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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꽃보다 아빠영국오빠
유신재 코인데스크코리아 편집장 2019년 05월호




런던에서 살고 있는 아내의 중학교 동창 현주가 영국인 남편과 아들 둘을 데리고 우리 집에 놀러 왔다. 낯가림이 심한 쌍둥이들에게는 어린이집 제임스 선생님처럼 영어를 하는 오빠들이 놀러 온다고, 제임스 선생님한테 배운 대로 헬로, 하이 하면서 놀면 재밌을 거라고 며칠 전부터 얘기를 해놨지만 영 마뜩지 않아 했다. 사실 나도 만 아홉 살, 여섯 살 사내아이들이 온다는 게 그다지 반갑지는 않았다. 사내아이들 아닌가!(딸 쌍둥이 아빠로서 늘 아들만 둔 부모들을 불쌍히 여겨왔다.)
하지만 이 영국 남자아이들은 무척 점잖았다. 놀랍게도 이 아이들은 예의를 갖출 줄 알았고, 부모가 개입하지 않아도 행동과 목소리를 절제할 줄 알았으며, 식탁에 얌전히 앉아 밥을 먹었다. 과연 영국 신사는 떡잎부터 다른 것인가. 영국인 아빠 조나단은 영국에도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가 있는데 자기 아이들은 후자일 뿐이라고 대수롭지 않게(그러나 은근히 자랑스럽게) 말했다. 쌍둥이들도 금세 경계를 풀고 영국 오빠 둘이 선보인 ‘잭과 콩나무’, ‘아기돼지 삼형제’ 공연을 넋을 놓고 감상했다. 심지어 하룻밤 자고 떠나는 영국 오빠들과 헤어지는 걸 서운해 하기까지 했다.[오빠들에게 한국식 미들네임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쌍둥이들은 스스로 영어 이름을 지었다. 첫째는 캣(Cat), 둘째는 캣독코알라(Cat-dog-koala)다.]
영국 부모와 밤늦도록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동안 나는 맞벌이 부부가 아이 키우기 힘든 게 한국만의 독특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는데 영국의 부모들도 힘들기는 매한가지였다.
런던의 살인적인 물가를 감당하려면 어지간한 부자가 아닌 이상 맞벌이는 필수다. 현주와 조나단은 같은 회사에 다니는데 탄력근로제 덕분에 간신히 일과 육아를 병행하고 있다. 부부가 번갈아가며 아침 7시에 출근하고 3시에 퇴근해 아이들을 돌본다고 한다. 닷새 동안 할 일을 나흘에 해치우고 하루를 쉬는 식으로 아이들 볼 시간을 낸 적도 있었다. 그것도 대기업이니 가능한 일이다. 작은 회사에서는 이 같은 배려를 기대하기 힘들다.
그래서 런던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도시의 부모 집(은퇴한 노인들이 런던 가까이 살기에는 집세가 너무 비싸다) 근처에 살면서 도움을 받고, 짧게는 왕복 네 시간, 길게는 여섯 시간씩 코치(coach; 영국의 고속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는 경우도 흔하단다. 노년에 손주들 돌보느라 고생하는 한국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안쓰럽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지역적인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한 세대 문제라는 걸 처음 알게 됐다.
영국 부모는 쌍둥이들이 다니고 있는 직장 어린이집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출근하면서 데려다주고 퇴근할 때 데려오면 된다니! 아침밥부터 저녁밥까지 세끼를 먹여준다니! 게다가 공짜라니! 저출산 문제 해결의 답은 직장 어린이집 확대에 있다는 우리 부부의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곧 스승의 날이다. 평생 만난 여러 스승님들께는 죄송스러운 말씀이지만, 진심으로 깊이 고마움을 느낀 것은 우리 쌍둥이들을 보살펴주시는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처음이다. 이 훌륭한 선생님들은 어린이집 정책에 따라 작은 선물도 받지 않는다. 이 지면을 통해서나마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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