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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꽃보다 아빠독립운동
유신재 코인데스크코리아 편집장 2019년 08월호

아내의 사촌 동생이 자신의 결혼식에서 우리 쌍둥이들이 반지를 전달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코웃음을 쳤다. 낯가리기 챔피언 쌍둥이들이 결혼식 화동이라니. 당연히 못하겠거니, 하고 아이들한테 결혼식 화동 영상을 인터넷에서 찾아 보여주며 물었더니 웬걸, 덥석 하겠단다. 하얀 드레스가 너무 입고 싶었던 거다.
돈 주고 드레스 빌려놓고 못 입고 남의 결혼식에 폐 끼치면 안 될 일이니 몇 번을 물었다. 잘 생각해보라고, 모르는 사람들이 잔뜩 쳐다볼 텐데 괜찮겠냐고. 쌍둥이들은 그래도 할 수 있겠단다. 결혼식 며칠 전부터 집에서 리허설을 했다. 아내와 내가 입으로 “딴딴따단” 결혼행진곡을 부르며 거실을 가로지르면 아이들이 뒤따라왔다.
지난달 초 드디어 결혼식이 열렸다. 아침부터 심기 경호에 만전을 기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었지만 쌍둥이들은 저희끼리 하객들 사이를 지나 신랑 신부에게 무사히 반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너무 긴장해서 꽃잎을 뿌리며 전진하지는 못했지만(꽃잎 뿌리기를 담당한 둘째는 “내가 아끼는 꽃잎”이라서 뿌리지 않았다고 했다) 관중들의 반응은 무척 좋았다(이후 결혼식 화동 예약이 몇 건 더 들어왔다). 참 대견했다. 엄마 아빠 손을 더 잡지 않고 모르는 얼굴들 사이를 가장 길게 걸은 날이었다.
결혼식 다음 주말에 이케아를 갔다. 이케아에는 부모들이 편하게 쇼핑을 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한 시간 동안 맡아주는 키즈카페 비슷한 시설이 있다. 지난번에 갔을 때 그곳을 발견한 아이들이 꼭 가보고 싶다고 했다. 엄마 아빠 없이 둘이서만 놀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지만 문제없다고 했다. 아무렴, 결혼식 화동도 한 아이들인데 그걸 못할까. 키 90센티미터 이상, 혼자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 조건은 충족했다.
쌍둥이들을 들여보내 놓고 아내와 팔짱을 끼고 매장을 활보했다.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 없었다. 드디어 우리에게도 맘 편히 쇼핑할 수 있는 날이 왔구나, 쌍둥이들이 정말 많이 컸구나, 감격스러웠다. 하지만 감동의 쇼핑은 10분을 가지 못했다. 아이들이 입장하자마자 멈춰서더니 한 발짝도 떼지 않고 가만히 서 있다며 전화가 왔다. 부랴부랴 되돌아갔더니 쌍둥이들은 울음을 터뜨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왜 그러냐 물으니 저희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장난감들이 재미가 없어 보였단다. 직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어떤 장난감들이 있는지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았다. 엄마 아빠랑 떨어져 있는 게 무섭다는 건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과 1학년짜리 두 아들을 둔 직장동료 김외현 기자는 최근에 처음으로 아이들 아침밥을 차려놓고 부부가 외출해서 조조영화를 보고 왔다고 자랑했다. 부모 눈치 안 보고 실컷 유튜브를 즐긴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또다시 외출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우리 부부에게도 그런 날이 오려면 5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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