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기생충〉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황금종려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지는 잘 모르겠고. 국제영화제에서 최고로 치는 칸영화제에서, 게다가 칸영화제에서 최고로 치는 상이 황금종려상이기 때문에 대단한 상 정도로 이해되는 분위기 같다. 이 상과 관련한 재미난 일화가 있다. 〈디판〉(2015)이라는 영화가 있다. 국내에도 개봉했는데 아시는 분이 계실는지. 아무튼 국내에서의 낮은 인지도와 별개로 2015년 칸영화제에서 〈기생충〉이 받은 황금종려상을 받았는데 감독이 수상 소감으로 이렇게 말했다. “올해 영화를 만들지 않은 미카엘 하네케 감독에게 감사드립니다.” 이 무슨 소리?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평생 한 번 받기도 힘든 황금종려상을 〈하얀리본〉(2009)과 〈아무르〉(2012)로 두 번 연달아 받았다. 황금종려상이 아니더라도 〈피아니스트〉(2001)로 심사위원 대상, 〈히든〉(2005)으로 감독상 등 중요한 상을 꼭 챙겼다. 〈디판〉 감독의 말은 만약 하네케의 영화와 경쟁했다면 그의 수상 경력을 고려했을 때 황금종려상을 못 받을 수도 있었다는 우스갯소리였다. 그럴 정도로 하네케 영화는 완성도가 높기로 정평이 나 있다.
행복할 것 같은데 행복하지 않은 가족 〈해피엔드〉(2017)는 하네케 감독의 신작이다. 국내에는 좀 늦게 개봉했다. 이 영화의 포스터는 테이블에 앉아 있는 가족이 다소 놀란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고 어디를 응시하는 듯한 이미지로 장식돼 있다. 전혀 ‘해피’해 보이지도 않고 그들이 응시하는 상황 혹은 사건이 ‘엔드’, 즉 끝날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해피엔드〉는 끝날 것 같지 않은 상황 혹은 사건 때문에 전혀 행복하지 않은 가족 사연이 되는 셈이다. 〈해피엔드〉의 로랑 가족은 삼대가 모여 살고 있다. 행복할 것 같은데 행복하지 않은 것처럼 시끌벅적할 것 같은데 전혀 안 시끌벅적하다. 가족들끼리 별로 얘기도 나누지 않고 식사 시간 정도가 아니면 각자의 방에 틀어박혀 나올 생각도 안 한다. 이들 가족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그러니까, 할아버지부터 손녀까지 모두 겉보기와 다르게 내면이 상처로 곪아 있다. 할아버지 조르주(장-루이 트린티낭)는 병든 아내 수발을 들다 견디다 못하고 몰래 질식사시킨 비밀을 안고 있다. 그 자신도 스스로 죽을 기회를 엿보고 있다. 아버지 조르주의 사업을 이어받아 회사를 경영 중인 딸 앤(이자벨 위페르)은 아들 피에르(프란츠 로고스키)가 못마땅하다. 회사 일을 맡겼는데 미숙하게 처리해서다. 엄마가 매사 꾸중 일색이니 피에르도 사는 게 영 뭐 같다. 조르주의 아들이자 앤의 오빠 토마스(마티유 카소비치)는 이혼 경력이 있어도 다시 재혼해서 잘살고 있는 것 같다. 실은 외로운 밤이면 밤마다 채팅으로 다른 여자와 몰래 음란한 대화를 시도한다. 토마스의 전처와 살고 있던 딸 에브(팡틴 아흐뒤엥)는 엄마가 사망하자 어쩔 수 없이 아빠 토마스의 집으로 들어온다. 영 무표정인 게 마음에 걸리는데 할아버지 조르주처럼 에브도 자살 시도를 한다. 로랑가(家) 삼대에 내리는 하네케 감독의 진단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들은 지나칠 정도로 스스로에게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적대적인 것들은 전부 차단하고 자신을 두렵게 만드는 모든 것들을 무시합니다. 우리는 사회 안에서 함께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지만, 오직 개인적인 문제에만 집중할 뿐이죠.” 가족조차 개인의 문제에만 함몰해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돌보지 않는다면 좋지 아니한가(家)? 좋지 아니하다.
타인의 고통에 둔감해진 사회 골치 아픈 문제, 신경 쓰고 싶지 않은 사람, 기분 나쁘게 하는 시선 등을 피하기 위해 현대인들이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게 소셜 미디어다. 하네케 감독은 이 문제를 주의 깊게 살핀다. “나르시시즘적인 경향은 우리 삶의 일부분이 됐습니다. 소셜 미디어 또한 우리들의 일상이 돼 이에 일조하고 있죠.” 안 그래도 토마스는 컴퓨터로 채팅을 하고 에브는 인터넷 개인 방송을 통해 가족의 치부를 드러낸다. 영화는 시작과 함께 에브가 화장실에서 세수하고 이 닦고 오줌 누고 우울증약을 먹는 엄마의 사적인 생활을 소셜 미디어로 공개하는 장면을 스마트폰 화면으로 길게 보여준다. 영상은 있되 사운드는 배제된 화면으로 우리가 느끼는 건 무감각이다. 타인의 사생활을 죄책감 없이 바라볼뿐더러 이미지 속 인물이 안고 있는 고통마저 볼거리로 즐기는 윤리 실종의 사회. 포스터 속 가족 모임은 앤의 재혼식이다. 가족이 모두 모이고 하객마저 참여한 자리에서 피에르는 엄마의 결혼을 축하하기는커녕 아프리카에서 프랑스로 넘어온 불법 이민자를 데리고 와 결혼식 분위기를 싸~하게 만든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의도는 이런 걸 거다. 가족 사이의 단절을 통해 현대 사회의 소통 부재를 비판하면서도 이를 EU라는 유럽 공동체로 더 넓게 상징해 아프리카 불법 이민자와 같은 외부인을 적대하는 이중성, 그것도 꼬집는다. 확실히 대가는 미시의 사건에서 거시의 메시지를 뽑아내는 데 능수능란한 모습을 보인다. 비판하고 꼬집는다고 해도 이는 결국 인간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는 감독의 태도를 말하는 것일 터. “저는 나이를 먹은 지금도 여전히 인간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제가 계속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인간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해피엔드〉는 칸영화제에서 또 어떤 상을 받았을까. 아무 상도 받지 못했다. 〈해피엔드〉가 다루는 내용이 굳이 미카엘 하네케가 아니라도 많이들 관심 갖는 소재라서? 그럴 수도. 그 때문에 하네케의 전작들보다 비판의 날카로움이 떨어져서? 그럴지도. 스마트폰 영상을 활용하는 게 이제는 힙하거나 새롭지 않은 방식이 돼서? 아마도. 중요한 건 상을 받고, 안 받고를 떠나 영화를 그 자체로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다. 하네케 감독의 얘기다. “영화에는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결론을 내리든 모두 맞습니다.” 당신은 〈해피엔드〉를 어떻게 해석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