고 인식했다. 이러한 수저계급론적 사고는 다른 3개국 대학생들에게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중국과 일본 대학생은 재능을 1순위로, 미국 대학생은 노력을 1순위로 꼽은 경우가 가장 많았다. 이들 3개국에서 부모의 재력은 2, 3순위로도 지목되는 빈도가 낮았다. 그러나 한국 대학생에게는 청년의 성공요인 2순위 역시 수저계급론과 관련된 인맥이었고, 재능은 3순위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지목됐다. 노력은 중국과 일본 대학생에게는 2순위로 많이 지목됐으나, 한국 대학생에게 노력은 3순위에서도 최빈 지목대상이 아니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1996~2015년에 매년 펴낸 자산 10억달러(1조2천억원) 이상의 억만장자 명단(2015년에 70개국 1,826명, 한국은 30명)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세습형 부자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억만장자 중 창업 등 자수성가형 부자가 아닌 상속형 부자의 비율(세계 평균 30.4%)은 한국 74.1%, 미국 28.9%, 일본 18.5%, 중국 2%로 4개국 중 한국이 압도적이었다. 
이러한 한국 청년의 숙명론적 인식이 가상통화 열풍과 규제 반대 국민청원의 한 배경이 됐을 것이다. 어쩌다 청년들에게까지 계층상승의 동아줄이 인적자본 투자가 아니라 가상통화 투기가 됐을까?
한국은 과거 압축적 경제성장과 함께 남미 등에 비해 양호한 소득분배를 보였었고, 원조를 받다가 주는 나라로 탈바꿈했다. 또한 한국이 아시아의 4마리 용 가운데 하나였듯 일간지 사회면에는 개천용에 비유되는 성공 사례가 드물지 않게 실렸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내고 정보화에도 발 빨랐던 자타인정 ‘다이내믹 코리아’, 세계은행이 ‘동반성장(shared growth)’의 모범국으로 치켜세웠던 한국이 어떻게 수저계급론에 눌린 사회가 됐을까?
우선 계층 대물림의 추이를 확인하기 위해 필자의 조사를 바탕으로 한 〈그림〉을 보자. 현재 한국의 중장년 성인을 기준으로 할 때 교육수준이나 사회경제적 지위의 대물림(아버지와 아들 간의 상관계수) 정도는 당대(아버지와 본인 간)에는 전대(할아버지와 아버지 간)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 그러나 후대(본인과 아들)에 와서는 다시 대물림 정도가 높아진 모습을 보여 세대 간 계층 세습이 완화됐다가 다시 강화된 V자형 궤적을 그리고 있다.
그렇다면 과거에 다이내믹 코리아, 즉 세대 간 계층 이동성의 상승을 가능하게 했던 요인은 무엇일까?
먼저 역사적 환경으로서, 일제강점기에 전근대적 신분제가 해체되고 미군정이 능력주의 인사관행을 도입해 과거로 치면 천출의 자식도 근대교육을 받으면 부모와 다르게 살 수 있었다. 특히 지주제를 해체한 농지개혁은 농지 소유 불평등을 개선한 획기적인 사건이었는데, 농지 소유에 3정보(1정보는 약 3천평)의 상한을 둬 농가의 생산조건 차이가 격감했다. 더욱이 한국전쟁과 인플레이션에 의한 실물자산과 금융자산의 소실은 경제개발 전 단계의 자산 분배를 매우 평등하게 만들었다.






세대 간 계층 대물림 완화됐다가 다시 강화
경제 환경도 사회적 이동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대부분의 국민이 빈농이었던 환경에서 1960~1970년대 진행된 수출주도형 공업화는 제조업 일자리를 대량 창출하고 수많은 농촌 청년들을 도시로 유인했다. 고용 창출을 동반한 고도성장은 성장의 과실이 고용을 통해 분배되는 낙수효과를 보여줬다. 정부가 곡물의 수매가격보다 방출가격을 낮게 책정한 이중곡가제는 농가소득과 도시노동자의 생활안정에 도움이 됐다. 1980년대 중후반에는 3저 호황에 따른 유휴노동력 고갈과 노동운동 고양으로 실질임금도 상승했다.
