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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허남웅의 신나는 시네‘나의 형제’를 향한 가치
허남웅 영화평론가 2019년 05월호




형제는 용감했다. 아니, 그보다는 특별했다. 친형제도 아닌데 친형제보다 더 친형제 같아서 특별했다. 피 한 방울 이상 섞인 가족끼리도 이리 매치고 저리 뒤치고 함께하기 싫다며 해체하는 게 일상다반사인 작금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들끼리 친형제처럼 지내는 사연은, 그래서 특별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형제다
세하(신하균)는 〈엑스맨〉 시리즈의 캐릭터로 치자면 ‘자비에’다. 비상한 두뇌를 가졌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어 휠체어에 의지하는 신세다. 동구(이광수)는 돌고래 버금갈 정도는 아니어도 돌고래 별명이 어색하지 않은 수영 실력을 갖췄지만, 가까운 이의 도움 없이는 생활을 이어가기 힘들다.
자라온 환경과 성(姓)은 달라도 가족과 떨어진 처지만큼은 다르지 않은 세하와 동구는 신부님이 운영하는 ‘책임의 집’에서 만나 어릴 때부터 서로의 보호자 역할을 자처했다. 하지만 신부님이 세상을 떠나고 그 때문에 책임의 집으로 들어오는 지원이 모두 끊기면서 세하와 동구는 강제로 이산할 위기에 처한다.
머리 역할을 담당하는 세하는 한수영하는 동구와 모종의 계획을 세운다. 수영대회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책임의 집을 재건하고 헤어지지 않기로 한 것. 마침 수영장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미현(이솜)이 수영 코치를 자처한다. 빨간 풍선처럼 뜨겁게 부푼 희망도 잠시, 동구는 1위를 달리던 중 무슨 까닭인지 레이스를 포기한다.
〈나의 특별한 형제〉가 용기 있는 시도인 건 대중영화에서 주변부에 머물렀던 장애인이 영화를 책임지는 주인공 역할을 맡아서다. 더 용기 있는 시도인 건 대중영화의 흥행 공식으로 웃음과 눈물을 황금분할하는 게으른 창작의 독과점 속에서 장애인의 희화화와 타자화를 최대한 경계하고 있어서다.
이 영화의 제작자인 심재명, 하정완의 얘기를 들어보자. “약자들이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살아가는 모습을 한 편의 우화로 따뜻하게 묘사함으로써 함께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생기 있게 전하고자 했다. 그 오래전 어린 동구와 세하가 서로에게 마음의 손을 내밀었듯이.”


우리는 가족이다
흔히 장애인을 타자화하는 시선이란 이들이 정신적·신체적 능력이 떨어진다며 정상-비정상의 이분법 속에서 정상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나의 특별한 형제〉는 바로 이런 비장애인의 편견을 지양하면서 장애인을 향한 독립된 개인을 지향하는 태도를 전면에 내세운다.
뻔한 공식이라면 영화의 마지막에 이들을 버렸던 친가족을 극적으로 등장시켜 “아들아 못난 부모를 용서해라. 엉엉”, “엄마 왜 인제야 저를 찾아온 거예요. 흑흑”, “우리 이제 행복하게 함께 살자꾸나. 하하” 눈물과 웃음으로 관객과 하나 되는 감동의 파노라마를 선사할 터.
이 영화의 각본을 쓰고 연출한 육상효 감독은 이런 기대, 아니 우려를 불식한다. 가족이 등장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세하와 동구를 갈라놓는 갈등의 기폭제 역할로 제한한다. 대신 그때부터 영화는 우리의 주인공들이 좀 불편할지언정 가족을 이뤄 서로를 도와가며 생활을 이어가는 데 별문제가 없음을 증명하는 데 클라이맥스를 할애한다.
식사 장면이 대미를 장식하는 건 이런 이유일 터. 식구(食口)는 같은 집에서 살며 끼니를 함께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나의 특별한 형제〉의 식사 장면에서 함께하는 이들은 세하와 동구와 미현이다. 동구의 가족은 동구를 피가 섞인 가족의 품에 억지로 두는 대신 동구가 가족으로 더 편하게 느끼는 세하와 미현과 함께하도록 배려한다. 전통적인 가족 개념이 피로 설명된다면 현대사회의 가족은 피보다 밥에 가깝다고 이 영화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
비약이라고? 〈나의 특별한 형제〉는 한몸처럼 살아온 지체 장애인 최승규 씨와 지적 장애인 박종렬 씨의 실화를 극화했다. 1996년 광주의 한 복지원에서 처음 만나 ‘강력 접착제’로 불렸을 만큼 둘은 매일같이 붙어 지냈다. 2002년에는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한 최승규 씨를 위해 박종렬 씨가 4년 동안 휠체어를 밀고 강의실을 함께 다니며 책장을 넘겨줬고 그 도움으로 최승규 씨는 대학을 졸업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형제란 이런 거다. 글 서두에 ‘특별한’을 애써 강조했지만, 굳이 이 수식을 붙이지 않아도 오목과 볼록으로 하나 되는 관계. 이런 관계의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에 ‘특별한’을 강조한 게 아닐까. 〈나의 특별한 형제〉는 결국, ‘나의 형제’를 향한 가치에 방점을 둔다. 이제 우리 마음에 빗장을 걸고 있는 ‘특별한’의 자물쇠를 풀어 사심 없는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손을 내밀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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