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성이 유일한 섬처럼 보였다. 도쿄에서 찾아간 ‘츠타야 티사이트’의 첫인상이었다. 길 건너편에서 처음 마주한 츠타야 티사이트는 하나의 성과 같이 위풍당당했고, 강렬한 모습에 주변 풍경이 시야에서 사라져 망망대해의 유일한 섬처럼 느껴졌다. 길 건너편에서는 조명의 힘이 만든 착각인지 혹은 운명적 순간이 연출하는 환상인지 알 수 없었지만, 츠타야 티사이트에 들어서자 인생의 결정적 순간이라는 걸 직감했다.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죽기 전에 이런 공간을 하나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서울로 돌아와서 츠타야 티사이트와 그 공간을 만든 마스다 무네아키에 관한 조사를 시작했다. 지금이야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관련 정보가 많아졌지만, 당시만 해도 서울에서 츠타야 티사이트 혹은 그곳을 운영하는 회사의 정보를 찾기란 어려웠다. 그런데 때마침, 조사를 시작한 다음 날에 츠타야 티사이트의 스토리가 담긴 「라이프스타일을 팔다」라는 번역서가 출간됐다. 이 또한 운명일 거란 자기 최면으로 퇴근 후에 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사서 읽었다.
책에 주옥 같은 인사이트가 넘쳐났지만, 그중에서도 마스다 무네아키의 창업 계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회사에서 새로운 사업을 기획해서 제안하는 업무를 했는데, 기획안이 사업화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사장됐다고 했다. 이유는 두 가지로, 기획안이 승인권자들의 이해 범위 내에 있으면 이미 세상에 있다고 치부하며 사업화하지 않았고, 이해 범위 밖에 있으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승인하지 않았다는 설명이었다. 그래서 그는 머릿속에 있던 기획을 구현하기 위해 1983년에 츠타야를 직접 오픈했다. 그렇게 시작해 30여년 동안 사업을 키운 후에야, 그가 사업 초기 단계에서부터 상상해왔던 공간인 츠타야 티사이트를 세상에 선보일 수 있었다.
그의 경험담에서 나의 현재가 겹쳐 보였다. 회사 생활이 싫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세상에 새로운 결과물을 선보이고 싶어 하는 기획자로서 갈증이 생겼다. 회사에서 기획안들이 번번이 흐지부지되는 것을 경험했기에 그의 설명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30여년 전에 오사카에서 벌어진 일이 지금의 서울에서도 벌어지니, 앞으로도 대기업에 다니면서 새로운 기획을 구현하는 일은 요원할 거란 판단이 들었다. 또한 츠타야 티사이트 같은 공간을 만들려면 수십 년의 시간이 필요할 거란 생각도 들어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승부수를 띄워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여행의 이유를 만드는 여행 콘텐츠 기획사 ‘트래블코드’를 창업했고 첫 번째 여행 콘텐츠로 「퇴사준비생의 도쿄」를 세상에 내놨다.
돌이켜보면 도쿄 여행 중에 만났던 츠타야 티사이트가 인생에서 중대한 결정을 하는 계기가 됐다. 죽기 전에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으로 시작했지만, 상상을 구현하기까지의 과정에 구체적 계획이 있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괴리감에 괴로워하진 않는다. 비즈니스는 끝말잇기와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면 그다음 결과물에 대한 실마리가 보이고, 그렇게 결과물들을 이어가다 보면 언젠가 표현하고 싶은 마지막 말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또 다른 결정적 순간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