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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독서의 문장들아파도 마음 놓고 아플 수 없는 사람들에게
김혼비「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저자, 에세이스트 2019년 08월호

얼마 전 한 연예인이 “건강한 몸”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 “세상 어떤 것도 내 마음대로 안 되지만, 몸은 제 의지로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일견 맞는 말처럼 보이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매우 폭력적인 말이다. 일단 몸을 바꿀 수 있으려면 ‘의지’도 필요하지만, 건강을 챙길 수 있을만한 환경, 시간, 에너지, 돈 등이 필요한데, 과로사가 속출할 정도로 노동 강도가 세고 몸을 갈아 넣어도 ‘평균’을 유지할 수 있을까 말까 한 경쟁사회 구조 속에서 이미 너무나 많은 것들을 ‘의지’ 하나로 버티고 돌려막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일까. “세상 어떤 것도 내 마음대로 안 되”기 때문에 몸을 제 의지로 바꿀 여력이 없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훨씬 많다. 게다가 세상에는 제 의지로 바꿀 수 없는 몸을 갖고 있는 사람들 또한 많다.
무엇보다 건강을 ‘의지’의 문제, 개인의 ‘노오력’으로만 환원시켜버리면, 건강하지 않은 몸은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이 되는데, 정말 그런가. 언젠가부터 모두가 아픈 사람에게 ‘아픈 건 네 탓’이라고 하고, 아픈 자신에게 ‘아픈 건 내 탓’이라고 한다. 아픈 사람들은 늘 죄책과 자책 사이를 오간다. 아픈 몸 때문에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게 미안할 뿐만 아니라, ‘네가 평소에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네가 지나치게 예민한 성격이라서’ ‘네 평소습관이 잘못 돼서’ ‘네가 게을러서’, 그러니까 ‘네.가. 잘.못. 살.아.서’라고 비난하는 사회적 시선 앞에서 쉽게 무력해진다. 그 결과 ‘아픈 몸’을 수치스러워하고 미워하고 벗어나야 할 ‘비정상적인 상태’로 스스로도 낙인찍는다. 이런 “질병의 개인화”를 두고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의 저자 조한진희는 이렇게 말한다.

질병의 개인화는 생활습관에 관점을 집중시키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사회와 구조의 문제는 희미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심지어 아픈 이들은 자기 관리에 실패해서 자신과 가까운 이들을 힘들게 만들었다는 자책감에 빠진다. 이는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직접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주체적 힘이 사라지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질병의 개인화 논리를 더욱 강화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그 효과는 무엇일까? - p.88

무서운 건, 이렇게 만들어진 ‘아픈 몸’에 대한 혐오는 비슷한 특질을 갖고 있는 다른 사회적 약자 혐오의 밑바탕이 되기 쉽다는 점이다. 환자, 장애인, 노인, 아이 같은, 허약하고 주변 도움이 필요하며 ‘비효율적인 몸’들에 대한 혐오로 말이다. 따라서 ‘아픈 몸’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결코 개인적일 수만은 없다. 사회적 약자를 향한 기본적인 태도로 이어지기에 매우 정치적이고 민감하다. 이를테면, 우리가 아픈 것을 끊임없이 변명하고 미안해하는 태도는 개인의 영역 너머 어떤 문제로 이어질 수 있을까? 그 답으로 저자 조한진희가 시사월간지 『워커스』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인용해본다.
“중증 장애인 친구가 한 명 있다. 내가 몸이 아팠을 때 그 친구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며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친구가 ‘네가 미안하면 나는 죽어야겠네?’라고 말했다. 내 사고가 ‘정상성’을 기반에 두고 있었기에 나온 말이었다. 이후 내가 미안하고 민폐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 친구 말을 떠올린다. 의존하는 사람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특권적 사고방식이다. 우리는 모두 의존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배려는 그렇게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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