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몰라도 반 고흐는 안다. 인상주의는 몰라도 반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와 ‘초상화’ 그림들은 안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반 고흐의 그림만큼이나 그의 광기에 대해서도 알려진 일화가 있다. 동료 화가 폴 고갱이 떠나려 하자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귀를 자른 사연 말이다. 빈센트 반 고흐를 향한 일반의 인식이다. 그처럼 반 고흐는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 살아생전 그는 세상을 바라보며 보통 사람이 보지 못한 무엇을 포착한 걸까.
자연과 사람 앞에서
자연을 목격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해와 나무와 꽃과 밀밭과 까마귀와 별이 빛나는 밤 등을 보았다. 사람을 경험했다. 미술상을 운영하는 탕기 영감을 만났고, 동생 테오와 주고받던 편지를 전달했던 우체부 룰랭과 교류했고, 가셰 박사에게서는 정신병 치료를 받았다. 1886년부터 1888년까지, 머물고 방문했던 프랑스 파리와 아를과 생 레미와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반 고흐가 그리고 기록하고 남긴 대상이었다.
반 고흐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그가 남긴 그림의 숫자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꽤 많다. 동생 테오와의 관계에 주목한 〈빈센트〉(1990), 반 고흐가 37살의 나이로 죽기 전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보낸 마지막 67일을 따라가는 〈반 고흐〉(1991), 〈셜록〉으로 유명한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빈센트 반 고흐로 출연하는 〈반 고흐: 페인티드 위드 워즈〉(2010), 반 고흐의 그림 130점을 애니메이션으로 구성한 〈러빙 빈센트〉 등이 있다.
그럼 또 왜? 제목에서부터 반 고흐 영화임을 드러내는 〈고흐, 영원의 문에서〉는 무엇 때문에 다시 반 고흐에 관해서 다뤄야 했을까? 이전의 반 고흐 영화들과는 어떤 차별이 있는 걸까? 〈고흐, 영원의 문에서〉는 자연을 목격하고 사람을 경험했던 반 고흐의 시선에서 전개된다. 그 자신이 화가이기도 한 연출자 줄리언 슈나벨 감독 왈, “관객들이 영화를 보는 동안 반 고흐 삶 전체를 체험하게끔 하고 싶었다.”
〈고흐, 영원의 문에서〉는 반 고흐(윌렘 대포)가 1인칭 시점으로 보는 장면이 꽤 된다. 생 레미의 생-폴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창밖으로 바라보는 ‘포플러’와 아를에서 고갱과 함께 지내기도 했던 ‘노란 집’과 마지막 생을 보냈던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의 ‘까마귀가 나는 밀밭’ 등을 보는 장면에서다. 누가 예술가 아니랄까봐 자세하게 관찰하려는 목적에서였는지 보는 대상과 밀착한 시선이 자연을 대하는 반 고흐의 태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특이하게도 근접해 바라보는 대상의 주변이 필터 처리한 듯 뿌옇게 처리돼 있다. 인상주의라는 게 그렇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정물화처럼 묘사하지 않고 시선의 주관성을 적용해 작가의 개성을 뚜렷이 인장으로 새긴다. 그래서 반 고흐가 본 뿌연 필터 느낌의 시선은 그림에서 불이 타오르는 듯한 붓의 필체를 담고 그것이 원을 그리듯 리듬을 타고 있어 그림이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떠나간 사람들 앞에서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진실한 예술은 없다.” 반 고흐가 남긴 말이다. 반 고흐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강했다. 그런 바람과 다르게 〈고흐, 영원의 문에서〉의 반 고흐는 주변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그게 원인이 돼 친구가 떠나고 그럼으로써 상처를 받았다. 테오의 주선으로 고갱과 함께 아를의 노란 집에서 60여일간 지냈지만, 그림에 대한 견해 차이로 언쟁이 잦아지면서 반 고흐는 정신 이상 증세가 심해졌다.
귀를 자른 사건 이후 고갱은 반 고흐를 떠났고 반 고흐는 정신병원에서 생활하게 된다. 퇴원을 바랐던 반 고흐는 일종의 심사 차원에서 천주교 신부를 찾아가는데 그의 그림을 본 신부는 “당신이 왜 화가라고 생각하죠?”라며 의아한 반응을 보인다. 인상주의를 이해하지 못한 신부는 반 고흐의 그림이 지닌 예술성을 알아보지 못했고 그를 향한 부정적인 시선으로 더욱 속을 뒤집어놨다.
반 고흐는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홀로 남겨진 듯한 감정을 어떻게 작품으로 승화했는지를 이렇게 밝힌다. “불안스레 어두운 하늘 아래로 끝없이 펼쳐진 밀밭이다. 나는 거기에 슬픔과 고독의 극치를 표현하려 했다.” 〈고흐, 영원의 문에서〉의 반 고흐의 시선에서 필터 처리된 부분은 혹시 사람을 향한 애정으로 채우고자 했으나 공란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그의 마음속 풍경은 아니었을까.
반 고흐는 또 테오와의 서신에서 이렇게 덧붙였다. “내가 보는 것을 사람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어.” 하지만 그의 그림은 살아생전 단 한 점만 팔렸다. 사람들은 반 고흐 그림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가 죽고 나서야 그의 그림을 알아봤다. 반 고흐는 죽었지만, 그림으로 다시 생을 얻었다. 반 고흐 생애 마지막 2년을 다룬 〈고흐, 영원의 문에서〉의 반 고흐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그림으로 얻은 영원의 시작이다. 그래서 줄리언 슈나벨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만들고자 했던 것은 화가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의 생명에 관한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