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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허남웅의 신나는 시네할리우드에 <다크 나이트>가 있다면 한국엔 <어둔 밤>이 있다!
허남웅 영화평론가 2018년 09월호




제목이 좀 그런가. 어두운 밤도 아니고 ‘어둔 밤’이라니, 촌스럽다고? 그럼 영어로 바꾸면 어떤가? ‘다크 나이트(The Dark Night)’ 이러면 좀 있어 보이려나? 가만 이런 영문 제목의 영화가 있지 않았나? 맞다, 〈다크 나이트〉. 근데 번역하면 ‘어둔 밤’이 아니라 ‘어둠의 기사(The Dark Knight)’다. 입추 지나도 너무 더워 짜증나는데 왜 말장난이냐고? 입추 지나도 너무 더우니까 웃어보시라고 말장난 좀 쳐봤다. 〈어둔 밤〉은 그런 영화다.


애들 장난 같은 영화 만들기
일종의 장난처럼 시작된 일이었다. ‘리그 오브 쉐도우’는 대학교 영화 감상 동아리다. 이름만 안감독과 심피디는 동아리원들과 〈반지의 제왕〉과 〈다크 나이트〉와 〈캐리비안의 해적〉의 레고 피겨를 가지고 놀다가 뜬금없이 영화를 만들기로 의기투합한다. 안감독에게 끝내주는 시나리오가 있다는데 마침 심피디가 고등학생들에게 얻어터져 받은 보상금 300만원이 있어 이걸 투자금 삼아 제작에 들어간다. 크리스토퍼 놀런의 〈다크 나이트〉에 필적하는 영화를 만들겠다며 지은 제목은 또 하나의 다크 나이트, 즉 ‘어둔 밤’이다.
원대하게 던진 출사표가 무색하게 동아리 방구석에서 영화 보고 수다 떨 줄만 알았지 영화 만들기에 문외한인 이들은 갖은 영화 지식을 총동원해 제작에 들어간다. 배우 모집 구인란을 A4 용지에 프린트해서 뿌리고 군에서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예비군 선배를 찾아가 액션을 익힌다. 주요 배경이 되는 배를 빌리기에는 돈이 없어 전쟁 박물관에 전시된 초계함에서 몰래 촬영을 한다. 이제 걸작만 만들면 되는 상황인데 안감독의 군 입대로 프로젝트가 무산된다. 몇 년 후 리그 오브 쉐도우의 후배들이 이 프로젝트를 다시 이어간다며 제목을 지으니, ‘다크 나이트 리턴즈’, 아니 ‘어둔 밤 리턴즈’다.
줄거리를 읽고 있자니, 영화가 애들 장난인가? 〈어둔 밤〉은 그런 태도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세 개의 에피소드로 진행되는 〈어둔 밤〉은 ‘어둔 밤’과 ‘어둔 밤 리턴즈’의 제작 과정을 촬영한 일종의 메이킹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고 있다. 말이 좋아 메이킹 다큐멘터리이지 카메라를 막 들고 찍어 막막 흔들리거나 초점이 막막막 맞지 않는 경우도 많고 아예 바닥에 툭 내려놔 발목만 비추는 장면도 적지 않다. 이래 놓고 영화라고 불러도 될까 싶은데 리그 오브 쉐도우의 영화 만들기나 이 과정을 담은 〈어둔 밤〉이나 중요한 건 작품을 만드는 이들의 마음에 달렸다고 본다.
〈어둔 밤〉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진정성’이다. 특히 안감독과 심피디는 진정성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러다 보니 그 뉘앙스가 약간은 부정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안감독과 심피디를 비롯해 ‘어둔 밤’의 주역이었던 이들은 ‘어둔 밤 리턴즈’ 에피소드에서는  취업을 위해 영화 만들기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태도다. 이 영화의 제목 〈어둔 밤〉은 동음이의어에 착안한 〈다크 나이트〉의 패러디이기도 하면서 ‘진정성’을 가지고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이들의 ‘열정’이 어떻게 사회 진입이라는 장벽 앞에서 ‘어둔 미래에 관한 불안감’으로 그렇게 쉽게 소멸하는지까지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애들 장난은 아무리 진정성이 있더라도 취업을 우선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말 그대로 애들 장난일 따름이다.


애들 장난이 갖는 사회적 가치
애들 장난이 사회적인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경직됐다는 의미다. 애들 장난은 말하자면 놀이의 가치다. 들인 노력에 비해 남는 게 없다. 그저 재미있으면 그만이다. 그러면 된 거다. 그래서 젊음이 무모하면서도 위대한 거다. 리그 오브 쉐도우의 영화 만들기는 실질적인 보상을 바라면서 시작한 프로젝트가 아니다. 크리스토퍼 놀런의 〈다크 나이트〉 버금가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농담하지 말라 그래, 중요한 건 뭘 해보겠다고 마음을 먹은 후 이를 실천에 옮기는 그 태도에 있다.
사실 〈어둔 밤〉은 이 영화를 제작하고 만들고 출연하고 편집하고 음으로 양으로 참여한 이들의 자기 반영적인 작품이다. 이 영화를 제작하고 만들고 출연하고 편집하고 음으로 양으로 참여한 이들은 직장에 다니면서 남는 시간 동안 〈어둔 밤〉을 만들겠다며 열정을 불태웠다. 완성하는 것이 우선 목표였다가 영화제에 초청받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코리안 판타스틱 장편 부문의 작품상을 받는 기염을 ‘오바이트’했고 다가오는 9월 6일에 극장 개봉까지 확정했다. 이 영화를 두고 〈다크 나이트〉에 필적할 만한 작품이라고 하기는 망설여져도 만약 크리스토퍼 놀런이 〈어둔 밤〉을 본다면, 한국에서 어둠의 기사가 예비군이었다니! 재기발랄함에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울 거라는 데 270원 걸 수는 있다.
한국에서 진정성의 가치가 진정성 있게 평가받을 때는 보통 결과가 좋을 때다. 결과가 좋지 않을 때 보통 갑의 위치에 있는 이들은 충고한답시고 진정성이 부족해서 그래, 와 같은 말을 들먹이고는 한다. 니들이 진정성을 알아?! 리그 오브 쉐도우 멤버들이 결국 영화를 완성한 후 첫 시사를 가질 때 관람석에 앉아 있는 관객은 거의 없다. 그나마도 리그 오브 쉐도우 관계자들이다. 그렇다고 이들 얼굴에 실망의 기색은 전혀 없다. 오히려 어떻게든 완성해 공개하게 됐다는 성취감이 더운 여름의 땀만큼이나 표정에 흥건하다.
진정성을 이용해먹는 세상에서 타인이 보기에 의미 없는 노력의 가치를 실현한다는 것, 그에 관한 보상은 추후다. 즐겁기만 하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이다. 이것이 〈어둔 밤〉이 주는 교훈이다. 그리고 애들 장난이 결과 지상주의에 함몰된 한국 사회에 주는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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