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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로드리고의 카메라 로드종래엔 삶과 여행의 경계를 지우고 싶다
박 로드리고 세희 촬영감독 2018년 11월호




한 번 여행했던 곳은 좀처럼 다시 찾지 않는 편이다.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여행해도 좋은 곳들이 세상에는 많다. 나도 잘 안다. 하지만 대체로 새로운 장소에 마음을 뺏기고 만다. 여행했던 곳을 다시 여행하는 낭만도 누리고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도 골고루 여행하면 참 좋으련만, 여행할 수 있는 시간은 제한돼 있고 세상에 가보지 않은 곳은 너무너무 많다. 그래서 그리운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항상 새로운 여행지를 선택하게 된다. 내가 그리워하는 곳을 여행으로 다시 만나진 못해도, 운 좋게 출장이라도 가게 되기를 항상 바란다. 거닐었던 뒷골목을 다시 걷는 일, 허름한 어떤 식당에서 그때 먹었던 음식의 맛을 기억하며 다시 시켜 먹는 일, 그대로인 듯한 도시의 풍경을 세심하게 들춰가며 변화를 짚어내는 것 또한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것만큼이나 근사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편력으로 점철되는 내 여행에서 이례적으로 다시 찾아 여행한 곳이 있다.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이다. 이스탄불은 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로 천 년 가까이 위세를 누렸고 후에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중심 도시로서 여전한 위세를 누렸던 도시다. 그래서 지금의 이스탄불에는 그리스도교를 근간으로 하는 로마 제국의 유적과 이슬람교를 근간으로 하는 오스만 제국의 유적이 한데 뒤섞여 남아 있다. 두 제국은 천 년의 시간차를 두고 흥망성쇠를 겪었고 풍토 자체가 완전히 달랐다. 그래서 이스탄불 여행은 도시에 새겨진 중첩된 시간을 여행하는 일이다. 중세의 로마와 근대의 오스만, 그리고 현대의 터키까지.


이스탄불 여행의 백미는 ‘아야 소피아’일 것이다. 비잔틴 건축의 대표 걸작으로 꼽히는 아야 소피아는 로마 제국 시절 그리스도교의 성당으로 지어졌으나 오스만 제국에 점령당한 뒤로는 증축을 거쳐 이슬람교의 모스크로 사용되다가 지금은 박물관이 됐다. 비잔틴 건축의 특징이란 건물 외부보단 내부의 장식에 치중하는 것이어서 성당 내부는 화려한 모자이크 성화로 가득했다. 그러나 이는 이슬람 풍속에 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의 지도자들은 이교도의 아름다운 성소를 파괴하는 대신 내부에 회칠을 해 성화를 가리고 외부에는 이슬람 건축의 특징인 첨탑을 추가로 세워 모스크로 사용하게 했다. 최고의 모스크를 의미하는 네 개의 첨탑을 세웠음은 물론이었다. 종교를 초월해 관용의 미학을 품은 아야 소피아는 현대 터키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타튀르크에 의해 다시금 박물관으로 변용됐다. 지금은 내부의 회칠을 모두 벗겨내 성화를 감상할 수 있다. 종교의 경계를 지우고 두 제국의 시간이 겹쳐 있는 아야 소피아는 여행자에게 더 없이 감사한 유산이다.
이스탄불에 겹쳐 있는 것은 시간만이 아니다. 이스탄불은 유럽 대륙과 아시아 대륙에 걸쳐 있다. 터키는 정치적으로는 유럽에 속해 있지만 지리적으로는 영토의 대부분이 아시아에 속한다. 유럽과 아시아를 나누는 것이 보스포러스 해협인데 이스탄불은 이 해협의 양쪽을 함께 품고 있다. 즉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는 대륙의 경계도시인 거다. 그리고 경계란 두 세계의 중첩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내가 이스탄불을 다시 찾아 여행하게 된 까닭이다.
나는 20대 시절 여행에 매료되기 시작해 빈번하게 여행을 다녔다. 그때야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았으니 주로 가까운 동아시아 일대를 다녔는데, 매번 여행을 갈 때마다 항공사에 갖다 바치는 돈이 아까워 죽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묘안이라고 떠올린 게 찔끔찔끔 여행을 다니지 않고 한 번 떠나서 아시아의 모든 곳을 여행하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는 2년이 걸린 여행이었는데, 아시아 대륙 대장정의 출발점이 바로 이스탄불이었다. 이스탄불에서 시작해 아라비아 반도,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를 두루두루 섭렵하며 수십 개의 국경을 넘어 집으로 돌아왔다. 국경이라는 경계를 넘는 일은 때때로 고단했지만 그것을 넘고 보면 경계는 지워지고 없는 허망한 것이었다. 국경이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실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경계니까. 여행이란 결국 경계를 몸으로 넘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었다. 그렇게 아시아 여행을 마친 후 요즘엔 유럽을 여행 중이다. 한 번에 긴 시간을 내지는 못하고 일 년에 두어 번씩 짧게 여행하기를 수년째 하고 있다. 이스탄불은 아시아 여행 때 이미 다녀갔으니 유럽 여행을 한다고 해서 꼭 다시 가야 하는 건 아니었지만, 대륙이 중첩돼 있고 제국의 영광이 중첩돼 있는 이스탄불을 다시 여행하면 내 여행의 시간도 중첩될 것이었다. 그러면 지난 아시아 여행과 지금의 유럽 여행의 경계도 지워져서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저 여행하고 있는 사람이 된다.

처음 발 디딘 유럽 땅은 영국 런던이었다. 아시아 여행을 마치고 현업에 복귀한 후 어느 자동차 회사의 광고를 촬영하기 위해 출장을 간 것이었다. 새로운 대륙의 대장정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촬영 장소를 찾기 위해 런던의 명소를 돌아다니며 헌팅을 했고, 일을 마치면 저녁에는 미술관을 찾아 머리를 식혀가며 다음 날의 일을 구상했다. 해외 출장에서는 보통 예비일을 둔다. 날씨를 비롯해 예상하지 못한 현지의 여러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여분의 일정이다. 촬영을 무사히 잘 마치면 예비일은 각자의 몫이다. 누군가는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쇼핑을 다니기도 하지만 나에게 예비일은 온전한 여행의 시간이다. 일의 특성상 내게 출장은 여행과 매우 비슷한 일이다. 촬영장으로 출근하는 길에 창밖으로 흐르는 풍경이 서울이 아니라는 것만 해도 이미 여행 아니겠는가.
나에게 여행이란 세상의 모든 경계를 넘나들며 지우는 일이다. 몸으로 국경을 넘는 것은 물론이고 대륙의 경계까지 지우는 것, 도시에 중첩돼 있는 시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 일과 여행의 경계를 지우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론 삶과 여행의 경계를 지워내는 것에 도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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