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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허남웅의 신나는 시네그래서 이 세상은 이렇게 망가졌다
허남웅 영화평론가 2018년 10월호




(영화의 결말과 관련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네가 여기에 없었다? 그럼 어디에 있었을까? 결국 존재의 유무를 말하는 영화. 꽤 골치 아픈 이야기 같다고? 누가 만든 영화인지 알게 되면 혹할 거면서, 아마추어같이 왜들 이러시나. 〈너는 여기에 없었다〉는 〈케빈에 대하여〉(2011)를 연출한 린 램지 감독의 신작이다. 혹할 만한 정보 하나 더 알려드린다면, 올해 칸영화제에서 린 램지는 〈너는 여기에 없었다〉로 각본상을 받았고 주인공을 연기한 호아킨 피닉스는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갑자기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이 ‘혹’하고 치솟지 않나.


전혀 예상 밖의 살인 청부업자
조(호아킨 피닉스)는 일종의 살인 청부업자다. 사회 유력인사들이 비밀스럽게 일 처리를 요구하면 그보다 더 비밀스럽게 해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엔 선거를 앞둔 상원의원이 조를 찾는다. 상원의원의 의뢰에 의하면, 사랑스러운 딸 니나(예카테리나 삼소노프)가 하룻밤 사이 사라졌다. 그런데 정체불명의 주소 하나가 스마트폰 문자로 들어왔단다. 조는 그 즉시 문제의 주소지로 출동한다. 알고 보니 납치한 미성년자를 데리고 비밀스럽게 매춘 사업을 하는 곳. 조는 비밀스럽게 이 집에 침입해 비밀스럽게 니나를 구하고는 상원의원에게 넘겨주기 전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그녀를 비밀스럽게 보호한다.
내가 도대체 줄거리 소개 한 문단에서 ‘비밀스럽게’를 몇 번이나 썼는지 모르겠다. 어휘력이 달려서? 나 이 코너 지금 2년째 연재 중인 영화 프리뷰 청부업자다. 조의 정체성을 요약하는 한 단어가 ‘비밀’인 까닭이다.
〈너는 여기에 없었다〉는 조가 니나와 연관된 사연을 풀어가면서 전기 스위치를 켰다 껐다 하듯이 조의 끔찍한 유년기와 전쟁 참전의 기억을 불쑥불쑥 삽입한다. 아버지의 가정폭력이 어린 조에게 검은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게 했고 전쟁터에서는 도움을 줬던 아이에게 총격을 당하며 희망이란 단어를 냉소하게 했다. 언제 죽어도 아쉬울 것 없는 조는 말하자면 사회의 유령 같은 존재다. 그래서 의식하지 않아도 그의 말투나 표정이나 행동은 비밀스럽다.
바꿔 말하면 유령 같은 조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은 사회에 만연한 폭력이다. 특히 아이가 연루된 폭력은 조의 트라우마를 작동시켜 이 사회에 존재하는 12만3,273개의 악 중 하나를 척결하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조는 흔히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카리스마 넘치는 살인 청부업자와는 다른 존재다. 이에 대해 린 램지 감독은 다음과 같은 얘기를 했다. “조의 캐릭터를 갑옷이 번쩍이는 흑기사로 만드는 게 싫었다. 주인공의 내면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어찌 보면 죽음에서 부활한 나사로의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본인은 살고 싶지 않은데 어떤 식으로든 트라우마를 통해 부활하는 남자 말이다. 나는 이 캐릭터를 전혀 예상 밖의 인물로 만들고 싶었다.”


