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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독서의 문장들상처투성이 세상 속에서 서로의 용기가 되는 법을 찾고 싶은 이들에게
김혼비「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저자, 에세이스트 2019년 06월호



우리가 살아가면서 받는 크고 작은 상처들의 이유를 가만히 따져보면 대개는 나의 존재 혹은 존재의 일부를 부정당해서다. 분명히 최선을 다해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서 그 열심을 의심받을 때, 단 한 번의 행동이나 말로 나라는 사람이 단칼에 규정지어질 때, 사랑받고 싶은 사람에게 그만큼의 사랑을 되받을 만한 존재가 아니라고 판단돼 관계에서 밀려날 때,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진심을 오해받을 때.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경우는 또 어떤가. 그 사람에게 나는 신의를 지킬 만한 소중한 존재가 아니었다는 데서 오는 상처는 크고 쓰라리다.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리는 크고 작은 판단들은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누구도 타인에 관해 완벽하게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갖고 있는 (단편적이지만 확실하다고 믿기 쉬운) 정보와 (편견이 섞여 있지만 공정하다고 믿기 쉬운) 경험에 기대 타인의 존재를 ‘짐작’하고, 때로는 그 짐작들이 모여 ‘낙인’이 만들어진다. 낙인에는 낙인 바깥의 부분을 다 지워버리는 힘이 있기에, 그리하여 누군가는 오직 ‘낙인’으로만 남는다. 어제는 누군가에게 부당하게 낙인찍혀 눈물을 흘렸다가도 오늘은 누군가에게 무심코 낙인을 찍을 수 있는, 그런 복잡한 관계의 얽힘들을 「비바, 제인」은 그 어떤 소설보다 치밀하고 섬세하게 그려낸다.
소설의 중심 사건은 ‘대통령감’으로 칭송받는 중년 정치인 에런 레빈과 스무 살 여성 인턴 아비바 그로스먼의 불륜 스캔들이다. 언론의 선정적 보도로 스캔들이 (어련하게도) ‘레빈게이트’가 아니라 ‘아비바게이트’로 명명되면서, (어련하게도) 레빈은 정치인으로서 건재하게 결혼생활까지 평화롭게 이어나가지만, 아비바는 이름과 신상이 만천하에 공개되면서 삶을 중단당한다. 온갖 슬럿셰이밍(slut shaming; 옷차림이나 품행을 이유로 ‘동정받을 가치가 없는 피해자’로 낙인찍는 전형적인 성차별 프레임 중 하나)이 그에게 쏟아지고, 어떤 회사에서도 그를 고용하지 않는다.
중단당한 삶을 기어이 다시 움직이는 아비바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몇 번을 울었다. 그 여정에는 아비바의 용기뿐만 아니라 아비바의 낙인 바깥 부분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들의 깊은 연대가 있다. 아비바가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길 바라는 레빈 의원의 부인과 아비바의 딸이 우연히 함께 보내는 한나절은 또 얼마나 눈부신지. 각자 처한 입장에 따라 상처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관계에 놓인 사람들이 어떻게 이해에까지 다다를 수 있는지, 이해에 다다랐다고 해서 그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우리가 무엇을 노력해보고 어떻게 미움 대신 서로의 용기가 될 수 있는지 「비바, 제인」은 어떤 가능성을 우리 손에 쥐어준다.


당신이 말했다. “어떻게 그 스캔들을 극복했어?”
그녀가 말했다. “수치스러워하기를 거부했어.”
“어떻게?” 당신이 물었다.
“사람들이 덤벼들어도 난 가던 길을 계속 갔지.” - p.395


회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존재의 상처를 입은 날, 그런 상처를 누군가에게 입힌 날, 누군가의 그런 상처를 발견한 날, 나는 분명 「비바, 제인」을 다시 읽을 것이다. 상처를 끌어안고 나아갈 용기와, 나의 섣부른 판단을 되짚어볼 수 있는 시선과, 타인에게 가장 필요한 방식의 연대를 모색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그런 날에. 게다가 그런 날일수록 이 소설의 커다란 매력인, 울다가도 큰 소리로 웃게 만드는 보석 같은 위트가 필요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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