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이후 우리 경제의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일본의 수출규제일 것이다. 일본이 외교적 갈등을 통상분쟁으로 대응한 것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 부분이고, 지금이라도 외교적 노력을 통해 해결되길 간절히 바라는 바다.
정부는 산업경쟁력 제고에 주력하고
기업은 수입선 다변화로 대응
일본 정부는 7월 1일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불화폴리이미드 등 3개 품목에 대해 수출규제를 발표했고, 8월 2일에는 우리나라를 백색국가에서 배제해 전략물자 등 1,194개 품목이 수출규제를 받게 됐다. 즉 수출허가가 포괄허가에서 건별허가로 변경돼 허가 유효기간 축소(3년→6개월), 허가 처리기간 장기화(1주→90일), 허가서류 증가(2종→최대 7종+α), 신청방법 복잡화(전자→우편·방문도 요구 가능) 등으로 수입기업의 시간과 비용 부담이 증가하고 공급망의 안정성이 저해되는 등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
수출허가 신청의 처리기간이 3개월이기 때문에 백색국가 제외품목의 규제영향(8월 28일 시행)은 아직 평가하기 이른 점을 감안해, 이번 기고에서는 3대 수출규제 품목(7월 4일 시행)을 중심으로 규제영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3대 수출규제 품목은 우리나라 주력 산업인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에 주로 사용되는 것으로 대일 수입의존도가 매우 높은 품목이다. 우리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의 세계시장 점유율(2017년 기준)은 각각 14.6%와 18.9%로 조선업(33.1%)에 이어 각각 2위와 3위이며, 일본 수입 비중(2018년 기준)은 불화수소가 41.9%, 포토레지스트가 93.1%, 불화폴리이미드가 84.5%로 매우 높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해 정부는 우리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한편, 산업경쟁력을 근본적으로 제고하기 위해 3가지 축을 중심으로 대응하고 있다.
먼저, 우리 기업의 피해 최소화다. 정보 제공을 위해 전용 홈페이지를 구축(전략물자관리원, japan.kosti.or.kr, 8월 2일~)하고, 전국 주요 지역에서 기업설명회를 개최(7월 29일~)하고 있다. 또한 주요 정책을 논의·결정하기 위해 관계장관회의를 가동하는 한편, 민관합동 소재·부품 수급대응 지원센터(7월 22일) 등 부처별 대응센터를 설치해 기업애로를 해결하고 있다. 아울러 수출규제 품목의 단기적인 공급 안정화를 위해 대체수입처 확보를 지원하는 한편, 수입품의 보세구역 내 저장기간을 연장(2개월→필요기간)하고, 화학물질 등의 인허가 기간 단축, 특별연장근로 시간 인정 등을 통해 국내 생산의 확대를 지원하고 있다.
둘째, 우리 산업의 근본적 경쟁력 강화를 위해 산업적 중요성 등을 고려해 소재·부품·장비 전체 품목(4,708개) 중 100+α 품목을 선정해 올해 추경(2,732억원), 내년도 예산안(2조1천억원) 등 2022년까지 향후 3년간 5조원 이상을 집중 투자할 계획이다. 한편 경쟁력 강화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소재·부품전문기업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전면 개정해 장관급 협의체인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위원회’와 특별회계를 설치하고, 기술개발 전 주기 지원 강화, 수요·공급기업 간 및 대·중소기업 간 협력모델 지원 등을 추진한다.
셋째, 문제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과 함께 대응노력도 지속하고 있다. 수출규제는 정치적 동기에 의한 무역제한이기 때문에 GATT 협정 위반을 이유로 WTO에 제소했다(9월 11일). 또한 일본을 기존의 ‘가’ 지역에서 ‘가의2’ 지역으로 변경하는 방향으로 전략물자 수출입고시도 개정했다(9월 18일).
우리 기업들도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해 소재·부품의 안정적 확보와 함께 일본 의존도 심화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먼저, 수입선 다변화다. 불화수소와 관련해 A사는 대만·중국 등으로부터 불산액 수입을 확대하고 있으며, 일부는 품질 테스트 완료 후 8월 말부터 생산공정에 투입하고 있다. B사도 미국 등에서 불화수소 가스 수입을 확대하고 있으며, 양산라인에서 제품을 테스트 중이다. 또한 A사는 벨기에 회사(일본 합작사)를 통해 EUV(극자외선) 포토레지스트를 수입해 양산라인에서 제품을 테스트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둘째, 국내 대체생산의 확대다. 불화수소와 관련해 C사의 신규 공장 완공(충남 공주, 9월 말)으로 불산액 생산능력이 2배로 확대[불산액 생산능력: (8월 말)2만5천톤/연→(연말)5만톤/연]돼 일본산의 상당 부분이 대체 가능할 전망이다. D사도 불화수소 가스 신규 공장을 증설 중이다(경북 영주, 연말 완공 예정). 또한 기술 수준이 높아 아직 국내 생산이 되지 않고 있는 EUV 포토레지스트의 경우 E사에 2022년까지 개발 완료를 목표로 2019년 추경예산 41억원을 투입해 R&D를 진행 중이다(경기도는 E사의 생산시설 조성을 위한 화성 동진일반산업단지 계획을 9월 5일 승인). 한편 디스플레이용 포토레지스트의 경우에는 제품 요구품질이 상대적으로 낮아 조만간 국산 대체가 가능할 전망이다. 불화폴리이미드와 관련해서는 국내 기업은 원료인 불화폴리아믹산을 일본으로부터 수입(수출규제 품목 미해당)해 불화폴리이미드를 생산 중이다. F사는 올해 양산체계를 마련했고, G사도 10월 말 신규 공장(충북 진천)을 완공할 예정이다.
한편 일본 기업들은 수출규제에 따른 매출감소와 대형 거래처 상실 등을 우려해 자구책을 마련해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고순도 불화수소와 관련해 A사는 연내 완공을 목표로 중국 저장성에 공장을 증설 중이며, EUV 포토레지스트의 경우 B사는 벨기에 합작법인을 통해 한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수출규제가 실제 생산 차질로 연결된 사례 아직 없어
일본 정부의 부분적인 수출허가와 함께 우리 기업의 자구노력, 정부지원 등으로 일본 수출규제가 실제 생산 차질로 연결된 사례는 아직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또한 수출규제 3대 품목이 전체 대일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고(1.8%, 2019년 7월), 현재까지 대일 수입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편 글로벌 투자은행[노무라·HSBC(9월 4일), 골드만삭스(9월 9일) 등]들도 일본 수출규제가 수출금지는 아니며, 한국 기업들이 수출규제에 적극 대응하고 있어 한국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3대 품목 수출규제가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현재까지는 제한적인 것으로 보이나, 정부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총력 대응할 계획이다. 3대 품목과는 달리 일본의 백색리스트 제외 품목(1,194개)에 대한 규제영향(8월 28일 시행, 3개월 수출허가 심사기간)은 11월 28일 이후에 그 정도를 알 수 있으며,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경쟁력 제고는 일본의 수출규제와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사실 소재·부품 산업의 대일 의존도를 낮추는 정책은 1978년 수입국 다변화를 시작으로 2001년에는 「소재·부품전문기업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정과 함께 그간 R&D에 5조4천억원을 투자했지만, 2018년 대일 무역적자(241억달러) 중 93%(224억달러)가 소재·부품·장비 산업일 정도로 어려운 과제다. 이에 정부는 이번 한일 무역분쟁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소재·부품·장비 산업을 포함해 전반적인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계기로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