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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염승선의 브랜드텔링나는 작가다
염승선 「애플은 왜 제품이 아니라 브랜드텔링에 집중했을까?」 저자 2019년 11월호


입 밖으로 나온 말은 허공에 퍼졌다가 사라진다. 사라지는 말을 붙잡아두기 위해 사람들은 말을 나타내는 ‘문자’라는 기호를 만들고 자신의 생각과 지혜를 후대에 전하기 위해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이렇게 남겨진 기록은 사람들의 생존과 진화에 기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통찰을 글로 남기고 다른 이가 자신의 글로 도움받는다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글을 쓰는 전문 작가는 아니지만 ‘세상을 향해 나만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 싶은 사람들’이 적지 않고 그 글이 지닌 가치로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본 브랜드가 있다. 바로 ‘브런치(brunch)’라는 플랫폼 서비스다.
2014년 어느 날 다음카카오(현재는 카카오로 변경) 카페팀과 블로그팀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날 회의 주제는 ‘향후 콘텐츠를 담기 위한 플랫폼 서비스 개발’이었다. 출퇴근 시간, 휴식 시간 등 짧은 시간에 손안의 모바일 기기로 콘텐츠를 씹듯이 즐기는 스낵컬처(snack culture)가 대세인 시대, PC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카페와 블로그는 사람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수용하기에 역부족이라는 것을 성장세의 둔화로 직감하고 있었다. 다음카카오의 새로운 플랫폼을 위해선 씹을수록 맛있는 스낵처럼 다시 읽어도 좋은 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한 프로젝트팀은 글을 짓는 사람에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깨끗한 종이 한 장과 필기감 좋은 볼펜 한 자루
프로젝트팀이 처음 던진 물음은 ‘누구를 위한 서비스인가?’였다. 제일 먼저 한 일은 브랜드를 사용할 페르소나를 정하는 일이었다. 체험을 리뷰하는 사람, 감상을 리뷰하는 사람, 전문 지식에 대해 쓰는 사람, 작품을 소개하는 사람, 일상을 기록하는 사람, 홍보와 정보를 함께 쓰는 사람, 정치·시사에 대해 쓰는 사람 등 일곱 가지 페르소나를 선정했다. 페르소나 선정이 끝나고 브레인스토밍, 인터뷰를 통해 일곱 스타일의 페르소나 모두에게 필요한 핵심은 생각을 제대로 옮기기 위해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작가 앞에 마치 깨끗한 한 장의 A4 용지와 필기감 좋은 볼펜 한 자루가 놓인 것처럼 오롯이 생각을 글로 옮기는 데 집중할 수 있는 간결한 에디터를 설계했다. 필요 없는 기능은 없애고 필요한 기능도 글쓰기 흐름에 방해되지 않도록 기능이 필요한 시점에 나타나도록 개발했다.
글 쓰는 것 이상으로 신경 쓴 것은 사진과 그림 등을 배치하는 꾸미기였다. 글이 아름답게 보이도록 마치 전문디자이너가 편집한 것처럼 보이는 모습을 정의하고 타이틀 커버, 그룹 이미지, 화면에 꽉 찬 이미지 등의 기능을 개발했고 가독성을 위해 멋진 글꼴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무엇보다 웹과 모바일 앱에서 모두 글을 쓰고 볼 수 있도록 만들어 글쓴이가 스스로 독자가 돼 리뷰할 수 있도록 했다.
브랜드를 개발하기에 앞서 페르소나를 선정하는 것은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사람으로서의 관점에서 사용하는 사람의 관점으로 시선을 돌리고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람들에게 공통의 기준점을 제시함으로써 쓸데없는 논쟁 없이 긍정적인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브랜드를 사용하는 사람이 왜 브랜드를 선택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브랜드 존재 이유를 만들어주는 중요한 일인 것이다.
 
플랫폼 서비스가 열어준 진짜 ‘작가’가 되는 길
2015년 6월 22일 펜 모양의 ‘b’자 로고에 베타가 붙은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브런치’가 오픈했다. 그리고 나만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은 사람들을 ‘브런치 작가’라 부르며 초대하기 시작한다. 평소 써놓은 글과 함께 자기소개를 적어서 신청하면 모두를 선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 기준에 의해 평가하고 선정했다.
선정된 ‘브런치 작가’들은 심플하고 쉬운 브런치 에디터에 다채로운 생각들을 펼치고, 다양한 주제로 쓰인 글을 본 사람들은 마음에 드는 작가와 작가의 글에 구독신청을 하며 ‘독자’가 됐다. 그들은 현실에서 하는 일이 달라도 적어도 브런치라는 공간에선 독자가 있는 작가가 된다. 오픈한 지 2개월이 지난 후 브런치는 작가들에게 ‘당신의 글이 책으로 출간됩니다’란 메시지와 함께 ‘브런치북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꿈으로만 간직했던 진짜 ‘작가’가 되는 길이 플랫폼 서비스에 의해 열린 것이다.
브런치는 각자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글로 짓는 작가들의 생태계를 만들었다. 생각으로 씨앗을 뿌리고 글로 가꿔 책이라는 열매를 수확하는 작가의 생태계를 만든 거다. 그곳에선 더 많은 수확을 위해 땀 흘리고 노력하는 작가들이 좋은 작품을 쏟아내며 생태계를 키워가고 있다. 브랜드를 통해 만들어진 생태계에서 자신의 열매를 가꿔나갈 수 있는 브랜드야말로 진정 살아 있고 앞으로도 살아남을 브랜드가 아니겠는가.
얼마 전 브런치는 10명의 에디터에게 10명의 작가를 선정하게 하고 10개의 책을 선보이며 로고에 있던 베타를 없애고 정식 플랫폼 서비스가 됐음을 알렸다. 정식 플랫폼이 되기 전 브런치는 이미 2만8천여명의 작가 군단이 ‘글’로 자신의 세상을 가꿔가는 브랜드가 됐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브랜드 생태계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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