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인류가 여행을 하는 데 이용하는 비행기, 기차, 자동차, 여객선 등 동력을 사용하는 이동 수단 이전에는 자전거, 요트, 카약, 스키 등의 무동력 이동 수단으로 여행을 했다. 그보다 더 이전엔 오직 ‘걷기’만이 여행의 방법이었다. 걷기란 여행의 꽃이자 가장 원초적이고 오래된 여행의 방법인 것이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에 따르면 20세기 프랑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류를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여행하는 인간으로 정의했다고 한다. 듣고 보니 ‘걷기’란 오래전 인류가 현대의 후손에게 남긴 유산이었다.
“인류는 걸었다. 끝도 없이 걷거나 뛰었고, 그게 다른 포유류와 다른 인류의 강점이었다. 어떤 인류는 아주 멀리까지 이동했다. 아프리카에서 출발해 그린란드나 북극권까지 갔고, 몽골에서 출발한 어떤 그룹은 얼어붙은 베링해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가 마야와 잉카, 아즈텍 문명을 일구었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중)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현생 인류는 기후변화 등 여러 가지 생존을 위협하는 원인들을 피해 동서남북으로 흩어지며 조금씩 인류의 영토를 넓혀야만 했고 그중에서도 모험심 많은 일부는 더욱 멀리 여행을 떠나 지금처럼 전 세계에 인류가 골고루 퍼지게 된 것이었다. 생존을 위해 조금씩 이동하며 축적된 것이 인류사니, 우리 몸에는 어쩔 수 없이 이동의 유전자와 걷기의 본능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주말이면 전국의 산야는 걷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빼곡히 차지 않던가. 그리고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트레킹 장소들인 네팔의 히말라야 산군,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 북유럽의 아비스코 국립공원, 미국의 존뮤어 트레일, 남미의 파타고니아 산군 등은 세계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사시사철 북적인다.
종종 걷기 여행을 즐기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여러 번의 걷기 여행 경험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네팔의 쿰중 지역을 트레킹 했을 때다. 천재지변이라 하기엔 조금 민망하지만 어쨌든 작은 재앙을 만났고, 그와 동시에 걷기의 환희를 느꼈던 여행이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산이 있는 쿰중에서 보름 동안 트레킹을 하기로 계획하고, 스무명 남짓이 탑승하는 프로펠러기를 타고 루클라 공항에 첫발을 내디뎠다. 시골의 버스터미널이 연상되는 낡고 허름한 공항을 나서자 트레킹 용품을 파는 상점 몇 개만이 있을 뿐 곧장 트레킹 코스가 시작됐다. 길을 따라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스마트폰의 전파가 터지지 않았고 눈 돌리는 곳마다 절경이 펼쳐지는 첩첩산중이었다. 나의 목적지는 일주일 정도 걸어야 도착하는 고쿄 마을. 고쿄에 도착해 3일 정도 머물다 하산할 계획이었다. 트레킹에 나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셋씩 짝을 지어 다녔고 포터를 고용해 배낭을 맡기고 자신은 가벼운 몸으로 다녔다. 하지만 나는 혼자였고 포터도 고용하지 않았다.
걷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더 많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꾸역꾸역 산길을 올랐다. 그렇게 오르다 힘이 다할 때쯤 만나게 되는 마을에서 여장을 풀고 하루씩 묵어가는 것이 여행 방법이었다. 7일째 밤을 보냈던 어느 마을, 아침에 일어나니 눈보라가 치고 있었다. 하늘은 잔뜩 흐렸고 안개가 가득해 먼 곳은 보이지도 않았다. 하루만 더 올라가면 목적지인 고쿄에 도착하는데 난감했다. 어쨌든 올라갈 수도 내려갈 수도 없는 날씨라 숙소에 머물면서 하루를 더 보냈다. 다음 날엔 다행히 하늘이 맑게 갰지만 모든 길이 눈에 덮여 지워져 있었다. 함께 마을에 고립됐던 외국인 몇 명은 어쩔 수 없이 헬기를 불러 하산했다. 나도 결정을 해야만 했다. 일단 계곡에서 떠온 물을 끓여 커피를 내렸다. 그리고 ‘길’에 대해 생각했다.
길은 누군가 먼저 지나간 사람들의 발걸음과 흔적이 쌓여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었다. 지금은 세상의 모든 길이 눈에 덮여 있지만 누군가 지나가면 길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있는 마을에서 고쿄로 올라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행자라면 엄두를 내기 어려웠을 것이고, 현지인들은 굳이 고쿄에 올라갈 일이 없는 듯했다. 점심때까지 기다려봤지만 다니는 사람은 전혀 없고 야크 몇 마리만이 눈을 헤치며 풀을 뜯어 먹고 있었다. 나는 용기를 내 스스로 길을 만들기로 하고 숙소를 나섰다. 가다가 두렵거나 위험하다면 내가 만든 발걸음을 따라서 돌아오면 되는 것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길을 낸다는 건 너무나도 막막한 일이었다. 과연 어디로 가야 고쿄에 닿을 수 있을까? 길이 없는 세상을 개척하며 걷는 일이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과 닮아 있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헤매며 걷다가 나처럼 길을 만들며 내려오는 사람들을 만났다. 외국인 트레커와 그를 안내하는 현지인 가이드였다. 어디서 오는 길이냐 물으니 고쿄라고 했다. 내가 만든 길과 그들이 만든 길이 만나 고쿄로 가는 길이 열린 순간이었다. 이제 그들이 낸 길을 따라 조금 더 안전하게 고쿄로 갈 수 있게 됐고, 그들도 내가 만들며 온 길의 도움을 받을 것이었다. 길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오는 사람과 가는 사람의 발걸음이 만나 다져지며 더욱 단단하게. 비록 눈이 녹으면 사라질 길이라 해도.
해 질 무렵 가까스로 고쿄에 도착해 마을에 단 하나 있는 숙소를 찾아 들어갔다. 이런 날씨에 누가 올 거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주인과 며칠째 숙소에 묶여 있던 트레커 몇 명이 호들갑을 떨며 맞이해줬다. 배낭과 외투를 받아줬고, 어서 따뜻한 난롯가로 오라고 손짓해줬고, 망고주스를 데워 와서는 ‘웰컴주스’라며 피로를 녹이라고 했다. 눈밭을 헤치며 길을 만드는 것의 지난함을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예상치 못한 환대 속에 얼어 있던 몸과 마음이 스르륵 녹아내렸다. 고행은 환희로 바뀌었고 나의 내면은 알 수 없는 용기로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오래전 인류의 생존본능은 우리를 호모 비아토르로 만들었다. 여행이란 낯선 세계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길을 찾아 떠나는 일이다. 그러니 여행자는 길 위에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다운 인류의 선구자다. 영어 단어 ‘way’가 길을 뜻하기도 하지만 방법과 방향을 뜻하기도 하는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여행이 만드는 길은 두 다리가 나아가야 할 길뿐만 아니라 안갯속과 같은 우리 인생이 나아가야 할 방법과 방향을 알려주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행 갈 궁리를 하고 있거나, 짐을 꾸리고 있거나, 여행지의 길 위에 있는 여러 사람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호모 비아토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