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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허남웅의 신나는 시네슈퍼 히어로의 존재를 믿습니까?
허남웅 영화평론가 2019년 02월호



*영화의 반전을 밝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슈퍼 히어로의 존재를 믿습니까? 모두가 “아니오”라고 할 때 혼자 “믿습니다!” 외치는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글래스’(사무엘 L. 잭슨)다. 술을 글래스에 따라 마셔 너무 취한 나머지 헛소리를 해대서 붙은 이름은 아니고,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해 외부의 충격에 뼈가 유리처럼 으스러져 붙은 별칭이다.
글래스와 다르게 ‘용가리 통뼈’로 무장하고 있어 열차 충돌 사고에도 머리털끝 하나, 엇! 이 사람은 대머리라 다칠 터럭이 없으니 정정하면, 타박상조차 입지 않은 사람도 있다. 데이비드 던(브루스 윌리스)이다. 글래스 왈, 오~ 신이시여, 그 어떤 충격에도 부서지지 않는 이 ‘언브레이커블(Unbreakable)’을 구하소서!


진짜 슈퍼 히어로! 진짜 빌런!
흥행이 되지 않아 관객이 구원하지 못한 〈언브레이커블〉(2000)을 되살린 건 ‘유리 몸’ 글래스의 반대편에 있는 ‘강철 히어로’ 데이비드 던의 반대편에 있는 ‘슈퍼 빌런’, 몸은 하나인데 그 안에 인격이 23개가 있어 이름보다 정체성의 숫자로 불린 〈23 아이덴티티〉(2017)다. 정체성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 달라 이 지면에 다 언급할 수는 없지만, 그중 가장 ‘슈퍼 빌런’스러운 것으로 골라 불러보자면, 아~ 무시무시하여라, 비스트(제임스 맥어보이)다.
슈퍼 히어로가 나오고, 슈퍼 빌런도 등장하고, 이들의 존재를 믿는 이도 출연하는 <글래스>는 슈퍼 히어로 영화인가? 20개가 넘는 인격을 연기한 제임스 맥어보이의 얘기를 들어보자. “슈퍼 히어로 영화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전형적인 슈퍼 히어로 영화가 아닌 다른 환경과 상황에 놓인 슈퍼 히어로 영화들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래스〉가 바로 그렇다.”
제임스 맥어보이의 말에 따르면, 〈글래스〉는 슈퍼 히어로 영화다. 근데, 다른 슈퍼 히어로 영화다. 그럼 어떻게 다른 영화인가? 영화가 시작하면, 소녀를 납치해 괴롭히는 비스트와 그를 잡으려는 데이비드 던이 체포 후 정신병원에 이송된다. 영화나 만화 속에서는 각각 슈퍼 빌런과 슈퍼 히어로일지 몰라도 현실의 시각에서는 그냥 미친놈들인 까닭이다.
글래스는 이 미친놈들이 전혀 미친놈들이 아니라고 주장해서 미친놈으로 오인당해 일찍이 정신병원에 갇힌 상태다. 이들은 도대체 왜, 한 놈은 슈퍼 히어로처럼 정의에 집착하고, 또 한 놈은 수시로 인격을 바꿔가면서 슈퍼 빌런처럼 못되게 굴지 못해 안달이고, 또또 한 놈은 슈퍼 히어로의 존재를 확인하겠다고 사고를 치는 걸까. 이들의 정신세계를 병리학적으로 분석해보면 시쳇말로 슈퍼 히어로에 미친(?) 이들의 집단 무의식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도대체 이들이 무슨 생각인지 궁금했던 정신과 전문의 엘리 스테이플 박사(사라 폴슨)는 글래스와 비스트와 데이비드 던을 한자리에 모은다. 전형적인 슈퍼 히어로 영화였다면 셋이 모인 자리에서 서로 치고 박고 싸우고 지지고 볶으면서 각자가 옹호하는 가치를 일장연설 늘어놓았을 텐데 〈글래스〉의 이들은 서로 치고 박고 싸우고 지지고 볶을 시간에 그들 각자의 능력을 “믿습니다~” 간증의 시간을 갖는다. 엘리 박사 역의 사라 폴슨 왈,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에서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라는 궁금증을 자극한다”면서 이 영화만의 특별한 매력을 정리한다.



뛰는 히어로 위의 나는 권력자?
〈글래스〉에서 나의 궁금증을 자극한 건 글래스와 비스트와 데이비드 던보다 이들에 관심을 보이는 엘리 스테이플 박사였다. 정신과 의사니까 보통 사람과는 다른 주장을 펼치고 다른 행동을 하고 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이들이 궁금한 건 당연할 터. 그렇더라도 영화에서라면 보통 정신병원은 자유의지를 억압하는 일종의 강압적인 시스템을 상징하곤 한다. 그런 맥락에서 스테이플 박사는 권력자인 셈이다. 이름이 ‘스테이플(staple)’이라서 그런가, 박사 앞에 있는 글래스는 휠체어에, 비스트는 의자에, 데이비드 던은 수갑에 몸이 강제적으로 ‘고정’돼 있다. 천하의 슈퍼 히어로도, 악명 높은 슈퍼 빌런도, 지금 뭔 생각을 하는지 수를 읽을 수 없는 천재적인 두뇌도 박사 앞에만 서면 왜 작아지는가~ 실험실의 생쥐 같은 신세다.
실제로 극중에는 글래스와 비스트와 데이비드 던을 주의 깊게 지켜보는, 스테이플 박사를 포함한 일군의 권력이 있다. 이 권력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이론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 모여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그들에게 유리하게 세상의 질서가 유지되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시도하고, 결국에 이를 관철하는 집단이다. 이들에게 글래스와 비스트와 데이비드 던은 그런 자신들이 바라는 질서를 깨뜨리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이들이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깨닫고 세상에 나오기 전에 제거하는 것이 스테이플 박사를 포함한 영화 속 권력 집단의 목적이다. 권력의 시선에서 보자면 글래스와 비스트와 데이비드 던은 똑같이 특별한 능력을 지닌 인물들이다. 슈퍼 히어로와 슈퍼 빌런으로 서로 편을 갈라 너 죽고 나 살자 티격태격하는 사이가 아닌 것이다.
요컨대 슈퍼 히어로 영화에 등장하는 슈퍼 빌런은 현실에서라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이 세상을 조작하려 드는 나쁜 권력이다. 그렇다면 현실의 슈퍼 빌런인 나쁘고 못돼먹은 권력을 막아야 할 슈퍼 히어로 그는 누구인가. 극중에서 글래스는 이런 얘기를 한다. “우리가 스스로 능력을 깨닫기를 원하지 않는 조직이 있다. 자신의 능력을 깨닫는다면 어떤 능력을 가졌든 슈퍼 히어로가 될 수 있다. 진실을 감추려는 자들은 결국 패배하게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묻나니, 슈퍼 히어로의 존재를 믿습니까? 모두가 믿습니다, 라고 할 때 혼자만 아니오, 라고 하는 자. 그대는 슈퍼 히어로인가, 슈퍼 빌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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