사회 환경에서는 교육의 역할이 핵심적이었다. 한국 정부는 산업화에 필요한 중위수준의 인력 공급을 위해 공교육 확대에 우선 투자해 초·중·고 취학률을 단계적으로 크게 높여나갔다. 40여년 전 초등학교에 입학한 필자의 기억에도 콩나물시루 과밀 학급으로 2부제 수업을 했지만 학교에 못 간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 또한 계층을 초월한 교육열로 아끼던 소를 팔아 자식을 대학에 보낸 사연이 많아 한국의 대학은 ‘진리의 상아탑’ 대신 ‘우골탑’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1969년부터 시행된 중학교 무시험 추첨 배정, 1974년 이후 진행된 고교 평준화, 1980년대의 사교육 금지 조치는 계층 간, 지역 간 교육 격차를 크게 줄이는 역할을 했다. 실제로 이 시기의 평등주의적 교육정책의 영향을 받은 세대에서 계층 대물림이 상대적으로 약하게 나타났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상황은 바뀌었다. 세대 간 계층 이동성이 하락하는 조건들이 집중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역사적으로는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한국도 1990년대 초중반 이후 개방경제체제로의 전면적 이행을 경험했다. 산업자본에 대한 금융자본의 영향력이 커지는 금융화가 진행되고 노동절감적 기술이 도입되면서 제조업 노동의 입지가 약화됐다.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단행된 구조조정과 대량해고 및 연쇄폐업은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큰 상흔을 남겼다. 
경제 환경 면에서도 개방에 따른 이득은 수출대기업과 늘어난 유동성이 부풀린 자산가격 프리미엄을 향유하는 자산소유층에 집중됐다. 1990년대 초중반부터는 소득분배 개선 추세가 멈추고 양극화 조짐이 나타났다. 노동시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격차가 커져 이중구조가 심화됐으며, 사회 초년부터 고용이 불안정한 ‘미생’들이 늘어났다.
특히 중국의 본격화된 산업화는 ‘메이드 인 차이나’로 교역재의 세계 가격을 낮췄으나 한국의 해당 제조업에는 치명적이어서 노동자 퇴출이 일어났다. 과거 한국의 농촌 유휴인력을 도시 제조업이 흡수하던 시절 잠자던 중국경제가 깨어나면서 일어난 일이니, 한국의 고도성장은 마오쩌둥의 덕을 보다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에 의해 종식된 꼴이라는 촌평도 과히 틀리지 않다. 기술 모방과 저비용 양산 위주의 요소투입형 외연적 성장체제가 수출 무대에서 훨씬 크고 강력한 추격자를 만난 것이다.
이 상황에서 생산성 향상과 기술진보를 통해 혁신주도형 내생적 성장체제로의 전환을 이룰 만한 역량이 부족하고 좀비기업의 존재 등 요소 활용의 효율성도 떨어지는 한국경제에서 잠재성장률의 하락은 필연적이었다. 더욱이 수출제조업의 아웃소싱 및 자동화의 확대는 과거 제조업의 고용 확대가 중심이 됐던 낙수효과의 약화와 고용 없는 성장의 도래를 의미했다. 퇴출 노동자와 명퇴자가 끊임없이 몰려드는 저수지인 영세자영업은 낮은 생산성과 과잉팽창으로 구조적 몰락이 예견돼 있었고, 이는 중산층 붕괴와 신용불량자 양산을 가속화했다. 
사회 환경에서도 1980년대 중반 이후 하락하던 소득불평등도가 1990년대 중후반부터 추세가 바뀌고 외환위기 이후 2000년대 들어 급등하면서 계층 간 대물림이 강화될 조건이 형성됐다. 실제로 국가별 지니계수와 세대 간 소득탄력성(부모 소득이 높을수록 자녀 소득이 높은 정도) 간의 비례관계(이른바 ‘위대한 개츠비 곡선’)는 주로 소득불평등이 교육투자의 격차를 통해 다음 세대의 소득불평등으로 재생산되는 경로로 설명되고 있다. 2000년 4월 사교육 금지 위헌 판결과 대학원을 나온 고학력 청년의 창업 분야 1순위(44%)가 교육서비스업일 정도로 팽창한 학원사업은 2000년대 들어 확대된 소득불평등과 맞물리면서 계층 간 사교육비 지출 격차로 나타났다. 통계청의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에서도 2016년 기준 월 소득 700만원 이상 가구는 100만원 미만 가구의 8.9배를 지출했다.


