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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염승선의 브랜드텔링보이지 않는 것이 이루어낸 짜릿함
염승선 「애플은 왜 제품이 아니라 브랜드텔링에 집중했을까?」 저자 2019년 06월호

 

 

 

오늘도 박사는 설레는 마음으로 레 부이앙(Les Bouillens)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프랑스 남쪽 산악 마을 베르제즈(Vergeze)에 있는 레 부이앙은 1억2천만년 전쯤 시작된 화산활동에 의해 물과 화산가스가 만나 서로 뒤엉키고 섞여 보글거리는 탄산수 샘이다. 그 모습이 마치 ‘끓는 물’처럼 보여 이름도 같은 의미의 ‘레 부이앙’이라 붙여졌다. 그라니에(Granier) 가문이 소유했던 이 지역은 1884년 큰 화재로 모든 것이 소실되고 가문은 파산했다. 평소 탄산수 치료에 관심이 많았던 박사는 연구를 위해 1894년 레 부이앙 광천수 소유권을 확보했다. 그 후 박사는 쉼 없이 연구에 몰두했다.
박사는 자연에 의해 만들어진 탄산수에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확신했다. 기원전 218년 로마로 향하던 한니발 장군의 부대가 레 부이앙 물을 마시고 힘을 얻었고, 기원전 58년 로마가 프랑스를 점령한 500여년 동안에도 이 물은 약으로 사용했다지 않던가. 박사는 고대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를 의학적으로 증명하고 싶었다. 여러 달 동안 이어진 연구 끝에 박사는 레 부이앙의 탄산수는 탄산수소염이 다량 함유돼 몸에서 생긴 산성 물질을 중화하는 역할을 하고 칼슘 등 미네랄은 소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는 걸 밝혀냈다. 실제로 치료적 특성이 있다는 결과를 얻은 박사는 꿈을 품기 시작했다.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레 부이앙 샘물을 마실 수 있도록 하자!’ 누구든 레 부이앙의 물을 마시고 치료받을 수 있으려면 성분 그대로를 용기에 담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 박사는 펌프로 끌어올린 탄산수의 탄산가스와 물을 따로 분리해 정수하고 다시 탄산을 주입하는 방법을 개발해냈다. 정수한 후 리터당 7g의 탄산 비율을 주입하면 레 부이앙의 탄산수가 그대로 용기에 담기게 된다. 용기에 탄산가스를 담을 때 만들어지는 압력을 용기가 버틸 수 있어야 하므로 유리병과 병마개를 사용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연에 존재하는 세균을 없앰으로써 탄산수의 성질이 변하는 걸 방지할 수 있게 됐다. 박사는 레 부이앙의 탄산수를 상품화할 수 있도록 현대적인 시스템을 갖췄다. 
다음 단계는 탄산수의 유통이었다. 그러려면 더 많은 자본이 필요했다. 투자자를 물색하던 중 우연인지 필연인지 영국의 한 귀족과 운명적으로 만난다. 그의 이름은 존 함스워드(St John Harmsworth). 1906년에 큰 교통사고를 당한 함스워드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게 되자 요양을 위해 온천으로 이름난 베르제즈 지역을 방문했다. 이때 박사를 만나 꿈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 그의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은 함스워드는 레 부이앙의 탄산수 사업에 함께 뛰어든다. 함스워드는 박사의 모든 것이 담긴 이 상품에 박사의 이름을 쓸 것을 제안한다. 또 자신이 교통사고로 물리치료를 받을 때 사용했던 인디언 곤봉을 떠올려 병의 디자인을 완성시켰다. 함스워드에겐 치료의 상징이었다. ‘페리에(Perrier)’는 이렇게 탄생한다.

 

보이지 않는 것이 드러나다
1863년 천혜 자연 그대로의 탄산수를 세계 최초로 매력적인 초록색 병에 담아 판매를 시작한 페리에는 박사가 예상했던 것처럼 많은 사람이 호응했다. 품질을 인정받아 영국 왕실에서 납품을 허가했고, 1908년에는 영국과 그 식민지인 인도, 싱가포르 등에서 500만병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1920년 네슬레가 인수한 후에도 페리에는 인공적인 탄산가스를 주입하는 경쟁 브랜드에 밀리지 않고 여전히 매년 전 세계 140여국에서 10억병 이상이 판매되고 있는 이른바 세계 1위 탄산수 브랜드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브랜드를 만드는 이의 신념과 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상품이나 서비스 안에 고스란히 담겨 브랜드의 정체성을 이루는 DNA가 된다. 브랜드가 행하는 모든 과정이 신념과 꿈을 향하기 때문이다. 신념과 꿈이 거짓이면 대중은 브랜드 정체성도 거짓된 것으로 인지하고, 진실하고 견고하다면 브랜드 정체성도 진실하고 견고하다 인지한다. 브랜드의 실체와 사람들의 인지가 일치하는 그 접점이 바로 브랜드 정체성이다. 보여지는 것으로 우긴다 해서 브랜드의 정체성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신념과 꿈은 브랜드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된다. 목표와 실행 그 자체이기 때문에 엄청난 미사여구를 동원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인지하고 브랜드가 하는 말로 인식한다. 그렇기에 그 브랜드만이 전할 수 있는 이 세상 하나뿐인 메시지가 된다. 보이지 않는 것이 만들어내는 브랜드의 원천인 셈이다.
홍운탁월(烘雲拓月)이란 말이 있다. 구름으로 달을 드러내며 그림을 그리는 기법이다. 우리는 흔히 드러나 보이는 것에만 치중한 나머지 보이지 않는 것의 힘을 간과하곤 한다. 브랜드 정체성과 메시지가 전하는 진정성과 진실은 사실 보이지 않는 것, 그래서 외면했던 것에서 실체가 드러났을 때 더욱 빛이 나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강하게 인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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