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맘때쯤 나는 지인들과 함께 1회용 컵 시민 모니터링단 ‘어쓰’를 결성했다. 우리는 음료 주문 시 점원이 테이크아웃인지 물어보는지, 매장 내에서 다회용 컵에 음료를 담아주는지 등을 모니터링했다. 그 결과 조사한 프랜차이즈 카페 매장 중 약 86%가 묻지도 않고 1회용 컵에 담아줬다! 1회용 컵 쓰레기 문제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들끓자 환경부 단속이 시작되면서 매장 내에서 1회용 플라스틱 컵을 쓰던 관행이 싹 바뀌었다. 1회용 컵을 쓰던 지난 20년 세월이 민망하게 단 3개월 만에 생긴 변화였다. 마치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내린 후 기온이 뚝 떨어진 날의 체감온도 같았다. 그런데 매장을 벗어난 테이크아웃 컵은? 전 국민이 텀블러를 들고 다니지 않는 한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포기한 듯 보인다. 정녕 1회용 컵이 없는 테이크아웃은 ‘노답’일까? 독일의 프라이부르크(Freiburg)시는 25만명이 거주하는 작은 도시다. 이곳에서는 2016년부터 전체 카페 중 70%가 참여한 ‘프라이부르크 컵’ 제도를 운영 중이다. 시는 카페에 다회용 컵과 포스터를 공짜로 배포하고, 손님들은 참여 카페 어디에서나 보증금 1유로(약 1,300원)에 다회용 컵을 빌리고 반납 시 보증금을 환불받는다. 지금까지 약 2만6천개의 프라이부르크 컵이 배포됐고 약 85%의 컵이 카페로 돌아와 세척 후 재사용되고 있다. 미국의 ‘베셀 웍스’나 영국의 ‘컵클럽’은 다회용 테이크아웃 컵을 제공·수거·세척하는 기업이다. 카페·회사·캠퍼스축제 등 1회용 컵을 쓰는 곳과 계약을 맺고 다회용 컵 관리서비스를 제공한다. 서비스 받는 쪽에서 일정 비용을 지불하면 다회용 컵 뚜껑에 전자태그(RFID) 칩을 부착해 컵의 행방을 파악한다. 2018년부터 영국 스타벅스가 1회용 컵 하나당 5펜스씩 가격을 부과한 사례도 있다. 이를 라테 부담금(Latte Levy)이라고 한다. 행동경제학에 따르면 사람들은 ‘손실 회피’ 경향이 있어서 큰 이익보다 작은 손실에 훨씬 민감하다. 즉 텀블러를 사용해서 받는 300원 할인보다 당장 50원의 1회용 컵값이 더 크게 다가온다는 뜻이다. 국내에서 2002~2008년에 시행됐던 1회용 컵 보증금제도 바로 이 원리를 이용해 1회용 컵 사용을 줄이고 컵 재활용을 촉진한 바 있다. 하지만 미반환 보증금 사용처가 불분명하고 내수경제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폐지되고, 텀블러 할인 제도로 대체됐다. 그러나 폐지 후 1회용 컵 사용량은 약 66% 증가했고, 특히 폐지 직후인 2~3년 사이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국내에서만 1년에 257억개의 1회용 컵이 버려지는데 이는 지구 2바퀴를 돌리고도 남는 양이다. 또한 종이컵 내부는 폴리에틸렌이라는 플라스틱으로 코팅된 탓에 길거리에 버려지면 재활용이 어렵다. 이 코팅을 떼어내 종이만 재활용하는 전문 수거업체로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1회용 컵 재활용률은 5% 미만이다. 1회용 컵 보증금제는 빈 병 보증금제처럼 1회용 컵에 보증금을 부과해 컵을 가져오면 보증금을 되돌려 주는 정책이다. 1회용 컵을 모아 전문 수거업체로 보내면 전량 재활용될 수 있다. 보증금을 돌려받는다고 해도 일단 컵 비용을 내므로 1회용 컵 소비 감소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1회용을 사용한 기업과 소비자에게 책임을 부과할 수 있다. 또한 길가에 버려진 1회용 컵을 주워 가져온 사람은 보상을 받고 길거리가 절로 깨끗해지는 효과도 있다. 2017년 환경부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89.9%의 시민들이 컵 보증금제에 찬성했다. 그런데도 컵 보증금제를 실시하지 못하는 까닭은 단순하다. 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법을 개정할 수 있는 국회의원들이 1회용 사용이 불가피하다며 어깃장을 놨기 때문이다. 날이 따뜻해지고 있는데, 그러면 버려진 1회용 컵의 향연이 거리에 펼쳐질 텐데! 국회는 한시라도 빨리 거리에 널브러진 1회용 컵을 매장으로 되돌려 줄 컵 보증금제에 응답하라! 타는 목마름으로 컵 보증금제를 기다리며 텀블러에 아이스 커피 한잔 마시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