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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경제학 소믈리에스크린 독점과 차별적 상영배정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2018년 03월호



2009년 연말 개봉된 영화 〈아바타〉는 1,250만명의 관객을 동원해 지금까지 개봉된 외국 영화 가운데 가장 많은 관객이 찾은 작품으로 기록됐다. 이 영화는 개봉 초기 거의 1천개의 스크린에서 상영됐는데, 이는 당시 우리나라 전체 스크린의 절반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많은 다른 영화들은 상영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한편에서는 스크린 독점에 대한 비난이 쏟아진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많은 관객들이 원하는 영화를 더 상영하는 것이 무슨 문제냐는 반론이 제기됐다. 이 문제는 지난 10여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거의 매년 반복되고 있는 스크린 독과점의 한 사례다.


상영관 상위 3사가 전체 스크린의 92% 차지… 제작비 낮은 영화일수록 차별적 상영배정
 영화가 전체 스크린의 절반을 장악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영화의 품질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우리나라 영화산업의 두 가지 구조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첫째는 상영관의 독과점적 구조다. 2017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스크린의 92%는 상영관 상위 3사가 지배하고 있다. 배급사는 스크린을 많이 확보하기 위해 여러 극장주들과 협상할 필요 없이 대형 상영관 기업과만 계약을 맺으면 된다.
둘째는 이 상영관 상위 3사가 모두 배급사 또는 제작사를 사실상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럴 경우 상영관 3사는 자신이 보유한 배급사 영화에는 유리하게 상영배정을 해주고, 경쟁배급사 영화에는 상영배제를 하는 차별을 할 수 있다. 많은 영화산업 관련 인사들은 상영관 3사가 차별적 상영배정을 통해 자신이 보유한 배급사 영화의 흥행을 지원하고 있으며, 이것이 더 좋은 영화들이 상영될 기회를 빼앗음으로써 영화산업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비판한다. 물론 상위 3사는 이러한 비난이 부당하다고 반박한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경제학자들은 스크린 독과점 현상이 실제 존재하는지, 만일 그렇다면 왜 이런 정책을 쓰는지에 대해 다양한 실증연구를 수행해왔다. 그리고 대부분 상영관 3사가 다른 배급사에 비해 자신의 배급사 영화에 더 많이 상영배정을 해준다는 결론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의 흥행성과 상영관 간의 관계를 고려해보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남게 된다. 〈아바타〉처럼 흥행성이 높은 영화에도 차별적 상영배정이 이뤄지는 것일까? 예를 들어 상영관 3사와 관련이 없는 배급사가 〈아바타〉를 수입했다고 하자. 그리고 이미 여러 가지 정보는 이 영화가 크게 성공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자. 이런 상황에서 상영관 3사는 자신의 계열사가 수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바타〉와 같은 대작의 상영을 거부할까?
이러한 추론은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단순히 그런 현상이 있느냐 없느냐로 질문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짚지 못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영화가 블록버스터급이냐 아니면 중저예산을 들인 보통 규모의 영화냐를 구분해 스크린 독과점이 미치는 여부를 파악해야 함을 의미한다.


새로운 경쟁사의 영화시장 진입 제한 vs 원활한 자금공급 이뤄져 블록버스터급 영화 탄생 가능
최근 정필문(성균관대 경제학과 박사과정)은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우리나라에 수입된 외국 영화를 대상으로 제작비에 따라 스크린 배제 현상이 있었는지를 분석했다. 분석 대상을 외화로 한정한 이유는 우리나라 영화의 경우는 신뢰할 만한 제작비 정보를 얻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정필문의 분석에 따르면, 제작비가 낮은 영화일수록 차별적 상영배정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중저예산 영화의 경우 상영관들은 자신의 배급사 영화에 적게는 50%에서 많게는 70%까지 더 많은 상영배정을 해주고 있었다. 반면 고예산 영화일수록 배급사별 차별적 상영배정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작비와 차별적 상영배정 간에 음의 상관관계가 나타나는 이유는 경쟁배급사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상영배제하면 그만큼 관객을 잃는 기회비용을 치르게 되기 때문이다. 반면 타 배급사의 저예산 영화는 더 적은 기회비용을 치르고도 손쉽게 퇴출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제작비가 낮은 영화시장에서만 차별적 상영배정 행위가 발생한다고 스크린 독과점의 심각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차별행위는 새로운 경쟁사의 영화시장 진입을 막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에 더 심각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새로 진입하는 영화사는 기존 영화사에 비해 자금력과 영화제작 경험이 부족한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자금력이 부족한 영화사는 상영기회의 박탈로 한두 번만 흥행에 실패해도 영화산업에서 퇴출될 것이다. 경쟁자가 줄어들면 결국 시장은 독과점화되고 소비자 후생은 감소할 것이다.
스크린 독과점 논란은 공정경쟁뿐 아니라 영화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중요한 이슈다. 스크린 수는 제한적이기에 한 영화에 과도하게 스크린이 집중되면 그만큼 다른 영화의 상영기회가 줄어들고, 관객들의 선택의 폭이 줄어들게 된다. 그리고 창의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영화를 제작하는 예술인들에게 스크린 독과점은 더욱 큰 벽으로 와닿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낮은 예술영화가 극장에 상영되는 경우도 더욱 줄어들 것이다. 〈워낭소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와 같은 작품이 극장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즉각적으로 정책당국이 개입해서 규제를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영화산업에서 수직결합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주는 측면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부 연구에서는 배급사와 수직결합된 상영관이 다른 독립상영관에 비해 영화를 더 다양하게 상영한다는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상영관과 배급사의 수직결합으로 인해 원활한 자금공급이 이뤄져 〈명량〉과 같이 블록버스터급 영화가 탄생했다는 주장도 있다. 중저예산 영화에 대해서만 차별적 상영배정이 존재하니 상영관 3사의 계열사들이 중저예산 영화를 제작하거나 배급하는 것을 제한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을 기준으로 중저예산과 고예산을 구분할지가 쉽지 않다는 어려움이 있다.
스크린 독과점 문제는 이처럼 영화산업 구조, 공정경쟁, 문화적 다양성, 기회의 공정성, 소비자 선택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다. 매년 어김없이 똑같은 논란이 반복되는 이유는 그만큼 해결이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선험적인 판단보다는 경험적 분석을 통해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산업구조에 대한 면밀한 분석들이 중요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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