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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허남웅의 신나는 시네7전 8기의 연기상을 향해
허남웅 영화평론가 2019년 03월호



(?영화의 관람을 방해할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5, 4, 3, 2, 1 빰빠라밤! 대체 무슨 초읽기냐고? 아카데미 시상식이다. 이 기사가 나가는 시점은 아마도 시상식 결과가 발표된 이후일 테지만, 나는 아카데미를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렇다면 수상이 거의 확실한 부문의 영화로 글을 써야 팩트와 예상치 사이의 불일치를 줄일 수 있는 법.
작품상의 〈로마〉(2018)? 100% 멕시코 배경에, 멕시코인이 출연하는 멕시코 영화에 아카데미가 작품상을 줄까? 감독상의 알폰소 쿠아론? 〈로마〉가 뛰어난 영화이기는 해도 몇 년 전 〈그래비티〉(2013)로 감독상을 받은 그에게 다시 수여할까? 남우주연의 크리스천 베일? 아카데미의 전초전이라 할 만한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상을 받았지만, 〈바이스〉(2018)라는 영화가 아직 국내 개봉 전이니, 이 부문은 패스? 그렇다면 여우주연은?




글렌 클로즈의 명연

〈더 와이프〉(2017)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남편을 결혼 이후 줄곧 뒷바라지해온 부인의 헌신과 노력 같은 것을 다루는 것 같아도, 실은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이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따라가며 부부 관계의 모순을 날카롭게 단면 해부하는 영화다. 이 작품에서 해부의 칼을 쥔 인물은 아내 조안이다. 이 말은 조안을 연기한 글렌 클로즈의 연기가 뛰어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조안은 문학에 꽤 뛰어난 재능을 갖추고도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작가 데뷔를 하지 못한 뼈아픈 배경을 가지고 있다. 대신 그녀보다 재능은 없어도 단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성공이 수월했던 남편 조(조나단 프라이스)의 성공을 대리만족하며 노년이 된 지금까지 살아왔다. 문학의 빛으로 군림하는 남편 뒤에서 그림자 역할을 마다하지 않던 조안은 웬일인지 조에게 수상 소감에서 자기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한다.

끝까지 외유내강으로 남으려는 조안의 심지라니, 라는 소감이 무색하게 이들 부부 사이에는 예상치 못한 사연이 있었다. 남편이 초안을 잡아놓으면 조안이 문을 잠가둔 서재에서 더 문학적으로, 더 디테일하게, 최종적으로는 훌륭한 작품으로 개비했던 것. 남편의 성공은, 아니 조는 조안의 문학적인 뒷바라지(?)가 있었기에 세계적인 문호가 됐다. 그러니 노벨문학상의 지분으로 치자면 한 92.53827%는 조안에게로 돌아가야 공평하다는 얘기다.
단지 남편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재능을 기부했던 조안이 조에게 느꼈을 애증의 감정이 감히 상상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와닿는 건, 보통의 내공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연기를 글렌 클로즈가 해냈기 때문이다. 글렌 클로즈로 말할 것 같으면 지금까지 아카데미 연기상에서만 무려(!) 7번의 후보에 오른 경험이 있는, 연기로 치자면 산전수전 공중전에 지하전까지 겪은 연기 신적인 존재다.
그런데 2012년에는 〈철의 여인〉의 메릴 스트립에게, 1989년에는 〈피고인〉의 조디 포스터에게, 1988년에는 〈문스트럭〉의 셰어에게, 1985년에는 〈인도로 가는 길〉의 페기 애쉬크로프트에게, 1984년에는 〈가장 위험한 해〉의 린다 헌트에게, 1983년에는 〈투씨〉의 제시카 랭에게 연기상을 양보(?)했으니, 비록 잘 나가는 작가의 아내라는 역할만 달랐지 강렬한 빛에 가려지기 마련인 그림자의 신세라는 점에서 자기 자신의 경력을 연기한 셈이다.


성숙함이 바탕이 된 명연

글렌 클로즈는 연기상의 수상자가 발표될 때마다 상을 받는 이를 향해 박수를 보내며 밝은 미소 이면에 아쉬움, 좌절 등과 같은 부정적인 마음을 숨겼다. 그게 벌써 여섯 번이니, 마음에 쌓인 서운함의 감정 지층이 얼마나 두꺼운지 말할 필요도 없을 터이지만, 장본인이 아닌 바에야 이를 정확히 알기란 불가능이다. 다만, 그와 같은 감정의 그림자를 숨기고 있었다는 건 어느 면에서 성숙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 글렌 클로즈의 연기는 오랜 배우 생활로 얻은 경험의 깊은 성숙함을 바탕으로 한다. 〈더 와이프〉의 한 장면, 노벨문학상 수상 결정을 알리는 전화에서 남편과 함께 수화기를 들고 있던 조안(을 연기한 글렌 클로즈)의 표정은 그 어떤 감정도 읽어볼 수 없을 만큼 미묘하다. 바꿔 말해 그 어떤 감정을 갖다 붙여도 어울릴 만한 백지의 표정을 글렌 클로즈(가 연기한 조안)의 얼굴에서 읽어낼 수 있다.
남편의 수상이 너무 기뻐 한동안 말을 잃은 표정일 수도, 남편의 수상 뒤에 감춰진 어떤 비밀의 사연이 조안으로 하여금 회한에 젖게 한 마음속의 심리일 수도 있는 감정을 동시에 드러내는 배우는 얼마 되지 않는다. 이번 아카데미에서 글렌 클로즈와 함께 여우주연 후보에 오른 후보, 〈스타 이즈 본〉의 레이디 가가, 〈Can You Ever Forgive Me?〉의 멜리사 매카시,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의 올리비아 콜먼, 〈로마〉의 얄리차 아파리시오 중에서 올리비아 콜먼 정도가 비견할 만하다.

그래서 아카데미의 여우주연 수상자를 두고 7번째로 후보에 오른 〈더 와이프〉의 글렌 클로즈와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의 올리비아 콜먼 2파전을 예상하기도 한다. 누가 받더라도 전혀 예상 밖은 아닌 이 부문의 수상자로 내가 글렌 클로즈를 강력한 수상자로 점치는 이유는 연기력도 그렇고 무엇보다 이런 명배우를 7번이나 후보에 올려놓고 다 물 먹인다면 아카데미가 이후 불어닥칠 후폭풍을 ‘다 감수하시겠단 뜻’인지 묻고 싶어서다. 글렌 클로즈의 여우주연 수상에 관해서는 나의 판단을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라고 쓰는 순간, 지금 막 아카데미 시상식의 여우주연 수상자가 발표됐다. 예상처럼 글렌 클로즈가 상을 받는 데는… 실패했다. 원래 내가 그렇다. 예상에는 영 젬병이다. 좀 포장하자면, 드라마 만들기를 즐기는 아카데미는 글렌 클로즈의 ‘7전 8기’ 빅 픽처를 그리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다시 예상하건대, 글렌 클로즈는 다음번 후보에 오르면 수상 확실시다. 이 판단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믿으셔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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