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는 세계경제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한국이 지난 60여년간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20세기 후반 호황을 누린 세계경제와 적극적으로 통합했기 때문이다.
세계경제는 20세기 후반부터 60년 가까이 호황을 누렸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침체’로 전환됐다. 대침체는 10여년 동안 계속된 후 끝나는 듯 했지만, 지난 1~2년간 미중 무역갈등, 유럽연합의 혼미 등으로 다시 어려운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 대침체에 따라 60여년간 진행되던 세계화 추세도 역전됐다. 세계경제는 20세기 전반 대공황과 두 차례 세계대전 등을 겪으면서 분배가 크게 향상됐지만, 1980년대 이후 선진국을 중심으로 분배가 악화되기 시작해 20세기 전반의 변화를 겪기 이전으로 돌아가게 됐다. 2008년 위기를 계기로 분배를 교정하려는 움직임이 나올 것으로 기대됐지만, 실제로 그렇게 된 경우는 없다시피 하다.
한국은 세계경제 호황기에 일찍 편승해 고도성장을 이뤘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성장률이 떨어진 데다 2008년 이후 대침체하에서 성장률이 더 떨어졌다. 대침체가 진행되면서 일찍이 보지 못한 총수요 부족 때문에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한국은 최근 미중 무역갈등, 유럽연합의 혼미 등으로부터 주요 선진국 중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외환위기 전 한국은 분배도 비교적 평등해서 ‘형평을 수반한 성장’을 하고 있었지만, 외환위기 후 일자리 창출 부진과 노동시장 이중구조 심화 등으로 분배가 크게 악화됐다. 한국의 기업저축률이 높고 기업저축이 매우 불평등하게 분포돼 있다는 사실까지 감안하면, 가처분소득 기준으로 한국의 분배 상태는 OECD 국가 중 가장 나쁜 몇 나라에 들 가능성이 크다.
총수요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재정을 확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자본시장 개방으로 통화정책의 자율성이 크게 제약받고 있는 상태에서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재정정책을 써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심화되는 세계경제의 불확실성 속에서 수출 의존도를 줄이고 내수 비중을 늘리는 방안도 된다.
분배를 개선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분배를 개선하는 것은 성장에 도움이 된다. 가난한 사람들의 한계소비성향이 높은 만큼 당장 총수요 증가에 도움이 되고, 장기적으로는 가난한 사람이 건강과 교육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사회구성원 간 신뢰가 향상돼서 공급 능력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총수요 확대와 분배 개선만으로 성장률을 올릴 수는 없다. 성장 자체를 촉진하는 ‘혁신’과 결부돼야 한다. 그러나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하는 경제에서 혁신이 활발하게 일어나기는 어렵다. 분배를 개선하면 혁신을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났더라도 기업가나 과학기술자가 될 수 있는 재능이 사장되지 않게 할 수 있고,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면 기업가가 한 번 실패해도 재기할 수 있는 바탕이 될 수 있다.
이런 정책 방향은 세계적 추세에 비춰 어떤가? 그것은 바로 지난 10여년간 세계적으로 성장이 침체하고 분배가 개선되지 않는 상태에서 많은 나라에서 주창돼온 ‘포용적 성장’의 내용이다. 지금도 대다수 선진국의 학계와 정계를 중심으로 포용적 성장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이 포용적 성장에서 성과를 낸다면 세계적으로 새로운 경우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한번 시도할 가치는 있다. 실제로 다른 적절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