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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독서의 문장들남북이 10년 넘게 우리말 사전을 함께 만들고 있다는 사실, 아셨나요?
김이경 작가 2018년 10월호





월요일 저녁엔 외출을 삼간다. 〈우리말 겨루기〉라는 퀴즈 프로그램을 봐야 해서다. 십 년 넘게 매주 챙겨보는데 볼 때마다 놀란다. 우리말이 너무 어려워서 놀라고, 잘못 알고 쓴 말이 너무 많아서 놀라고, 그 어려운 말들을 척척 맞추는 사람들을 보며 또 놀란다. 먼지만 쌓여가던 두꺼운 「표준국어대사전」을 뒤적이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몇 해 전엔 TV 보면서 참고하려고 좀 더 읽기 편한 중사전을 샀다. 서점에서 여러 개를 비교하며 고르고 골랐건만 막상 써보니 없는 단어가 많았다. 사전이 뭐 이러냐고 투덜댔는데 「최후의 사전 편찬자들」이란 책을 읽고 알았다. 잘못은 만든 사람보다 애초 중사전의 특징을 모르고 산 내게 있다는 것을. 
「최후의 사전 편찬자들」은 웹사전 기획자인 정철이 다섯(부록의 일본 편찬자까지 합하면 여섯) 명의 종이사전 편찬자들을 인터뷰한 책이다. 다섯은 많지 않은 숫자지만 학회, 대학 연구소, 출판사 등 다양한 기관에서 한국어, 외국어, 백과사전을 수십 년씩 만들어온 주역들이라 한국 사전의 역사는 물론 사전에 관한 갖은 궁금증을 해소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첫 인터뷰 상대는 한글학회의 「우리말큰사전」부터 2019년 완성을 목표로 남북이 공동 작업 중인 「겨레말큰사전」에 이르기까지 50년간 사전 편찬을 해온 조재수 선생이다. 이력 자체가 한국어사전의 역사인 선생과의 대화는 놀라움의 연속이다. 남북 학자들이 10년 넘게 우리말 사전을 함께 만들고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고, “이효석은 「모밀꽃 필 무렵」을 썼지 「메밀꽃 필 무렵」을 쓰진 않았다”는 얘기도 새삼스러웠다.
모밀꽃을 현대의 표준어인 메밀꽃으로 고치는 건 당연하다 여겼는데 조재수는 말을 표준/비표준으로 나누는 방법은 아주 위험하다며, “모든 단어는 독자적이란 생각”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표준어를 부정하는 게 아니다. 지역어, 문학어 등 다양한 어휘를 살리고 표준어를 더 늘려가야 한다는 뜻이다. 순화어를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대혈이란 한자말 대신 탯줄피라고 쓸 때 우리말이 풍요로워지고 언어생활도 편리해지니 힘들더라도 순화어를 만들어 쓰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들으며 저자는 “나는 어휘 순화에 부정적이지만 이 말에 토를 달 수는 없었다”고 고백한다. 평생 언어를 다룬 선배의 말이 갖는 무게감, “아무리 잘못된 사전이라도 그 어떤 책보다 가치가 있다”는 그의 사전 사랑을 잘 알기 때문이리라.
국가, 표준, 규범에 비판적인 저자는 대담자들과 종종 의견 차이를 드러낸다. 하지만 문제점을 비판할 시간이면 잘못 하나라도 더 고치겠다는 사전 장인들답게 그들은 날선 공방 대신 더 나은 사전을 함께 고민한다. 책에는 「뿌리깊은 나무」로 출판문화를 혁신한 한창기 이야기도 나오는데, 오늘의 문화적 풍요가 얼마나 많은 헌신에 빚진 것인지 새삼 깨닫게 한다. 덕분에 책을 읽고 나면 지식도 생각도 많아진다. 덤으로 네이버가 제공하는 ‘표준국어대사전’과 다음의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의 차이가 뭔지, 어느 쪽이 편한지 같은 깨알 정보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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