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전성시대다. 서점에는 유튜브로 돈 버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책이 수없이 진열돼 있을 정도다. 매일같이 진보와 보수 논객 간 전쟁이 유튜브를 통해 벌어지고, 젊은 친구들은 TV에서 이탈해 유튜브로 쏠리고 있다. 이렇게 되면서 누구나 관심을 갖게 된 게 동영상 촬영과 편집이다. 앞으로는 글 쓰는 것 못지않게 동영상을 잘 만드는 능력이 필요한 시대가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영상편집은 창의적인 작업이라기보다는 그야말로 ‘노가다’다. 촬영한 동영상에 일일이 자막을 입히고 편집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들어간다. 그런데 이런 수고를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해 덜어주는 스타트업이 있다. ‘브류(Vrew)’라는 AI 영상편집 소프트웨어를 내놓은 보이저엑스다. 네오위즈·네이버·라인에서 슈퍼개발자로 활약하다가 AI에 꽂혀 스타트업 창업자로 변신한 남세동 보이저엑스 대표를 만나봤다.
딥러닝에 대한 호기심이 창업으로 이어져
남 대표는 업계에서는 알려진 슈퍼개발자다. 카이스트 재학 시절, 지금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으로 있는 장병규 대표의 네오위즈에서 일했다. “당시 분위기는 다들 대학원으로 진학해서 박사과정까지 마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뭔가 다른 것을 해보고 싶었어요. 회사란 어떤 곳인가 궁금했죠.” 마침 학교 동아리 선배인 장병규 대표가 만든 네오위즈라는 회사가 있었다. 1998년 남 대표는 잠시 휴학하고 그곳에서 일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인턴으로 일하면서 만든 원클릭채팅이 엄청난 성공을 거뒀어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했다. 사용자들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일주일에 100시간씩 신나게 일했다. 대학 졸업 후 다시 네오위즈로 돌아가 일하다 장병규 대표의 새로운 벤처인 첫눈이라는 검색엔진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그러다 2006년 첫눈이 네이버에 350억원에 인수됐다. 남 대표는 자연히 네이버에서 개발팀장으로 일하게 됐고, 또 기회가 생겨 네이버재팬에 가서 일했다. 네이버재팬이 ‘라인’이라는 히트상품을 내고 라인으로 사명을 바꿔 쑥쑥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한국과 일본의 인터넷대기업에서 충분히 경험을 쌓은 그는 2015년 일을 내려놓고 휴식기를 갖기로 했다.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해 17년 동안 치열하게 살았더니 벌써 30년은 일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넘치는 호기심을 가진 남 대표는 백수생활을 하면서도 계속 책을 읽고 유튜브 강연을 찾아보는 등 가만있지 못했다. 그러다가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접했다. “그때는 딥러닝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알파고의 아버지 데미스 하사비스의 카이스트 강연 동영상을 찾아봤어요. 그러다가 벽돌깨기 동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죠.” AI가 사람처럼 전략적으로 벽돌깨기 게임을 하는 것을 보고 남 대표는 충격을 받았다. 그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딥러닝을 파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기술이 세상을 바꿀 기술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딥러닝을 이용해 창업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딥러닝에 푹 빠진 남 대표의 이야기를 듣고 AI 스타트업 창업을 권유하는 지인들이 있었다. 심지어 한 게임대기업 대표는 100억원 투자를 제안했다. 남 대표는 반신반의했지만 너무나 확신에 찬 투자 제의와 구체적인 실무 진행이 이어졌다. 이 정도 자금이라면 기술개발에만 집중해볼 수 있겠다 싶어 창업을 결심했다. 남 대표는 가족과 함께 일본에서 한국으로 아예 돌아왔다. 투자프로세스를 진행하기 위해 사비를 들여 서둘러 회사를 설립하고 사무실 임대와 채용 등의 절차를 진행했다. 그러다가 남 대표는 인생에서 가장 큰 좌절을 맛봤다. 그 게임대기업이 일방적으로 이메일로 투자약속을 취소한 것이다. “평생 그렇게 화나고 괴로웠던 적이 있었나 싶어요. 정말 분했습니다.” 남 대표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록으로 남겨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창업자도 이런 일을 당하면 곤란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래서 사건의 자초지종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런데 그가 적어낸 일의 전말이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며 SNS로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언론사들이 그를 인터뷰했다.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이 일로 그는 일약 유명해졌다. “인간만사 새옹지마라고 하죠. 이 일이 전화위복이 됐습니다. 소식을 듣고 선후배들이 걱정을 해줬고 투자해주겠다고 나서는 분도 많았습니다. 또 SNS의 힘을 느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평소 AI나 창업에 대한 통찰을 SNS로 활발히 공유하기 시작했고 큰 호응을 얻었다. SNS 스타가 된 것이다. “덕분에 저와 회사가 알려지면서 좋은 인재들을 쉽게 구하게 됐습니다. 초기 스타트업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일이 좋은 개발자를 구하는 것인데 큰 도움을 받았죠.” 좌절을 딛고 보이저엑스를 본격적으로 출범한 지 이제 1년이 넘었다.
세계적 영상편집 도구로 자리매김이 목표
마치 우주선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문을 통해 보이저엑스 사무실로 들어가면 22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엔지니어가 17명, 디자이너가 4명이다. 총무·회계 등 잡일은 남 대표가 직접 한다. 절반은 대학생 인턴인 이 젊은 개발자그룹과 함께 남 대표는 AI로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에 치열하게 도전 중이다. “20~30개 프로젝트를 해봤습니다. 2~3주 만에 버린 것도 있고요. 놀라운 결과를 낼 수 있는 것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브류(Vrew)다. 비디오(video)를 맥주처럼 잘 증류(brew)한다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이다. “놀면서 유튜브로 영상을 만들어 봤습니다. 그런데 15분짜리 동영상을 만드는 데 이틀이 걸리더군요. 촬영한 인터뷰 내용을 받아 적고, 자막을 입히고 자르고, 완전히 노가다입니다. 이거야말로 AI가 할 일을 사람이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브류는 동영상 속 음성을 추출해내서 음성인식기술로 영상에 맞게 스크립트를 자동으로 만들어준다. 사용자가 그 스크립트를 편집하면 영상도 같이 편집된다. 문서편집 하듯 영상편집을 할 수 있게 해주니 유튜버는 브류를 이용하면 생산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남 대표는 “4시간 걸리던 자막작업을 브류 덕분에 10분 만에 마쳤다는 뜨거운 고객반응이 있었다”며 “보이저엑스가 안 망하도록 브류를 빨리 유료화하라”는 말까지 들었다며 웃었다. 남 대표는 2~3년 뒤에는 브류를 글로벌시장에서 영상편집의 기본도구로 자리 잡게 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동영상시장은 앞으로도 폭발적으로 성장할 겁니다. 특히 영상편집 소프트웨어시장은 10배 이상 커질 겁니다. 브류를 세계적으로 누구나 쉽게 사용하는 편리한 영상편집 소프트웨어로 키우는 것이 목표입니다.” 지금은 무료지만 수익모델 연구도 시작했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보이저엑스는 이런 AI 개발 프로젝트를 4~5가지 준비하고 있다.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