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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로드리고의 카메라 로드내 삶의 검색어를 바꾸기 위하여
박 로드리고 세희 촬영감독 2020년 01월호

 

 
여기에 여행 글을 연재하는 일이 3년째에 접어들었다. 매달 한 번씩 행복한 고민에 빠지기를 1년 더 하게 된 것이다. 무엇을 쓸까? 고민하는 것은 세상의 모든 작가가 다 하는 고민일 테고, 나는 유난한 고민을 하나 더 한다. 바로 ‘어디서 쓸까?’다. 여행지의 허름한 게스트하우스에 틀어박혀 쓰기도 하고, 출장지의 호텔 라운지에서 쓰기도 하며, 장거리를 이동하는 비행기 안에서 쓰기는 물론이고, 지방으로 출장가며 카메라 장비가 잔뜩 실려 있는 승합차 안에서 쓰기도 한다. 그렇게 살아온 게 인이 박여서인지 집에서 쉬는 날 원고를 쓰게 되면 부러 차를 몰아 일산, 남양주, 수원 등지를 다니며 카페에 자리를 잡고 쓴다. 글이 잘 안 풀리기라도 한다면 더 멀리 가야 한다. 평택이나 속초까지도. 전국을 도는 것은 물론이고 세계의 이곳저곳을 다녀야 하는 촬영감독이라는 직업에 더해 천성적으로 여행을 좋아하니 내 삶에는 거처란 것이 따로 없다.
언젠가 한번은 히말라야의 외진 곳을 트래킹하고 있었다. 휴대전화의 전파가 잘 안 터지는 지역인데 어쩌다 탁 트인 곳을 지날 때면 한 번씩 신호가 잡혀 인터넷도 하고 밀린 연락도 주고받을 수 있었다. 그 여정의 막바지 언젠가였다. 이틀 만에 전파가 잡혀서 보니 중요한 메일이 와 있었다. 드라마 촬영을 제안하는 것이었고 대본이 첨부돼 있었다. 그날 밤 나는 히말라야의 어느 외진 산장에서 대본을 검토했고 긍정적인 답변을 보냈다. 예정된 일정보다 며칠 빨리 귀국하는 비행기 표를 새로 사야 하긴 했지만, 귀국해서 드라마 촬영에 임할 수 있었다. 그 일은 나의 필모그래피에서 중요한 지점이 돼준 드라마 데뷔작이었다. 인터넷이 되기만 하면 일과 여행의 경계를 어느 정도는 허물 수 있는 시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른바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적인 삶.
디지털 노마드는 인터넷과 통신수단, 노트북 등을 사용해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고 세계 어디서든 생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근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현대적 유목민인 것이다. 휴양지 해변의 선베드에 누워 생과일주스를 홀짝이며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다가도 큰 파도가 치면 바다로 달려 나가 서핑을 즐기고, 비가 내리면 카페로 자리를 옮겨 창밖에 펼쳐진 이국의 젖은 풍경을 감상하며 자유롭게 일하는 사람들, 지난주에는 파리의 에펠탑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작업했고 다음 주에는 런던의 빅 벤을 바라보며 일하는 것을 실천하는 사람들. 디지털 노마드는 작업에 필요한 몇 가지 장비와 약간의 공간만 있으면 세상 어디라도 일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인터넷이 인류에게 선물한 새로운 형태의 삶이다.
인터넷은 우리 삶의 전반적인 모습을 바꿔놨는데, 여행의 풍속 또한 예외일 수 없어서 인터넷 없는 여행은 이제 상상하기 힘들다. 예전에는 어디 여행이라도 가게 되면 가장 먼저 서점에 들러 가이드북을 사야 했는데 요즘엔 여행지의 유심 구매 방법을 확인하거나 로밍 서비스가 되는 지역인지 먼저 확인한다. 구글맵이 있다면 여행지의 얽히고설킨 골목길에서도 길을 잃을 염려가 없고, 예약한 장소에 시간 맞춰 도착할 수 있게 해주니 얼마나 감사한가. 로마를 여행하며 콜로세움과 판테온에 대해 잘 모른다 해도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 앞에 서서 검색해도 늦지 않았으므로. 즉석에서 연혁이나 건축 양식과 같은 정보가 줄줄 쏟아진다. 주변의 맛집까지 포함해.
최근엔 지인이 일본에서 요트를 타고 한국으로 오게 됐는데, 요트를 썩 잘 모는 사람이 아니어서 그도 그렇고 주변에서 걱정이 많았다. 일본이든 한국이든 근해에서는 휴대전화 전파가 터지니 걱정이 덜한데, 먼바다에 나가게 되면 전파가 끊기니 그의 안위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위성신호를 사용하는 통신장비를 사용하기로 했다. 대단하게 들리긴 해도 손바닥만 한 그 장비는 의외로 저렴했다. 덕분에 대한해협 한가운데를 지나는 그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었고, 그의 위치는 자동으로 추적돼 내 스마트폰에 지도와 함께 표시되고 있었다. 안도와 함께 격세지감이 몰려왔다. 십 수년 전 베이징의 키르기스스탄 대사관에 가서 비자를 받아야 하는 일이 있었다. 인터넷이 시원찮던 시절이었는데 대사관을 찾을 수 없어 일주일 넘게 엉뚱한 곳을 헤집고 다녀야만 했다. 서울로 친다면, 한남동에 있는 키르기스스탄 대사관의 위치를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는가? 키르기스스탄이라는 나라의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요즘이라면 검색 한 번에 정확한 위치와 연락처, 교통수단 및 소요시간까지 십 초도 안 걸려 알게 됐을 것을. 인터넷이 여행의 고통을 많이 덜어줬고, 우리는 그저 여행을 잘 즐기기만 하면 되는 시절이다.

 

 
일본의 현대 철학자이자 저명한 논객인 아즈마 히로키는 「약한 연결: 검색어를 찾는 여행」이란 책에서 여행이란 “검색어를 바꾸는 행위”라고 규정한다. 인간은 환경의 산물이기 때문에 일상적 삶 속에 있을 때는 검색어 자체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을 통해 의도적으로 환경을 바꾸지 않고서는 새로운 검색어를 입력할 수 없다고 한다. 우리가 인도를 여행하지 않는다면 힌두교, 타지마할, 바라나시, 자와할랄 네루와 같은 검색어를 입력할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검색어가 일상을 벗어나면 알게 되는 것이 많아지고 보이는 세계가 달라진다. 인터넷에 세상의 모든 정보가 있다곤 하지만 특정한 검색어를 입력해야만 내게 소용 있는 정보가 되는 것 아니던가. 검색창에 입력할 단어를 얻기 위해서는 몸을 움직여 여행을 해야만 한다. 아즈마 히로키는 책을 통해 제발 여행을 떠나라고 호소한다. 자아 찾기가 아닌 ‘새로운 검색어’를 찾기 위해서, 더욱 깊숙하게 인터넷에 빠져 비로소 자신 앞에 놓인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그리고 아주 유효하고 중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여행하면서 새로운 검색어를 손에 넣었을 때 그 자리에서 바로 검색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집에 돌아가면 다시 검색해야지’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검색할 리가 없으니까. (중략) 현지에서는 생각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색해서 그 자리에서 견문을 넓히자. 관광지에서는 고개를 수그리고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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