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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독서의 문장들일상에서 쓰는 말 속에서 불편함을 느껴본 적 있는 사람들에게
김혼비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저자, 에세이스트 2019년 03월호



1월 28일, 김복동 선생님이 타계하셨다. 깊은 애도와 함께, 위안부 문제는 물론이고 세계 전쟁 피해 여성들의 인권을 위해서도 치열하게 싸워온 그의 빛나는 삶의 궤적이 여러 언론을 통해 자세히 보도됐다. 대부분의 보도에서 그의 공식명칭은 ‘김복동 할머니’였다. ‘김복동 인권운동가’, ‘김복동 선생님’이 아니고 그 이름 뒤에는 꼭 ‘할머니’가 붙었다. 2년 반 전 백남기 선생님이 타계하셨을 때와 사뭇 달랐다. 어느 언론에서도 그를 ‘백남기 할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다. ‘농민운동가’, ‘농민’, ‘선생님’이라고 칭했다. 이게 옳은 방식일 것이다.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관계를 나타내는 말이지 한 사람의 사회적 정체성을 대표하는 말이 아니기에 공식적인 호칭으로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김복동 선생님처럼 굵직하고 뚜렷한 활동을 해온 사람에게는 더더욱.
사실 이런 현상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노년의 여성뿐만이 아니다. 뚜렷한 사회적 정체성이 있음에도 유독 여성의 뒤에는 공적 영역이 싹 지워진, 사적인 ‘친근함’만이 남은 호칭이 손쉽게 붙여지곤 했다. 왜 우리는 ‘유관순 누나’라는 말은 수없이 들어봤지만, ‘안창호 형’, ‘윤봉길 삼촌’, ‘김구 할아버지’ 같은 말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일까? 같은 1월, 정부는 성차별적 가족 호칭 개선권고안을 발표할 예정이라며 “남녀 집안 중 어느 한쪽만 높여 부르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렇다. 한쪽‘만’을 높이는 것은 정말 이상하다. 왜 ‘시댁-처댁’도 아니고 ‘시가-처가’도 아니고 ‘시댁-처가’인걸까? 언어미학적 관점에서만 봐도 이 불균형은 어색하다. 이런 차이들은 과연 사소한 것일까?


언어표현들 사이의 줄다리기는 사실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가 충돌하며 벌이는 심각한 이념의 줄다리기다. 그래서 기존의 이데올로기를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새로운 표현들이 줄다리기를 걸어오는 것을 불쾌해하며 ‘별 것도 아닌 것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폄하한다. - p.15
위험한 것은 특정 관점의 언어표현이 굳어져 버려서 사람들 사이에 많이 쓰이게 되면, 보통의 언어 사용자들은 그 표현이 담고 있는 관점에 무감각해져 버린다는 것이다. (…) 그 표현을 사회적 약속으로 받아들이고 그냥 무비판적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그 표현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관점을 닮아가 버리게 된다. - p.93


언어학자 신지영은 「언어의 줄다리기」에서 흔하게 쓰이는 단어들에 숨어 있는 차별적이고 비민주적인-그렇기 때문에 매우 낡고 후진적인-이념들을 하나씩 파헤친다. ‘짜장면’을 ‘자장면’으로 긴 시간 묶어둔 관(官) 주도적 언어정책은 괜찮은지, 왜 ‘여검사’, ‘여의사’, ‘여류작가’처럼 여성의 경우에만 성별을 특정하고 ‘남검사’, ‘남의사’, ‘남류작가’라는 말은 쓰지 않는지[이 문제는 나아가서 ‘교직의 여초현상’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언론에서 수시로 거론하면서 그보다 더 심한 ‘대학강단의 남초현상’(책에 따르면 4년제 국공립대학 여성교수 비율은 2017년 14.9%에 불과하다)은 잘 거론하지 않는 문제로도 이어진다], 미혼-기혼이라는 말 속에 담겨 있는 결혼 중심주의와 이분법적인 틀이 배제하는 세상은 무엇인지, ‘대통령’이라는 단어는 문제없는지 등의 쟁점들을 따라가다 보면 일상의 언어를 의식적으로 점검하고 바로 세우는 일이 기울어진 세계를 바로 세우는 일의 시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깟 단어 하나’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그 안에는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하나의 세계가 담길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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