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시작된 일본의 수출규제는 결과적으로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도 상당한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사태를 통해 양국이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살펴보는 것도 2020년 새해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일본의 수출규제 원인이 징용문제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대법원은 2018년 10월, 일제 강점기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1인당 1억원씩 배상하라는 최종 판결을 내렸다. 즉 일본 기업의 불법행위를 전제로 한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대상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반해 일본 정부는 그동안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모두 해결된 문제이며, 강제징용 피해에 대해 개인에게 배상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일본 언론보도에 따르면,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는 대법원 판결에 대한 대항수단으로 내려진 것으로 보인다. 경제산업성의 신중론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관저가 수출규제 조치를 강행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자유무역의 중요성 등을 강조한 오사카 G20 정상회의 이틀 뒤인 7월 1일 발표했고, 이는 7월 4일 참의원 선거공시를 앞둔 시점이라 일본 내 여론도 의식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정의 배경에는 한국의 주력산업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 사용되는 핵심 소재이자 일본 의존도가 높은 3개 품목을 수출규제하게 되면 한국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숨어 있었을 것이다.
경제뿐 아니라 외교, 안보까지 부정적 영향
일본이 수출규제의 수단으로 사용한 전략물자 수출통제제도는 핵무기와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거나 제조할 가능성이 있는 국가에 이에 관련된 물자를 수출할 수 없도록 통제하는 제도라는 점에서, 이를 외교갈등에 대한 대응으로 사용한 것은 명백하게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는 양국 모두에, 특히 일본에 더 큰 피해를 준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일본이 수출규제를 한 7월 4일 이후 한국의 대일본 수출 감소율(–6.6%)은 대일본 수입 감소율(–12.1%, 이상 7~10월 평균)보다 작다. 관광통계도 일본을 방문한 한국 관광객은 41.0% 감소한 반면, 한국을 방문한 일본 관광객은 3.0%(이상 7~10월 평균) 증가했다. 결국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한국보다 일본이 더 큰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한국과 일본은 양자 또는 다자 외교, 그리고 WTO, IMF 등 국제기구에서 자국 입장의 타당성과 타국의 부당함을 설명함으로써 양국 모두 국제사회에서 이미지가 나빠지는 피해를 입고 있다. 한국은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tit for tat)’ 전략으로 일본을 WTO에 제소(2019년 9월)하는 한편,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2019년 9월)함으로써 양국 간 신뢰는 더욱 악화되는 모습이다.
더 나아가 한국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동향 등 군사정보를 직접 공유하는 제도인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2016년 11월 체결)를 종료하기로 결정하는 등 안보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즉 한국 정부는 2019년 8월 “일본이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등 안보환경에 중대한 변화가 초래”돼 협정을 지속하는 것이 우리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지소미아를 종료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다만 11월 22일 한국과 일본은 지소미아 종료통보의 효력을 정지하되 무역관리 정책대화를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일본의 수출규제는 과거 역사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해 잘못을 반복하는 전형적 사례일 것이다. 일본도 중국이 영토분쟁을 이유로 희토류를 수출규제하는 조치를 경험했다. 2010년 9월 중국 어선이 중·일 간 영토분쟁이 있는 센카쿠열도 해역에서 일본 순시선을 들이받고 중국 선장은 나포됐다. 이에 중국은 센카쿠열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과 함께 선장의 석방을 요구하는 한편, 일본의 주력산업인 자동차, 전자, 기계, 화학 등에 필요한 희토류 수출을 자연보호 명목으로 수출규제(수출쿼터 축소, 수출세 인상)했다. 2009년 기준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의 97%를 생산하고 있었고, 일본은 수입 희토류의 86%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외교·안보 문제를 빌미로 주력산업에 필수적인 품목을 수출제한했다는 측면에서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유사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이 중국 선장을 석방하는 등 단기적으로는 중국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중장기적으로는 일본이 기술개발, 대체 수입처 확보 등을 통해 희토류의 중국 의존도를 대폭 낮추는 한편, WTO 제소에서 승소(2014년 8월)해 전화위복의 기회가 됐다는 평가가 많다. 일본의 희토류 대중 의존도는 2009년 86%에서 2015년에는 55%로 크게 감소했다.
한 국가, 한 기업에 대한 과도한 의존 경계해야
한국도 지난 40여년 동안 나름대로 노력은 했지만 소재·부품·장비의 과도한 일본 의존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한국 정부는 일본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1978년 수입국다변화제도(심각한 무역역조를 겪고 있는 국가의 수입품목 중 다른 나라에서도 수입이 가능한 품목은 해당국으로부터 수입을 규제한 제도, 1999년 폐지됨)를 시작으로 2001년 「소재·부품전문기업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약칭 소재부품기업법) 제정과 함께 일본 수출규제 이전까지 R&D에 5조4천억원을 투입했다. 그러나 만성적 대일 의존구조가 지속돼 2018년에는 대일 무역적자가 241억달러에 달하고, 이 가운데 소재·부품·장비 부문의 적자가 93%(224억달러)를 차지했다.
한편 한국 기업들도 글로벌 밸류체인에서 단기적 비용 측면에 집중해 소재·부품·장비의 과도한 일본 의존에 따른 리스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일본은 한일 공동 생산품목 931개 중 세계시장 점유율이 50% 이상인 품목이 309개에 달할 정도로 오랜 기술축적을 통해 높은 독점력을 가지고 있으나, 우리와는 과거사 문제 등으로 언제든지 갈등이 현재화될 수 있는 나라인 것도 사실이다. 또한 대법원 판결 이후 양국 간 외교채널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수출규제 조치의 파장에 대한 일본의 오판(miscalculation) 가능성에 대한 지적도 많은 편이다.
결론적으로 경제적으로 상호의존적인 두 국가가 이번과 같은 무역분쟁을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외교문제를 경제제재로 대응하려는 시도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결국 제재 대상국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어 양국 모두 패자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경우에도 외교적 대화채널은 유지해 오판에 따른 분쟁 가능성을 막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국가, 한 기업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단기적으로는 이익이 될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대체 수입처 및 핵심 기술 확보 등 플랜 B가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