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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감탄고탄 맞춤법저 무지개 너머 빨간 김치 있나요
박태하 출판편집자·작가 2018년 11월호



요즘에도 김장을 많이 하는지 모르겠다. 냉장고에 김치가 떨어지면 마음 한구석이 못내 허전하긴 하지만, 김치 없이 밥 못 먹는 식성도 아니고 기회가 되면 조금씩 얻거나 사서 사철을 난다. 대부분이 도시 태생의 1970~1980년대생인 주변 친구들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아서, 굳이 김치를 담궈 먹는 수고를 감수하진 않는다. 그래도 이맘때면 뉴스에는 김장철 물가 이야기가 꼬박꼬박 나오고 인터넷에는 시댁에 김장하러 가는 사연도 쏠쏠히 올라오는 걸 보니 세상은 역시 내 주변만으로 판단할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내가 확실히 판단할 수 있는 것 하나는 이거다. 김치를 ‘담궈’ 먹으면 안 되고 ‘담가’ 먹어야 한다는 것!
기본형이 ‘담구다’가 아니라 ‘담그다’인 건 뻔히 아실 만한 분들이 ‘담그고-담글-담가-담갔니’로 활용하지 않고 ‘담구고-담굴-담궈-담궜니’로 잘못 쓰는 걸 심심치 않게 본다. 심지어 ‘담다’로 활용해서 “너희는 김치 담았어?”라고 쓰는 분들도 종종 있는데, “엄마, 김치 좀 담아 줘”와 “엄마, 김치 좀 담가 줘”가 엄연히 다른 말이라는 걸 명심해두자.
비슷한 꼴인 ‘잠그다’ 역시 비슷한 꼴로 주의해야 한다. “현관문 잠궜어?”가 아니라 “현관문 잠갔어?”가 맞고, “가스 밸브를 잠구고서”가 아니라 “가스 밸브를 잠그고서”가 맞고, “수도꼭지를 잠군 채로”가 아니라 “수도꼭지를 잠근 채로”가 맞다. 잠가야 하는 건 대체로 잊으면 안 되는 게 많은데, 이왕 잊지 않는 김에 맞춤법도 새겨 두자. ‘구’가 아니라 ‘그’다! 담그다잠그다담그다잠그다…… 어쩐지 머릿속에 울리는 말발굽 소리를 생각하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모양은 조금 다르지만 이야기 안 하고 넘어가면 무지 섭섭할 동사가 하나 더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치르다’! ‘담그다’와 ‘잠그다’는 기본형을 알면서도 활용을 잘못하는 경우가 많다면, ‘치르다’는 아예 ‘치루다’가 맞는 줄 알고 있는 분들도 꽤 많아서, 비교적 맞춤법이 잘 지켜진 글에도 툭툭 등장하곤 한다. 포털사이트에서 ‘치뤄진’만 검색해봐도 “지난 ??일 치뤄진~” 식의 ‘언론사’ 기사가 우수수 쏟아지니 말 다했다.
‘치르다’가 맞는 꼴이니 ‘치러-치른-치를-치렀다’로 활용해야 한다. 있지도 않은 동사 ‘치루다’와 그걸 활용한 ‘치뤄-치룬-치룰-치뤘다’는 머릿속에서 지우자. “지난달 치뤄진”, “물건을 살 때는 제값을 치뤄라”, “큰일 치루셨네요”, “대가를 치룰 것이야!”에서 밑줄 부분을 바르게 고쳐보고 ‘루’가 아닌 ‘르’를 꼭 기억해두자. 고통스러운 항문질환은 잊고 파랑새 치르치르를 생각하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자, 그럼 올해의 김장을 앞두신 분들, 모두 잘 치러 내시길! 그리고 그분들로부터 김치를 얻어 드실 분들, 모두 감사하는 마음으로 맛있게 드시길! 김장을 끝내면 어디 가까운 온천에라도 나들이를 가셔서 뜨끈한 물에 몸을 담가 피로를 푸시길! 목욕탕 들어가실 때 옷장 문은 잊지 말고 잠가 주시길! 이런 적당히 꿰맞춘 위로가 김장에 도움이 될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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