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를 우리나라 출판 단행본의 시대라 일컫는다. 초년생으로 사회에 막 발 디딘 내가 느낀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 출판의 새로운 힘, 그것이었다. 이는 4·19 세대의 문학 분야 진입이 중요한 바탕이었다. 이 큰 흐름은 지금까지 우리 문화 전반을 이끌어왔고 오늘도 막중한 잠재적 힘으로 실재하고 있다. 그때 나는 ‘세상은 책’이고 ‘책은 세상’이라는 믿음을 점점 깊이 다져가는 중이었다. 나와 책 디자인과의 만남에 너무나 뚜렷하게 결정적 순간이 떠오르곤 한다.
그것은 1977년 초봄에 있었던 민음사 박맹호 사장과의 만남이다. 1975년 모종의 학생운동과 관련돼 대학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던 나는 떠밀리듯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그곳은 출판계였다. 대학신문 편집장으로 신문편집을 했던 내게 운 좋게도 ‘와리츠케(당시 우리 출판계에서는 지금의 디자인을 그렇게 일본말로 불렀었다)’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아직 디자인이라는 말이 시민권을 얻기 전이었다. 그러니 지금 말로는 북디자이너인 셈이라고나 할까?
첫 직장 ‘월간 소설문예’를 거쳐 ‘신구문화사’에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는 편집과 교정을 보는 일이 책 만드는 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하루는 옆자리에서 같이 근무하던 직원이 따로 자리를 하자며 나를 조용히 불러냈다. 그는 편집과 교정뿐만 아니라 온갖 책 만드는 일을 하는 나를 눈여겨봤던 것이다. 그때 나는 단행본은 물론 잡지류, 앨범, 신문까지 소위 ‘와리츠케’했다. 그 직원은 내가 있을 곳이 여기가 아니라 민음사라며 민음사 박맹호 사장을 소개시켜줬다.
‘과연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걱정도 됐지만, 그 자리에서 나는 책 디자인만 해도 정식 직원 대우를 해줄 수 있겠는가 물었다. 당시엔 북디자이너를 독립된 직업으로 여겨주지 않았음은 물론이었다. 당시 민음사 편집부 직원이 세 명이었고 그중 한 사람이 디자인만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우려는 당연했다.
“그러슈” 박 사장은 너무나 간단한 한마디로 입사를 허락했다. 그리고 짜장면으로 점심을 함께했다. 한국 단행본 시대를 열고 이끌어온 박맹호 사장은 1970년대 한국문화의 흐름에 가장 민감하고 확신에 찬 안테나를 가지고 있었다. 그 덕분에 나는 북디자이너라는 첫길을 내디딜 수 있었다.
출판디자인을 직업으로 삼고 처음으로 만든 것은 1977년 한수산 작가의 장편소설 「부초」의 표지다. 단색 톤에 단지 두 글자만 넣어 만든 「부초」의 표지는 당대 표지 디자인의 통념을 무너뜨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목 글자로 책 내용을 느끼게 한다는 것은 내게 아주 묘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이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책을 편집기획하고 출판했다.
그러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책도 생명체처럼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종이에 잉크만 묻혔다고 책이 되는 것이 아니다. 책은 그 격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 그 작업은 기능만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디자인에 대한 깊은 성찰이 따라야 한다. 나는 그 답을 인문학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이를 디자인 인문학이라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