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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그림으로 읽는 경제사거품경제의 교훈
최병서 동덕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2019년 02월호




2018년 초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비트코인 열풍은 실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2009년 탄생한 비트코인은 초기에 불과 몇 달러이던 가격이 2017년에는 1천달러를 넘기더니 2018년에 접어들자 무려 2만달러로 치솟았다. 그러자 너도나도 비트코인 투자에 열광했다. 그 후 불과 몇 달 만에 가격은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져버렸다. 거품이 꺼져버린 것이다. 이러한 거품경제의 효시는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찾아볼 수 있다.
1600년대 초반 네덜란드에서는 튤립에 대한 과열 투기현상이 일어나 좋은 품종의 튤립 뿌리 가격이 3천길더가 넘었을 정도였다. 당시 네덜란드 가정의 1년 생활비가 300길더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폭등이다.
영화 〈월 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2010)는 2008년 월스트리트에서 촉발된 금융위기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게코(마이클 더글러스)는 자신을 찾아온 딸의 남자친구에게 금융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튤립 버블’을 예로 든다. “버블 스토리의 시작은 1600년대의 네덜란드에서 비롯됐지. 튤립 한 뿌리의 가치가 암스테르담 강변의 아름다운 집을 한 채 살 수 있을 정도였다네. 이것이 바로 튤립 마니아(Tulip Mania) 현상이지. 그런 튤립 가격이 버블이 꺼지자 두 뿌리 가격이 10달러로 하락해버렸네.”
이스트 리버(East River)가 내려다보이는 맨해튼 고급 아파트에 사는 게코는 벽에 튤립 가격의 폭락세를 보여주는 그래프를 붙여놓고 이를 늘 교훈으로 삼는다.
17세기 플랑드르 지방은 유럽 교역의 중심지로 부상해 상업과 물류가 활발하게 늘어났고 상인들은 부를 축적했다. 이들은 자신의 초상화를 주문하거나 정원을 가꿔 부를 과시하려고 했다. 튤립에 대한 수요도 처음에는 이러한 소비 과시에서 비롯됐다. 가격이 오르는 이유는 공급은 적은데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당시 튤립은 재배하기 힘든 귀한 꽃이자 부의 상징이었다.
1630년대에 들어서자 줄무늬 튤립의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1636년경에는 뿌리 하나가 지금 시세로 무려 8만7천유로(약 1억3천만원)까지 치솟았다. 그러자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팽배해졌고 부유한 상인계급은 물론 일반 서민들까지 튤립 구입에 열을 올리게 됐다. 상업이 발달한 네덜란드에선 돈을 빌려주는 금융업이 태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튤립 투기 열풍은 더 심각해졌다. 1636년 말 가격이 급격하게 오른 한 달 동안 상승률은 무려 2,600%에 달할 정도였다. 그러나 급등하던 튤립 가격은 이후 불과 4개월 만에 99% 폭락하고 만다.
본격적으로 튤립 버블을 다룬 영화가 2017년 개봉한 〈튤립 피버〉다. 영화에는 부유한 상인의 아내와 그녀의 초상화를 그리게 된 가난한 화가 얀이 등장하고 둘은 곧 사랑에 빠진다. 이들은 튤립 버블의 광기 속에서 일확천금을 꿈꾸지만, 가격 폭락으로 실패하고 만다.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화가가 바로 얀 반 호이엔(Jan van Goyen)이다. 그는 본업인 그림보다 튤립 투기에 열중했는데 가격 거품이 빠지자 엄청난 빚더미에 앉게 됐다. 그 이후 그림과 데생을
2천점 이상 그려서 겨우 갚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튤립 열풍에 휩싸인 세태를 적나라하게 풍자한 그림으로는 얀 브뤼헐(Jan Brueghel)이 1640년경에 그린 ‘튤립 광풍 풍자화(Satire of Tulipmania)’가 있다. 참고로 얀 브뤼헐은 ‘바벨탑’을 그린 피터르 브뤼헐의 둘째 아들이다.
이 그림은 튤립 광풍 속에 비이성적 투기를 하는 사람들을 원숭이로 묘사하고 있다. 그림은 크게 두 부분으로 살펴볼 수 있다. 왼쪽은 튤립 가격이 급등하면서 희희낙락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오른쪽은 거품이 꺼지면서 낭패를 본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왼쪽 상단 저택의 발코니에는 부자가 된 원숭이들이 테이블에서 파티를 즐기고 있다. 앞쪽 하단의 한 원숭이는 검을 차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귀족 신분으로 보이는데 튤립 가격이 적혔을 목록을 들여다보고 있다. 반면 그림 오른쪽에는 패닉 상태에 빠진 원숭이들을 묘사하고 있는데 맨 오른쪽 하단의 원숭이는 가격이 폭락한 붉은 줄무늬 튤립을 땅바닥에 버린 채 오줌을 깔기고 있다. 그 위에는 흰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울고 있는 원숭이들이 있고, 그림 위쪽 멀리에는 검은 옷을 입은 무리도 있는데 아마도 투자에 실패해 목숨을 끊은 원숭이의 장례 행렬처럼 보인다.
당시 튤립은 부유층으로 신분을 상승하는 지름길이었다. 뒤늦게 높은 가격에 튤립을 사들이며 투기 대열에 동참했다가 가격 폭락에 수많은 사람이 망연자실했다. 오늘날에도 주가가 오르고 집값이 오를 때는 사회가 전반적으로 흥분 상태에 빠지는데 그때는 이미 시장이 과열돼 거품이 꺼지기 직전인 것이다. 한때 몰아쳤던 비트코인 광풍처럼.
다시 영화 〈월 스트리트〉로 돌아가면, 주인공 게코는 외친다. “인간의 탐욕은 좋은 것(Greed is good)”이라고. 거품의 형성은 언제나 그러한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런데 거품의 진짜 비극은 거품이 꺼지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것이 거품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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