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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독서의 문장들‘동물’과 ‘고기’ 사이에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김혼비「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저자, 에세이스트 2019년 05월호



어떤 이야기는 흘러들어오는 순간 마음에 눌어붙어 영원히 떨어지지 않는다. 한 은사님이 개를 여섯 마리 키우게 된 사연도 그랬다. 지금보다 개 도축이 훨씬 아무 데서 아무렇게나 이뤄지던 시절, 그는 중년의 남자가 작은 케이지 속에 든 살아 있는 개를 차례차례 몽둥이로 때려잡는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살육의 풍경에 얼어붙어 고개도 돌리지 못하고 있을 때, 개 한 마리가 케이지 밖으로 빠져나와 그리 빠르다고는 하지 못할, 그래도 사람이 쉽게 따라잡을 수는 없을 속도로 달아났다. 탈출에 성공한 개를 보며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저만치에서 그 남자가 다정한 목소리로 개를 불렀다. “이리 와, 착하지.” 주인의 목소리를 들은 개는 그 자리에 서서 주인을 돌아봤다. 은사님은 그때의 개 얼굴이 도저히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저기로 가면 죽을 텐데, 그런데 주인이 계속 나를 부르는데, 주인에게 가지도 못하고 도망가지도 못하고 제자리에서 안절부절 겅중대던 개. 개는 결국 주인에게로 가서 죽었다.
어떤 책은 마음에 괴롭게 눌어붙을 이야기들을 너무 많이 품고 있어서 선뜻 펼쳐지지 않는다. 르포 작가 한승태의 「고기로 태어나서」도 그랬다. 2018년, 출판계에서 가장 역사 깊은 한국출판문화상 저술(교양) 부문 수상작이자 다수 언론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도 선정된 이 책은, 르포 작가 한승태가 한국 식용 동물농장 열 곳에서 직접 일하며 닭고기, 돼지고기, 개고기가 어떤 과정을 거쳐 세상에 나오는지를 생생히 담아낸, ‘맛있는 고기’와 ‘힘쓰는 고기’(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지난해 4월 출간되자마자 사놓고 1년 넘게 펴지 못했던 것은 두려워서였다. “저기압일 때는 고기 앞”으로 신나게 돌진하는 것을 정답으로 여겨왔고 월급 받으면 프리랜서 친구들에게 고기 사주는 걸 취미 삼아온 나에게 이 책은 얼마나 큰 고민과 괴로움을 남길지. 하지만 그래서 더욱 읽어야만 했다.
그리고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 혹시 뉴스나 신문을 통해 고기들의 실상을 이미 알고 있으니 굳이 읽지 않아도 되겠다고 결정했다면, 혹은 결국 결론은 채식 권유 아니겠느냐고 짐작한다면, 혹은 전체를 무시하고 부분만 극대화해 감정에 호소하는 현실고발글이 아닐까 의심이 든다면, 그렇지 않으니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한승태가 그리는 ‘동물농장’은 어떤 면에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보다 날카로우며, 동물과 동물 사이, 동물과 인간 사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 ‘돈’과 ‘생존’이 끼어들 때 벌어질 수 있는 여러 층위의 현실을 세밀하고 묵직하게 그려낸다.
이 책은 동물과 고기 사이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매우 현실적인 형태의 답을 손에 쥐어준다. 이를테면 아직까지 논란이 되곤 하는 “왜 유독 개고기만 나쁜가. 다른 동물과 차별하는 것 아닌가. 위선 아닌가.” 같은 미시적인 문제(이 문제에 관한 가장 설득력 있는 답을 만날 수 있다)부터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막막할 정도로 뒤엉켜 있는 ‘구조’ 앞에서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게 무엇인지 같은 거시적인 문제까지.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식을 제도화하는 것이 우리가 맛을 위해 번식시키고 때 이른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동물들에게 져야 하는 최소한의 의무가 아닌가 싶다. - p.454


그리고 그 ‘최소한’의 의무의 시작은 ‘직면’일 것이다. 고기와 나 사이에 놓인 이야기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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