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말 8월 초. 전 국민이 암묵적인 약속이라도 한 듯 너도나도 휴가를 보내는 철이다. 휴가를 즐기는 방법은 제각각이라 더위를 피해 더 더운 동남아로 피서를 가는 사람도 있고, 멀리 가지 않고 집 근처의 호텔을 예약해 고급침구에 누워 푹 쉬고, 호텔에 딸린 수영장의 선베드에 드러누워 생과일주스를 마시며 또 쉬는 호캉스(호텔과 바캉스의 합성어)를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여행이란 어딘가로 떠나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지만 머물러 쉬는 것 또한 중요한 속성이다. 떠나고 머무르는 여행의 쾌감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탁월한 방법이 캠핑이다. 텐트를 설치하고 침구류를 깔고 물을 떠와 코펠에 밥을 짓는 일은 번거롭고 힘들어도 보람과 재미가 커서 그러한 불편을 상쇄하고 남는다. 이번 여름엔 제주도에서 다큐멘터리를 촬영해야 하니 휴가나 캠핑은 언감생심이다. 그래도 내겐 반추하는 것만으로도 더위를 견뎌낼 막강한 캠핑의 추억이 몇 개 있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여자친구와 함께 자전거로 여행했었다. 도보 여행으로 잘 알려진 길인데 순례를 마친 사람의 15%가 자전거로 다녀갔다고 한다. 적당한 무게의 배낭을 메고 ‘알베르게’라 불리는 순례자 숙소에 묵으며 도보 여행을 할 수도 있었지만 우리만의 오붓한 시간에 굶주린 터라 캠핑을 선택했다. 캠핑 살림을 싣고 다니자면 자전거가 필요했다. 순례길을 자동차로 여행하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스페인의 5월을 관통하며 한 달 동안 산티아고 순례길을 달리고 머물렀다. 포장된 도로도 간간히 나왔지만 대부분이 산길이거나 비포장길이어서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고 가야 하는 일이 빈번했고 길을 잃어 헤매기도 했으며 비를 쫄딱 맞기도 했다.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부침이 많은 여정이었다. 며칠간 시행착오를 겪었던 우리는 무리해서 달리지 않기로 했다. 800km는 멀고 긴 길이었다. 서너 시가 되면 자전거를 멈추고 텐트를 쳐서 보금자리를 만들어 쉬었다. 숨을 돌리고 나면 저녁을 지어 체력을 보충하는 데 공을 들였다. 잘 먹어야 잘 달릴 수 있으니까.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마쳐야 비로소 일과가 끝났다. 스페인의 5월은 해가 길었다. 잠자리를 마련하고 장을 보고, 식재료를 다듬어 음식을 짓고 갈무리하기까지 한참이 걸렸지만 해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하루의 일을 끝낸 우리는 싸구려 와인을 마시며 해가 산 너머로, 혹은 평야 너머로 꼴깍 넘어가는 찰나의 장관을 매일같이 감상했다. 완전한 하루를 살아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감사한 시간이었다. 먹고 자는 일을 스스로 해낸 것에 대한 성취감이 몰려왔다. 우리는 그렇게 성취감을 조금씩 쌓아가며 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착점인 대성당에 닿았다. 그래서 산티아고 순례길 캠핑 여행은 우리에게 종교적 의미 너머의 순례길이 돼주었다. 평생을 두고 들춰볼 추억이다. 캠핑의 추억을 얘기하자면 알래스카의 데날리산에 갔던 여행을 빼놓을 수 없다. 데날리는 북극권에 속한 산이어서 겨울에 가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여름에는 눈사태의 위험이 커서 봄이나 가을의 짧은 기간에 한정해서 다녀올 수 있다. 사방이 만년설로 덮여 있어 생명체라고는 눈을 씻어도 찾을 수 없었고, 고생을 사서 하는 어리석은 등산객 몇 명만 설원 위에 점점이 박혀 있을 뿐이었다. 데날리는 보름 일정으로 다녀오는 게 보통인데 산에서 먹고 자는 데 필요한 것을 썰매에 실어 사람이 끌고 가야 한다. (휴대용 변기를 포함하여!) 나의 짐을 누군가 대신 끌어주지 않는다. 산 위에서 힘들기는 모두가 마찬가지니까. 빙하와 눈밖에 없는 데날리는 건축물을 세울 수 있는 땅이 아니다. 오두막 하나 없는 곳이다. 캠핑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대자연 그 자체다. 세속의 욕심을 내려놓고 생존에 필요한 것으로만 썰매를 꾸려도 보름치 식량과 조난에 대비한 여분의 식량,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추위를 버틸 방한 장비의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좀처럼 앞으로 내딛어지지 않는 무거운 발걸음을 질질 끌며 하루 동안 가야 할 거리를 겨우 채우고 나면 이미 녹초가 됐어도 할 일은 다시 산더미였다. 동상이 올지도 모르는 강추위 때문에 장갑을 벗지도 못하고 텐트를 쳐야 했고, 어른 한 사람이 지내면 딱 좋을 텐트에 장정 셋이 누워야 했다. 물을 만들기 위해 눈을 삽으로 퍼서 모아야 했는데 백 번의 삽질로 모은 눈을 녹이면 한 병의 물이 겨우 만들어졌다. 일행 다섯 중에 내가 막내여서 삽질은 내 담당이었는데 모두의 음식을 데우고 몸을 녹이려면 천 번에 가까운 삽질을 매일 해야 했다. 물론 내가 삽질하는 동안 형들 또한 각자 맡은 역할로 분주했다. 음식은 죄다 건조식량을 불려 먹는 것들이라 맛있게 넘어가질 않았다. 밤에는 기온이 영하 30도까지 떨어졌는데, 아침에 눈을 뜨면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됐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내가 정말 살아 있는지 확인하려 일부러 몸을 움직여 보기도 여러 번이었다. 데날리에서 보낸 보름의 고행과 군대에서 보낸 2년의 고행이 맞먹었다. 산에 있는 동안에는 그렇게 힘들었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은 잊을 수 없는 캠핑의 추억으로만 남아 있다. 그만한 고생은 쉽게 만날 수 없는 천혜의 자연을 만나는 데 꼭 필요한 대가일 뿐이었다. 여행(travel)의 어원은 고난(travail)이다. 여행은 결국 고생을 사서 하는 일이다. 산티아고 순례길 자전거 여행의 막바지엔 과로 탓인지 원형 탈모가 생기기도 했었다. 군대를 다시 가라고 하면 죽어도 싫다 하겠지만 데날리를 다시 가라고 하면 당장에 썰매를 꾸릴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나는 캠핑이 너무 좋다.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