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같은 동에 우리 쌍둥이들보다 한 살가량 많은 여자 아이가 산다. 지난해 봄쯤이었던가, 아마도 어린이집에서 하원하는 길이었던 것 같은데 아이는 “할아버지 미워, 할아버지 싫어” 아파트 단지가 떠나가라 울며 소리를 질렀다. 할아버지는 불그락푸르락한 얼굴로 묵묵히 몇 발짝 앞서 걸었다. 좀 유난스러운 아이라고, 그땐 생각했다. 약 한 달 전 네 살 쌍둥이들의 생떼가 예전과 질적으로 양적으로 확연히 달라졌다. ‘미운 네 살’이란 말이 이래서 생겨났구나, 이웃집 아이는 결코 유난스러운 게 아니었구나 깨달았다. 첫째는 언제 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았다. 기분 좋게 잘 있다가도 어느 순간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기분이 나빠져버린다. 예컨대 차에서 자기가 원하는 노래가 안 나온다며 버럭 화를 낸다. 무슨 노래를 듣고 싶은지는 말하지 않으면서 한참을 소리 지르며 운다. 이 노래, 저 노래 시도하다 보면 어느 순간 진정한다. 그 노래가 자기가 듣고 싶었던 노래였다는데, 듣고 싶었다는 노래가 매번 다르다. 정말 듣고 싶었던 노래가 있었던 건지, 그냥 화를 내고 싶은 만큼 내고 진정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첫째의 생떼는 보통 한쪽 발을 높이 들어 올렸다 바닥을 쿵 내리치는 것에서 시작한다. 원래 활동적인 편이라 힘이 세고 목소리도 큰 아이다. 이 아이가 아무 곳에서나 드러누워 울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 억지로 안으려 다가갔다가는 발길질에 멍이 들기 십상이다. 둘째는 첫째와 달리 화를 내고 생떼를 부리는 이유가 늘 분명하다. 들어줄 수 없거나 들어주기 힘든 요구를 발명해내는 게 둘째의 특기다. 차를 타고 어린이집에 다 왔는데 이불을 두고 왔으니 다시 집에 가야 한다고 우긴다. 자려고 불 다 끄고 누운 뒤에 목이 말라 물을 마셔야겠다, 쉬를 해야겠다, 땀이 나서 새 기저귀를 차야겠다, 베개에 침을 흘렸으니 새 베개로 바꿔야겠다며 자꾸만 일어난다. 캄캄한 중에서도 어떻게 그 많은 인형 중에 거실에 두고 온 인형만 정확히 짚어 가져다 달라고 요구하는지는 정말 미스터리다. 원래 집중력이 좋은 편이라 한번 떼를 쓰기 시작하면 오래 간다. 다른 것으로 주의를 돌리는 건 불가능하다. 첫째처럼 힘이 세지는 않지만 억지로 안으면 젖은 솜처럼 몸을 축 늘어뜨린다. 발버둥치는 첫째만큼이나 힘으로 상대하기는 버겁다. 원래부터 아침엔 어린이집에 가기 싫고 저녁엔 집에 가기 싫은 아이들이었는데 생떼까지 최고조에 달했다. 아무리 조심해도 아침에 잠을 깨우고, 옷을 입히고, 세수와 양치질을 시키고, 신발을 신기고, 차에 태우는 과정에서 폭탄의 뇌관을 한 번도 건드리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폭탄이 터지면 땀이 범벅이 된 채로 하루를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이번 주부터 더위가 꺾이면서 아이들의 생떼도 확연히 줄었다. 극에 달했던 3주간의 생떼를 원래 한번씩 거쳐야 하는 것인지, 유독 더웠던 날씨 탓이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다시 육아책을 꺼내들어 아이들의 감정에 무조건 공감하라는 조언을 실천한 아내가 이룬 성취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정말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