저마다의 재능과 노력에 기반한 꿈을 갖고 사는 사회로… 사회 이동성 복원 중요해
대학입시는 한국 사회에서 계층상승 욕구와 계층유지 욕구가 충돌하는 전장이다. 과거에는 평준화 지역의 일반고 출신이나 어려운 집의 학생에게도 명문대 입학의 기회가 꽤 열려 있어 캠퍼스에서는 학생들의 사투리와 옷차림으로 지역적·계층적 다양성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교육 사다리의 상징이었던 명문대 입학은 갈수록 특목고·자사고 학생들의 차지가 돼가고, 그런 고등학교에 가려면 아주 일찍부터 치밀한 선행학습 사교육으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 정석처럼 여겨지는 상황이 됐다. 입학사정관제도(학생부종합전형) 등 기존의 획일적 점수 경쟁을 탈피해 학생의 적성과 잠재력으로 선발한다는 수시전형 비율이 상위권 대학 중심으로 상승해온 가운데, 이것이 복잡하고 불투명하며 불공정한 전형방식이라는 비난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다양한 수시전형과 수능 위주의 정시전형 중에 무엇이 교육 사다리에 조금이나마 가까운지에 대한 갑론을박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교수가 고등학생 자녀를 논문 공저자로 올리는 세태, 불평등과 격차를 비판하지만 자녀 입시를 위해서 대치동에 집을 구하는 세태가 우리 현실이다.
그렇다면 대학 진학은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경제적 가치를 발휘하고 있을까? 저학력 대비 대졸자의 임금 프리미엄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꾸준히 상승해왔다. 그런데 대졸자 공급이 급증한 2000년대에 들어 4년제 대학 출신의 20%, 전문대 출신의 50%는 고졸 평균 미만의 임금을 받게 된 데 반해 명문대 임금 프리미엄과 고액 연봉이 증가하는 등 대졸자 내에서도 임금의 양극화가 진행됐다. 상위권 대학 입학을 위한 경쟁이 갈수록 격화되고 조기화된 것도 이런 상황과 관련이 있다.   
이렇게 한국은 압축성장과 이를 뒷받침한 교육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에서 젊은 세대 중 상당수가 후대에 씨를 남기고 싶지 않다며 ‘헬조선’이라는 별명을 붙인 나라가 됐다. 청년들이 가상통화 투자 대박처럼 신기루 같은 꿈이 아니라 저마다의 재능과 노력에 기반한 꿈을 갖고 사는 활력 있는 사회로 변화할 수 있을까? 이미 글이 길어진 여기에 그 방법과 가능성에 대해 풀어놓을 요량은 아니다. 대신 필자와 동갑내기인 어떤 판사가 학창 시절 한국사와 중국사를 공부하면서 수천년간 국가(왕조)의 발전기와 패망기에 나타난 공통점을 발견한 것을 인용하며 사회 이동성 복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발전기의 특징은 균등분배를 지향하는 토지개혁, 귀족의 세 부담 증가, 국가 직영 최고 교육기관 확대 및 공정한 과거제도를 통한 신진 엘리트의 등용에 있다. 패망기의 특징은 소수 귀족의 토지 사유화 증가로 인한 대농장화, 백성의 각종 세 부담 증가, 귀족 자제 중심의 사학 증가, 고위 관리 자제를 특채하는 문음, 음서제도 확대를 통한 지배계급의 세습 구조 공고화, 과거제의 붕괴 등을 들 수 있다. 이 같은 병리 현상이 계속되면, 결국 사회적 불만이 극에 달해 민란이 일어난다.”(문유석, 「개인주의자 선언」, ‘개천의 용들은 멸종되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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