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면서 받는 크고 작은 상처들의 이유를 가만히 따져보면 대개는 나의 존재 혹은 존재의 일부를 부정당해서다. 분명히 최선을 다해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서 그 열심을 의심받을 때, 단 한 번의 행동이나 말로 나라는 사람이 단칼에 규정지어질 때, 사랑받고 싶은 사람에게 그만큼의 사랑을 되받을 만한 존재가 아니라고 판단돼 관계에서 밀려날 때,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진심을 오해받을 때.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경우는 또 어떤가. 그 사람에게 나는 신의를 지킬 만한 소중한 존재가 아니었다는 데서 오는 상처는 크고 쓰라리다.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리는 크고 작은 판단들은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누구도 타인에 관해 완벽하게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갖고 있는 (단편적이지만 확실하다고 믿기 쉬운) 정보와 (편견이 섞여 있지만 공정하다고 믿기 쉬운) 경험에 기대 타인의 존재를 ‘짐작’하고, 때로는 그 짐작들이 모여 ‘낙인’이 만들어진다. 낙인에는 낙인 바깥의 부분을 다 지워버리는 힘이 있기에, 그리하여 누군가는 오직 ‘낙인’으로만 남는다. 어제는 누군가에게 부당하게 낙인찍혀 눈물을 흘렸다가도 오늘은 누군가에게 무심코 낙인을 찍을 수 있는, 그런 복잡한 관계의 얽힘들을 「비바, 제인」은 그 어떤 소설보다 치밀하고 섬세하게 그려낸다. 소설의 중심 사건은 ‘대통령감’으로 칭송받는 중년 정치인 에런 레빈과 스무 살 여성 인턴 아비바 그로스먼의 불륜 스캔들이다. 언론의 선정적 보도로 스캔들이 (어련하게도) ‘레빈게이트’가 아니라 ‘아비바게이트’로 명명되면서, (어련하게도) 레빈은 정치인으로서 건재하게 결혼생활까지 평화롭게 이어나가지만, 아비바는 이름과 신상이 만천하에 공개되면서 삶을 중단당한다. 온갖 슬럿셰이밍(slut shaming; 옷차림이나 품행을 이유로 ‘동정받을 가치가 없는 피해자’로 낙인찍는 전형적인 성차별 프레임 중 하나)이 그에게 쏟아지고, 어떤 회사에서도 그를 고용하지 않는다. 중단당한 삶을 기어이 다시 움직이는 아비바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몇 번을 울었다. 그 여정에는 아비바의 용기뿐만 아니라 아비바의 낙인 바깥 부분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들의 깊은 연대가 있다. 아비바가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길 바라는 레빈 의원의 부인과 아비바의 딸이 우연히 함께 보내는 한나절은 또 얼마나 눈부신지. 각자 처한 입장에 따라 상처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관계에 놓인 사람들이 어떻게 이해에까지 다다를 수 있는지, 이해에 다다랐다고 해서 그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우리가 무엇을 노력해보고 어떻게 미움 대신 서로의 용기가 될 수 있는지 「비바, 제인」은 어떤 가능성을 우리 손에 쥐어준다.
당신이 말했다. “어떻게 그 스캔들을 극복했어?” 그녀가 말했다. “수치스러워하기를 거부했어.” “어떻게?” 당신이 물었다. “사람들이 덤벼들어도 난 가던 길을 계속 갔지.” - p.395
회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존재의 상처를 입은 날, 그런 상처를 누군가에게 입힌 날, 누군가의 그런 상처를 발견한 날, 나는 분명 「비바, 제인」을 다시 읽을 것이다. 상처를 끌어안고 나아갈 용기와, 나의 섣부른 판단을 되짚어볼 수 있는 시선과, 타인에게 가장 필요한 방식의 연대를 모색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그런 날에. 게다가 그런 날일수록 이 소설의 커다란 매력인, 울다가도 큰 소리로 웃게 만드는 보석 같은 위트가 필요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