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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한민국 인재를 말하다“지혜로운 사람은 삶 전체가 죽음의 준비다”
정현채 한국내과학연구지원재단 이사장 2019년 05월호



삶의 유한함과 죽음의 예측 불허성을 일상의 삶에서 구체화시켜 나가는 것이 좋은 죽음에 이르는 길


현대 과학이 발달하고 생명연장 의료기술이 발전하면서 점점 죽음을 터부시하게 돼 이제는 대부분 살던 집이 아닌 낯선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또한 응급환자에게 적용돼야 할 치료법이 임종이 며칠 남지 않은 말기 환자에까지 적용되는 일이 비일비재해 본인의 의사와는 달리 편안하게 죽기도 어려운 환경이 되고 말았다. 고령에 여러 가지 질병이 겹친 경우에는 병들어 고통뿐인 육신을 벗어나는 것이 자연의 순리일 텐데 말이다. 현세 집착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을수록 무리하게 수명을 연장하는 데만 매달리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가능한 한 고통을 덜 겪고 삶의 마무리를 잘하기 위해서는 건강할 때부터 필연적으로 맞게 될 자신의 죽음을 직시하고 성찰해보는 자세가 반드시 필요하다.
철학자 키케로는 “지혜로운 사람은 삶 전체가 죽음의 준비다”라고 했다. 죽음 준비의 핵심은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옮겨감’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칼 구스타브 융은 수제자였던 마리 루이제 폰 프란츠 여사의 입을 통해 “죽음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세계로 가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런데 ‘죽음의 저편’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기회가 1970년대 중반부터 열리기 시작했다. 세계를 유물론적으로 해석하는 현대 과학과 의학이 발전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소위 ‘비과학적인 영역’이 베일을 벗기 시작한 것이다. 심폐소생술이 발전하면서 심장과 호흡이 멎고 동공 반사가 소실된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는 일이 생겼다. 그들 중 일부가 죽어 있던 동안 경험한 ‘근사체험(near death experience)’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의식은 반드시 뇌에 국한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영적인 현상인데, 현재 세계적으로 수천 건 이상의 사례들이 축적돼 있다. 죽음이 결코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이 체험은 『란셋(The Lancet)』 같은 저명한 의학학술지에도 연구논문이 실리는 등 이제는 의학의 한 연구 분야로 발전해나가고 있다. 근사체험자는 수년 후까지도 다른 사람에 대해 공감과 이해를 더 잘하게 되고, 인생의 목적을 잘 이해하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큰 폭으로 감소하고, 사후 생에 대한 믿음과 일상사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크게 증가했음이 연구로 밝혀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삶에 큰 변화가 온다. 재물이나 자식의 성적과 같이 지상에 머물렀던 시선을 삶의 진정한 의미로 향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내가 이 생에서 의미 있게 살다가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프랑스의 샤르댕 신부는 “우리는 영적인 체험을 하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된 체험을 하는 영적인 존재다”라는 말을 남겼다. 내가 영적인 존재라면 가까운 내 옆의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모두 영적인 존재다. 서로가 서로에게, 그리고 무한한 우주에 자신이 연결돼 있다는 걸 알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순간순간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곧 죽음 준비인 것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기여를 통해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존재감을 느끼는 것도 좋은 죽음의 한 요소다. 삶의 유한함과 죽음의 예측 불허성을 머리로만 이해하지 말고, 일상의 삶에서 구체화시켜 나가는 것이 좋은 죽음에 이르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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