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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감탄고탄 맞춤법힘겨운 겨울 출근길 끝에 아임 파인 땡큐
박태하 출판편집자, 작가 2019년 02월호



겨울 지하철 출근길이 고된 이유가 ‘추워서’만은 아니다. 거기엔 좀 더 복잡한 구석이 있다. 두툼한 옷을 껴입고 들어찬 인파와 뜨끈하게 틀어놓은 히터 때문에 몸은 무겁고 가슴은 답답하고 숨은 가쁜데 옆 사람과 밀착돼 있으니 그 숨마저도 편히 토해내지를 못한다. 사이에 끼여 살아 인간이라지만 그 사이들 사이에도 사이를 좀 줘야 하는 게 아닐까 따위의 생각을 하다 겨우 목적지에 내리면 그제야 숨통이 틔어오지만…. 이내 추위 속을 뚜벅뚜벅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사이에 끼여 살아’라고 한 걸 보고 ‘요놈, 이번엔 저기다 잘못된 맞춤법을 슬쩍 끼워 넣었군!’ 하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계실 여러분들을 실망시켜 드리겠다. ‘끼여’도 맞는 말이다. ‘끼이다’의 준말이 ‘끼다’기 때문. ‘끼이다-끼이어(=끼여)-끼이니’와 ‘끼다-끼어-끼니’는 의미도 같고 문법에도 맞다. 그럼 숨통이 ‘틔어’는 어떨까? 혹시 ‘트여’가 맞는 거 아닐까? 이 역시 ‘트이다’의 준말이 ‘틔다’이기 때문에 ‘트이어(=트여)’와 ‘틔어’ 모두 맞는 말이 된다. 그러실 분들이 많지는 않겠지만, 의욕적으로 다 끌어모아 ‘틔여’로만 안 쓰면 된다.
비슷한 친구들을 더 만나보자. ‘차이다’를 줄이면 ‘채다’, ‘파이다’를 줄이면 ‘패다’가 되는 것쯤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 이 녀석들을 다음과 같이 활용해보자.


· 차이다-차이어(=차여)-차이었다(=차였다)=채다-채어-채었다
· 파이다-파이어(=파여)-파이었다(=파였다)=패다-패어-패었다


아, 이 얼마나 아름답고 단정한 규칙성인가! 그 와중에 따뜻하게 타오르는 ‘파이어(fire)’를 보며 잠시 출근길 추위를 녹이고 이야기를 계속해보자. 이렇게 활용형을 대비시켜 보여드리는 이유는, ‘틔여’와 같은 꼴의 실수를 더러들 하시기 때문이다. 의욕적으로 다 끌어모은 통에 ‘차여/채어’로 써야 마땅할 자리에 ‘채여’를 쓰기도 하고, ‘파였다/패었다(=팼다)’를 써야 올바를 자리에 ‘패였다’를 쓰기도 하는 것. 특히 입말에서 잘 그러는데, 아래 문장에서 밑줄 부분은 화살표 뒤처럼 바꿔 써야 맞다(빗금 뒤의 것들은 잘 안 쓰이긴 하지만 맞는 표현이다).


· 너 그렇게 소홀하다가는 곧 채인다니까! → 차인다니까/챈다니까
· 진짜? 나 채일 수도 있어? → 차일/챌
· 발길에 채이는 쓰레기가 얼마나 많던지. → 차이는/채는
· 넌 목이 둥글게 패인 티셔츠가 어울려. → 파인/팬
· 웃을 때 보조개가 옴폭 패였지 뭐야. → 파였지/팼지


밑줄은 모두 (있지도 않은) ‘채이다’와 ‘패이다’를 활용한 꼴이다. ‘차이이다’와 ‘파이이다’를 줄여 쓴다면 저렇게 되려나? 아, 그러고 보니 ‘이’가 벌려놓은 저 광활한 공간을 대중교통 출근족들의 사이사이에 좀 나눠 주고 싶다. 부대껴 출근하고 또 부대껴 하루를 보내실 여러분이 출근길의 ‘패인’(pain; 외래어표기법에 맞게는 ‘페인’이지만)은 잊으시고 “아임 파인” 했으면 좋겠다. 조금은 출근길이 가뿐해질 봄도 금방 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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