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과 ‘휴가’라는 게 이를 악물어야 할 만큼 힘들고 부담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단 걸 아이들이 생기기 전에는 전혀 몰랐다.
지난달 초 어린이집이 방학을 했다. 맞벌이 부부에게 어린이집 방학은 곧 강제휴가 혹은 강제육아다. 보통 어린이집들은 방학이 적어도 일주일은 된다는데 쌍둥이들이 다니는 직장 어린이집의 방학은 사흘뿐이다. 직원들이 휴가를 짧게 쓰고 열심히 일하기를 기대한 것인지, 집에서 24시간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고 직원들을 배려한 것인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의도가 무엇이든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고작 사흘이라서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내 없이 나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휴가 말이다. 회사 일 때문에 일 년에 두어 차례 해외출장으로 집을 꽤 길게 비우는 것이 아내한테 미안하기도 했다. 마침 아내의 육아 스트레스도 최고조에 달했다. 아내는 출산 후 단 하루도 쌍둥이들과 떨어져 지낸 적이 없었다. 올해 방학은 내가 어떻게든 혼자 아이들과 지낼 테니 당신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시라, 짐짓 비장하게, 쌍둥이 아빠가 베풀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를 지금 베푼다는 폼을 잡으면서 아내에게 말했다.
제대로 폼을 잡으려면 혼자 애들을 데리고 캠핑이라도 다녀와야겠지만 폼이 뭐가 중요한가. 사흘 동안 다섯 살 쌍둥이를 어떻게 혼자 감당한단 말인가. 우리 엄마한테 지원 요청을 했다. 사흘 동안 부모님 댁에서 신세를 지기로 했다(참고로 우리 부모님은 서울에 계신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처음으로 쌍둥이 손녀들이 집에 자러 온다는 소식에 흥분하셨다. 아이들이 편히 잘 수 있도록 새로 매트를 장만하셨고, 오랫동안 미뤄왔던 욕실 보수공사까지 하셨다.
아이들은 처음으로 엄마와 떨어져 잔다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세상에서 요리를 제일 잘하는 할머니가 맛있는 음식을 많이 해주실 거다, 정말 재미있는 수영장에 놀러 갈 거다, 수영장에서 햄버거랑 감자튀김도 먹을 거다, 할아버지가 장난감도 사주실 거다, 온갖 미끼를 던져 아이들을 간신히 설득했다.
하룻밤을 자고 찾아간 수영장은 쌍둥이들 마음에 꼭 들었다. 할아버지가 새로 사주신 튜브에 앉아 물에 들어간 첫째는 “아빠, 여름엔 수영장이 딱이다!”라며 흡족해했다(아이들이 ‘딱이다’라는 표현을 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두어 시간 놀겠거니 한 예상은 빗나갔다. 쌍둥이들은 수영장에서 꼬박 여섯 시간을 놀았다. 신나게 논 건 좋았지만 신나게 논 후유증이 그리 클 줄은 몰랐다.
쌍둥이들은 밤에 번갈아가며 고열에 시달렸다. 첫째는 발바닥에 염증이 생겨 병원을 다녀와야 했다. 컨디션이 안 좋으니 툭하면 짜증을 냈고 서로 아빠 품에 안기겠다며 다퉜다. 중도 포기하고 아내한테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아이들에게 해열제와 항생제를 먹이며 이틀을 더 버텼다(아내는 그동안 일반인처럼 여유로운 출퇴근을 즐겼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예민해진 아이들 비위를 맞추느라 정말 고생하셨다.
사흘 밤을 자고 차에 아이들을 태워 거울로 멀어지는 부모님 모습을 보며 ‘손주가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말의 참뜻을 깨우쳤다. 집에 돌아와 아내한테 쌍둥이들을 넘기고 동네 사는 친구들을 불러 술을 마시러 나갔다. 늦은 밤, 엄마가 아이들 안부가 걱정돼 연락을 하셨다. 술 마시러 밖에 나와 있다 했더니 “그래, 실컷 마셔라” 하셨다. 뭔가 짠했다. 그래서 실컷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