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미 달러가치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달러가치 하락은 상당기간 지속되고, 이는 세계경제의 균형성장에 기여할 것이다.
그런데 미국경제가 다른 나라보다 경제상황이 좋아서 금리를 인상하고 있는데도 달러가치가 하락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세계경제에서 미국의 역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세계 GDP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1985년 35%에서 2000년 30%로 낮아졌고, 지난해에는 25%로 떨어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전망에서 2022년까지 미국경제 비중이 더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환율이란 그 나라의 총체적 경제력을 반영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세계경제에서 미국 비중 축소가 장기적으로 달러 약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순환 측면에서 달러가치의 변동이다. 1973년 이후 달러가치는 주요국 통화에 비해서 평균 5년 8개월에 걸쳐 47% 상승했고, 9년 동안 32% 하락하는 순환패턴을 보였다. 최근 동향을 보면 2011년 8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38% 상승한 후 2017년부터 하락세로 전환됐고 올해 1월까지 10% 떨어졌다.
美, 보호무역을 더 강화하거나 달러 약세 유도할 가능성 높아
미국의 경기확장 국면이 마무리되면 달러가치 하락 속도는 좀 더 빨라질 수 있다. 전미경제연구소(NBER)에 따르면 미국경제는 2009년 6월을 저점으로 2018년 2월 현재까지 104개월 연속 확장 국면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의 경기순환 역사상 이보다 길었던 경우는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베트남 전쟁이 있었던 1961년 2월에서 1969년 12월까지 106개월이었고, 다른 한 번은 정보통신혁명이 경제 각 부문에 영향을 줬던 1991년 3월에서 2001년 3월까지 120개월이었다.
이번 경기확장 국면은 106개월을 넘어설 것이지만, 그렇다고 120개월까지 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번 경기확장의 동인은 수요 측면에서 과감한 재정 및 통화 정책, 공급 측면에서는 셰일가스 생산 증가에 따른 유가 등 에너지가격 하락에 있었다. 그러나 미국 연방정부 부채가 명목 GDP의 100%를 넘어섰기 때문에 재정정책은 한계에 도달했다. 2008년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썼던 양적완화를 포함한 비정상적인 통화정책도 정상화 과정을 밟아가고 있다. 2017년 하반기부터 실제 GDP가 잠재 수준을 넘어서면서 물가상승 압력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금리인상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 이를 반영해 최근 시장금리가 오르고 주가도 급락하고 있다. 주가 하락은 미국 GDP의 69%를 차지하고 있는 소비 위축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미국경제가 수축 국면에 접어들면 재정 및 통화 정책의 한계로 미 정책 당국은 보호무역을 더 강화하거나 달러 약세를 유도할 가능성이 높다. 중장기적으로 보면 세계경제에서 미국의 비중 축소와 더불어 순환상 달러 약세 국면에서 경기수축 국면 진입은 달러가치 하락을 더 부추길 수 있다. 앞으로 4년 정도는 달러 약세 국면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달러가치가 완만하게 하락하면 세계경제의 균형성장에 기여할 것이다. 1990년 이후 미국 가계는 자기 소득뿐만 아니라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려 세계가 생산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사줬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미국의 가계가 부실해졌다. 1990년 GDP의 82%였던 가계부채가 2007년에는 135%까지 상승했다. 그 후 줄어들고는 있지만 2017년 3분기에도 107%로 높은 수준이다. 미국경제가 소비 중심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경상수지 적자도 크게 늘었다. 2006년엔 한때 경상수지 적자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2%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국이 소비자 역할 해야 세계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어
미국 가계가 소비를 늘리는 과정에서 중국 생산자들이 저임금을 바탕으로 상품을 싸게 생산해 미국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줬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대중 무역수지 적자가 지나치게 많아졌다. 1990~2017년 미국은 중국과의 교역에서 4조7,300억달러(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도 3조1,300억달러) 적자를 냈다. 중국은 대미 수출로 벌어들인 돈의 일부로 미 국채를 사줬다. 이는 미국의 금리안정과 자산가격 상승을 초래해 소비를 더 부추겼다.
이제 중국이 어느 정도 소비자 역할을 해야 세계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달러가치가 떨어지고 중국 위안화가치가 올라가야 한다. 중국경제도 투자와 수출 중심의 경제성장에서 소비 비중이 늘어나야 할 내부적 요인이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선진국 중심으로 세계경제가 마이너스(-) 0.4% 성장했는데도 중국경제는 10% 성장을 달성했다. 그러나 고정투자가 한때 GDP의 45%에 이를 정도로 투자가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기업부채가 GDP의 166%(2016년 기준)에 이를 정도로 크게 늘고, 기업 부실은 은행 부실로 이어졌다. 기업과 은행이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비가 늘지 않으면 중국경제는 경착륙할 가능성이 높다.
달러가치 하락에 따른 위안화가치 상승은 중국경제의 구조조정과 소비 중심의 경제성장으로의 전환을 더 빠르게 하는 촉매제가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달러가치의 완만한 하락은 세계경제 성장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지난해 이후 우리 원화가치도 계속 오르고 있다. 원화 환율은 달러로 표시되기 때문에 달러가치가 하락하면 그만큼 원화가치는 상승하게 된다. 북한 리스크가 발생할 때마다 원화가치가 일시적으로 떨어질 수 있지만 달러 약세로 원화가치는 지속적으로 오를 전망이다. 3~4년 후에는 원달러 환율이 900원에 이를 가능성도 높다.
원화가치 상승으로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 정착할 전망이다. 그러나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우리 수출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해외로 나가는 기업이 갈수록 더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가계부채가 매우 높은 상황에서 제조업의 위축은 우리 경제에 디플레이션 압력을 높일 수도 있다. 기업은 고급 소비재로 소비 중심으로 성장하는 중국경제를 최대한 활용해야 하고, 정책 당국은 원화가치의 적정 수준 유지를 위해 통화정책을 신축적으로 운용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