21세기의 새로운 택시 드라이버
감독의 말을 단서로 삼는다면 우리는 잠시 애기동자(?)로 빙의해 조의 운명도 점쳐 볼 수 있다. 보통의 영화라면 이런 소재의 결말은 결국, 조가 니나를 다시 구해 상원의원 아빠에게 돌려준다, 그리고 조는 이 사건 해결을 계기로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벗어나 새로운 인물로 거듭난다,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어요, 끝. 근데 린 램지 감독은 조가 다음에 무슨 짓을 할지 관객들이 전혀 예측할 수 없게 만들고 싶다는 요지의 인터뷰를 바로 위의 문단에서 했다. 그러니까, 〈너는 여기에 없었다〉는 단순한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
칸영화제에서 〈너는 여기에 없었다〉가 공개된 후 많은 영화 전문가들이 이 작품을 일러 ‘21세기의 〈택시 드라이버〉’라고 평가했다. 〈택시 드라이버〉(1976)는 어떤 영화인가? 마틴 스콜세지를 세계적인 감독으로 만들어준 작품이면서 로버트 드 니로의 대표작이면서 아역 시절 조디 포스터의 존재감을 널리 알린 〈택시 드라이버〉는 베트남 참전으로 트라우마를 얻은 트래비스(로버트 드 니로)가 뉴욕의 밤거리를 달리는 택시 운전사로 근무하던 중 타락한 사회를 목격하고는 정화하기로 마음먹는 내용이다. 그 일환으로 12살 소녀 아이리스(조디 포스터)가 매춘하는 걸 보면서 충격을 받는다. 그 길로 전투적인 모히칸 헤어스타일을 하고는 그녀를 구하러 사창가에 홀로 뛰어든다.
비슷한 이야기 전개이기는 해도 〈너는 여기에 없었다〉가 〈택시 드라이버〉와 미묘하게 다른 점은 이 사회를 바라보는 영화 속 주인공들의 시선이다. 트래비스는 악으로 가득한 이 사회를 청소하려고 한다. 일말의 희망을 찾으려는 시도다. 조가 보기에 이 사회는, 부르기 쉬운 자신의 이름처럼 단순하게 그냥 악이다. 어쩌다 보니 악을 처단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러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 실제로 조가 비밀스럽게 구한 니나를 다시 납치해간 일당을 쫓아가 이리 패고 저리 갈기고 알아낸 결과, 악의 꼭짓점에는 니나의 아버지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국회의원이 있다. 이런 세상에 희망 따위, 다 X까라 그래.
어린아이마저 탐욕스러운 어른들의 범죄에 악용되는 이 사회에서 너는, 엇, 반말해서 죄송합니다, 당신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납치당한 니나를 구했다가 빼앗긴 후 다시 찾은 조는 니나와 함께 사람들로 북적이는 어느 레스토랑에서 아침 식사를 한다. 그러다 니나가 화장실로 간 사이 도저히 이런 미친 세상을 견딜 재간이 없어 턱 밑으로 총의 방아쇠를 당겨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주변에서 난리가 벌어질 법도 한데 다들 태연하다. 커피를 마시고 잡담을 나누고 조의 자살에는, 홀로 남겨진 니나에는 관심이 없다. 그런 어른들의 무관심이 합해져 이 사회를 미래의 희망인 아이들마저 악의 볼모로 잡힌 지옥으로 만들고 말았다.  
이 글에 혹해 10월 4일에 〈너는 여기에 없었다〉가 개봉하면 극장에서 보며 이 사회에 무관심했던 자신을 반성하려고 했는데 결말을 이렇게 ‘까발리면’ 어떡하나 분노하는 독자도 있겠다. 솔직히 말하면, 조의 자살 장면은 실제처럼 보이는 상상 장면이다. 다시 정신을 차린 조는 니나와 함께 레스토랑을 떠난다. 그리고 영화는 그들이 떠난 후 텅 빈 테이블과 좌석을 응시하며 끝을 낸다.
어떤 게 사실이고, 환상일까. 모르겠다, 알려줄 수 없다. 하지만 의도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이 세상이 이렇게까지 망가지고 있을 때 너는 어디에 있었나? 영화는 이렇게 답하는 듯하다. ‘너는 여기에 없었다.’ 유령 같은 조의 사회적 존재를 두고 〈너는 여기에 없었다〉가 관객에게 묻는 말과 답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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