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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그림으로 읽는 경제사중상주의의 대두, 그리고 베르메르의 ‘음악 교습’
최병서 동덕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2019년 06월호







서양 미술가 중 빛을 가장 잘 이해한 화가를 꼽으라면 누구도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1632~1675)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로 주로 실내 풍경을 그렸다. 약 35점가량 되는 그의 작품 중 28점이 유리창을 통해 빛이 들어오는 실내 풍경일 정도다. 특히 그는 세밀한 붓끝으로 실내에 들어오는 빛 속에 신비롭고 부드럽게 드러나는 인물의 표정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그의 작품 중에 영화로도 제작돼 유명해진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를 보면, 우중충한 도시의 배경과는 달리 ‘빛의 화가’의 작업실답게 아주 밝은 색감을 구사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베르메르가 빛과 명암에 관해 그토록 집착을 보인 것은 렘브란트 화풍에 크게 영향을 받아서다. 그는 렘브란트의 가장 뛰어난 제자에게서 그림을 배웠다고 한다.
왜 그의 그림에는 늘 창문이 등장하는 것일까? 당시 창유리는 글라스 블로잉(glass blowing) 기법으로 만들어졌다. 창은 납으로 된 틀로 작게 나눠져 있고 거기에 유리조각을 끼웠다. 유리 가공기술이 지금 같지 않았기 때문에 유리창 표면은 구불구불해서 창유리를 통해서 본다면 시각적인 찌그러짐으로 인해 창밖의 풍경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창유리를 통해서 들어오는 빛은 실내의 어둠을 걷어가며 실내를 따듯하고 밝게 바꿨다. 네덜란드는 화창한 날이 별로 없기 때문에 맑은 날 실내로 들어오는 햇빛은 그들에게는 축복이다. 그만큼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창문은 생활에 중요한 부분이었다. 베르메르에게 유리창은 실내의 진풍경이 드러나도록 빛을 들어오게 하는 매개체였다고 할 수 있다.
그의 그림을 보는 이들은 적막한 침묵을 느끼게 된다. 화면 안에서 시간이 정지한 듯한 강렬한 인상을 받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림 속에서는 오히려 시간과 공간이 마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환각마저 들 정도다.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대개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만 묵묵히 한다. 그래서 그림 앞에 있는 관람자는 마치 다른 사람의 일상을 몰래 훔쳐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베르메르의 ‘음악 교습(The Music Lesson)’을 보면 이 같은 특징들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악기 앞에 있는 여인의 뒷모습을 보면 그리 편치 않은 자세를 하고 있는데 그의 속마음은 거울에 비친 그의 얼굴에서 읽어낼 수 있다. 더욱이 한 손에 막대기를 짚고 오른편에 서 있는 음악교사의 엄격한 모습에서 이 음악 교습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앞과 뒤에 배치된 가구와 악기가 은연중에 원근감을 표현하고 있으며, 피아노를 연습하고 있는 여인의 뒤에서 들어오는 빛은 그녀가 입은 옷의 섬세한 질감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중세부터 지중해 지역에서는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제노아, 밀라노 등의 항구도시들이 상업의 중심지였으며, 북유럽 지역에서는 플랑드르 지방과 북부 독일 지방이 상업과 교역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15세기 말부터 시작된 신대륙의 발견과 동인도항로의 개척으로 세계시장은 급속하게 확대됐다. 이와 함께 신시장의 생산물과 자원·식민지 획득을 둘러싸고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의 국가 간에 격심한 상업전쟁이 전개됐다.
신대륙탐험이 이 시기에 급속히 퍼진 이유는 새로운 금광의 개발 가능성을 탐색할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로 각 국가의 왕실은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서는 탐험가에게 상당한 지원을 했다. 특히 16세기 중반 무렵 볼리비아와 멕시코에서 금광과 은광이 발견돼 이것이 유럽으로 유입되면서 유럽의 금, 은 보유량은 비약적으로 증대했다.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 아래 중상주의(mercantilism)라는 경제사상이 싹트게 됐다.
중상주의하에서 절대주의 국가의 경제적 목표는 국부의 증진에 있었다. 국부의 증진은 곧 화폐(금, 은)의 축적을 의미하며, 화폐는 교환, 즉 상업을 통해 획득된다고 생각했다. 프랑스의 재상이었던 콜베르(Colbert)는 “국가의 위대함은 그 나라의 화폐의 풍부함에 있다”고 할 정도였다. 중상주의 무역론은 이 같은 화폐이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외국 무역은 화폐의 증가를 초래하는 것이어서 외국 무역이 국부를 얻는 첩경이라고 봤다. 따라서 이들은 대외무역에 큰 관심을 보였는데, 초기에는 자국의 화폐가 유출되지 않도록 수입을 극도로 억제하는 중금주의(bullionism)를 채택했다. 나중에는 무역을 통한 이익증대를 꾀하는 무역차액론(theory of balance of trade)에 입각해 물품을 수출해 그 대금으로 최대한 많은 ‘금’을 축적하는 것이 목표가 됐다. 따라서 수출은 장려되고 수입은 제한됐다. 즉 중상주의적 정책기조는 보호무역이었다. 중상주의 시대가 끝난 것은 영국의 경우 산업혁명에 따라 중상주의적 체계가 제조업 중심의 공업적 체계로 바뀌면서 중상주의적 경제정책이 더 이상 불필요하게 된 18세기 중엽이다.
베르메르의 그림 ‘음악 교습’은 당시 부를 축적한 중산계층의 여성들이 교양교육의 하나로 피아노 레슨을 받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당시 플랑드르 지방은 무역을 통해 획득한 부로 말미암아 신흥 상인계층이 급속히 늘어났다. 이들의 소득과 생활수준은 빠르게 향상됐고, 이들은 새로운 경제적 중산계급을 형성했다. 이들 부르주아 계층의 소비수준이 높아지면서 특히 문화와 교육에 대한 지출이 늘어났다. 신흥 상인계층에서도 문화와 예술에 대한 수요가 진작됨에 따라 가정에서도 여인들의 교양을 증진시키는 소양교육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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