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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꽃보다 아빠신경삼촌
유신재 코인데스크코리아 편집장 2019년 03월호



우리 쌍둥이와 비슷한 또래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어린 아이들은 상상 속의 친구 하나씩은 두고 있다고 한다. 아이가 없을 때 이런 얘기를 들었다면 약간 오싹한 기분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육아서적에 따르면 이건 매우 정상적인 일이니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단다. 내가 어렸을 적엔 그런 친구를 둔 기억이 좀체 나지 않지만 말이다.
또래 아이들이 상상 속 친구를 사귀기 시작한 뒤에도 쌍둥이한테는 상상 속 친구가 나타나지 않았다. 쌍둥이라서 서로 친구처럼 지내니까 상상 속 친구가 필요없는가 보다 생각했다. 혼자인 아이들한테만 나타나는 건가, 나도 기억이 안 나는 게 아니라 두 살 터울 동생이 있어서 없었던 건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지나가는 줄 알았는데 몇 달 전 쌍둥이에게도 상상 속 친구가 생겼다. 그런데 또래 친구가 아니라 삼촌이다. 두 녀석 중 누가 먼저 소환한 건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무튼 ‘신경삼촌’이 생겼다. 처음에는 실존 인물인 줄 알았다. 키가 아빠보다 훨씬 더 크고 힘도 엄청 세단다. 직장 어린이집에 등·하원할 때마다 매일 마주치는 아내 회사의 보안요원 아저씨가 제일 먼저 용의선상에 올랐다. 2년 전 육아휴직 때 내가 처음 어린이집에 데리고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 쌍둥이를 워낙 예뻐한 데다가 최근 생애 첫 ‘마이쮸’로 크게 환심을 사 낯가리기로 유명한 아이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기 시작한 터였다. “저 삼촌이 신경삼촌이야?” 물었지만 둘 다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왜 신경삼촌이야? 신경질을 잘 내서 신경삼촌이야?” 물었더니 “신경삼촌은 신경질 안 내”라고 입을 모았다. 친한 학교 선배 이름이 신경수이고 우리 집에도 놀러온 적이 있어서 그 삼촌이 신경삼촌이냐 물었더니 그것도 아니란다.
둘은 합심해서 신경삼촌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갔다. 하원하는 길에 손가락에 반창고를 한 첫째한테 무슨 일이 있었냐 물으면(어린이집 선생님이 이미 어쩌다 상처가 났는지 알려줬지만) 나쁜 아저씨가 때려서 다쳤는데 신경삼촌이 나쁜 아저씨를 혼내줬단다. 그러면 둘째는 신경삼촌이 그 나쁜 아저씨를 감옥에 가뒀다고 한다. 어느 날은 신경삼촌네 집에 다녀왔단다. 둘째가 “신경삼촌 집 엄청 커” 하면, 첫째가 “신경삼촌 집 화장실이 우리 집보다 더 커” 한다. 신경삼촌 집에는 토끼부터 코끼리까지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이 다 있고, 재밌는 장난감도 많다. 신경삼촌은 요리를 잘해서 맛있는 것도 많이 해주고, 못 만드는 게 없고, 아무튼 못 하는 일이 없다.
쌍둥이로부터 신경삼촌 이야기를 듣는 건 늘 즐겁다. 아이들이 엄마와 아빠를 비롯해서 이제껏 만났던 모든 좋은 사람들, 이제껏 겪었던 모든 좋은 경험과 상황들을 한데 모아 신경삼촌을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며칠 전 첫째가 갑자기 충격적인 고백을 했다.
“그런데… 신경삼촌은 가짜야!”
아, 이렇게 신경삼촌 놀이는 막을 내리는 것인가. 다섯 살이면 상상 속 친구와 이별할 때가 된 것인가.
약간 서운한 기분이 들려고 하는데 첫째가 다음 날 가짜 선언을 번복하고 다시 신경삼촌 이야기를 이어갔다. 공동창작한 캐릭터를 아무런 상의도 없이 잃을 뻔한 둘째는 독립을 선언했다. 이제 첫째의 신경삼촌과 둘째의 신경삼촌은 이름만 같을 뿐 다른 사람이다. 첫째가 “오늘 신경삼촌이~” 하며 어쩌고저쩌고 하면, 둘째가 “오늘 내 신경삼촌은~” 하며 다른 이야기를 한다. 신경삼촌 놀이가 두 배로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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