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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꽃보다 아빠막상막하
유신재 코인데스크코리아 편집장 2018년 11월호



나에게는 동갑내기 사촌이 있다. 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난 사촌은 생일이 연초라 학교를 1년 먼저 들어갔다. 우린 어려서부터 친구처럼 지냈다. 하지만 사촌은 툭하면 내게 형이라고 부를 것을 요구했고, 나는 번번이 나이가 같은데 네가 왜 형이냐며 대들었다. 그래서 자주 싸웠다. 6개월 차이로 동생이 된다는 게 그렇게나 억울했나 보다. 집안 어른들이 굳이 서열을 강요하지 않은 덕분에 끝내 형이라 부르지 않고 자존심(?)을 지켰던 것 같다.
마흔이 넘으면서부터 나는 자발적으로 사촌을 형이라 부르기로 했다. 나이가 들다 보니 형이 한 명이라도 더 있으면 그만큼 내가 젊어지는 기분이 든다. 사촌 형은 이제 형이라는 호칭을 질색하며 거부하고 있다. 진작 형이라 부를걸.
쌍둥이들은 1분 간격으로 엄마 배 속에서 나왔다. 나나 아내는 당연히 이 아이들을 언니, 동생으로 규정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그저 둘이 세상 제일 친한 친구로 지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사람이라고 보기 힘든 갓난쟁이 때야 둘의 관계를 뭐라 설명하기도 어려웠다. 네 살이 되고 언어능력이 빠르게 발달하면서 우리가 기대하고 상상했던 친구 같은 쌍둥이의 모습이 정말로 나타났다.
요즘 쌍둥이들은 서로 그림책을 읽어준다(더 정확히는 이야기해준다). 길을 갈 때면 “같이 가”, “빨리 와”, 깔깔대며 외친다. 서로 “넌 뭘 해, 그럼 난 뭘 할게” 하며 가게 놀이며 미용실 놀이며 기차 놀이를 만들어낸다. 별로 안 좋아하는 반찬이 있으면 “너 이거 먹을래?” 양보하고, 대신 다른 반찬을 얻는다. 물론 이 모든 상황이 언제든지 싸움으로 돌변할 수 있기 때문에 긴장을 풀 순 없지만, 아이들이 정말 둘도 없는 친구로 지낼 때만큼 웃음이 나고 보람을 느끼는 때도 없다.
비슷한 또래 아이 하나를 키우는 부모들은 재잘재잘 쉬지 않고 떠드는 아이의 말상대를 해주는 게 그렇게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는데, 쌍둥이들은 저희들끼리 주거니 받거니 하니 얼마나 큰 복인가. (야심만만한 아내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쌍둥이들에게 끝말잇기를 가르치려고 시도하고 있다. 무한동력기관에 대한 욕망과 비슷한 건데, 네 살배기한테는 아직 무리인 것 같다.)
세상에 귀엽지 않은 아이가 어디 있겠냐만, 쌍둥이는 특히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 같다.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을 하면 한마디씩 건네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런데 가장 자주 듣는 말이 “누가 언니에요?”다. 6개월 먼저 태어난 사촌 형도 형으로 인정하지 않은 아비의 딸들이 1분 차이로 언니와 동생을 받아들일 리 있겠나. 다음으로 많이 듣는 말이 “얘가 언니죠?”다. 50% 확률 게임을 통해 입증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모르겠거니와, 둘째가 첫째보다 키가 조금 더 큰 탓인지 그마저도 대부분 틀린다. (두 돌 때까지 “얘가 형이죠?” 소리를 들었던 걸 생각하면 기뻐해야 하는 걸까.)
쌍둥이 중 누가 언니인지 정말 궁금해서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아이들이 예쁘니까 뭐라도 한마디 하고 싶은데,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어서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대부분일 거다.
이 글을 읽는 분들께만이라도 그럴 땐 굳이 아무 말 않고 빙긋 웃기만 해도 마음이 다 전달된다는 걸 꼭 말씀드리고 싶다. 내가 만나본 쌍둥이 부모들은 하나같이 아이들에게 언니, 동생이란 개념을 가르치고 싶어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냥 쌍둥이들이 친구로 지낼 수 있도록 협조해주면 정말 감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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