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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글로벌 비즈니스 리포트가깝고도 먼 나라 멀고도 가까운 나라, 러시아
김정훈 KOTRA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무역관장 2020년 02월호



한국 사람들에게 가깝고도 먼 나라를 물어보면 보통 일본을 먼저 떠올린다. 경제적으로는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를 비롯해 정치적·외교적으로도 민감한 사항들이 항상 존재해왔다. 그런데 러시아에 대해 물어보면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일 년 내내 추울 것 같은 겨울왕국에서 시작해 공산주의, 지나친 음주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사실 러시아는 중국, 일본과 함께 우리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지만 감정적으로는 먼 나라로 인식돼왔다. 그러나 러시아는 현대·기아차가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시장이며, 한류 아이돌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어 러시아를 이끌어갈 미래 세대에 친한(親韓) 이미지가 심어지고 있는 나라다. 또한 최근 블라디보스토크에 한국 관광객이 급증하는 등 우리나라에서도 러시아의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어 앞으로 더욱 가까워질 나라기도 하다.
러시아는 영토가 넓은 만큼 다양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한국보다 더 동쪽에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폴란드 바르샤바보다 더 서쪽에 있는 칼리닌그라드까지 11개의 시간대가 존재해 매년 새해 시작을 알리는 푸틴 대통령의 신년사가 극동지역에서 방송될 때 서쪽은 아직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을 낮 시간이다. 북부지역은 겨울철 온도가 영하 70도 가까이로 떨어지지만 동계올림픽 개최지였던 소치는 1월 평균기온이 영상 3.7도 정도로 제주도의 평년기온인 영상 5~7도보다 약간 낮은 수준이다.

제조업 육성, 수출 고부가가치화에 나서
러시아에 대한 이미지만큼이나 러시아경제도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아직까지 한국의 대러시아 교역액은 전체 교역액의 3%도 안 되는 수준이고, 한국의 해외직접투자 누계액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0.5% 수준이기 때문에 러시아경제가 우리 국민들에게 체감되는 정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러시아는 2019년 우리나라의 국가 전체 수출이 약 10% 감소한 상황에서 6%가량 수출이 증가한 수출 효자시장이다.
이러한 수출 효자시장인 러시아의 경제상황이 최근 그리 밝지만은 않은 상황이어서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해 말 주요 글로벌 경제연구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의 2019년 실질 경제성장률은 1.1% 수준으로 2018년 2.2% 대비 절반 수준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이유는 2019년에 러시아의 부가가치세가 기존 18%에서 20%로 상승하면서 가계지출이 감소한 점,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소비 특수가 종료된 점, 주요 외화 수입원인 원유의 국제가격이 하락한 점 등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2014년 크림반도 병합 이후 수년간 서방의 경제제재로 손해를 입은 러시아로서는 이러한 저성장 기조 아래서 경제성장률을 높일 성장동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KOTRA에서 제시하는 우리 기업 진출의 기회요인은 크게 비즈니스 투자환경의 개선, 현지화 및 자국 산업 육성 수요의 증가, 디지털경제 수요, 수출제품의 고부가가치화 수요의 증가다.
러시아의 비즈니스 투자환경을 보면, 기업환경평가(Doing Business) 순위가 2011년 세계 123위에서 2019년 28위로 수직상승했다. 러시아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서방의 경제제재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자국 제조업 육성을 통해 수입에 의존하는 산업구조를 개선해야 하고 경쟁력 있는 선진 기술 전수 및 투자유치를 통해 일자리를 확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현지화 및 자국 산업 육성정책으로 완제품 경쟁력 향상을 위한 소재·부품·장비 분야 협력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우리도 일본의 수출규제가 이슈가 되면서 소재·부품 분야의 국산화를 위한 협력의 대안으로 러시아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처럼 러시아의 기초과학기술을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수출의 입장에서 보면 아직까지 러시아에서 중국산 제품에 비해 한국산 제품이 훨씬 높은 품질경쟁력을 가진 것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제조업 육성에 필요한 정밀기계류, 산업설비, 의료, 조선기자재 등의 시장진출 기회를 활용해야 할 것이다.
디지털경제 수요는 러시아가 세계적인 기초과학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5G 상용화, 스마트팜 등 혁신 분야에서 기술협력이 가능하다. 삼성전자에서 러시아에 인공지능(AI) 연구소를 만든 사례나 현대모비스가 러시아 최대 IT 기업인 얀덱스(Yandex)와 자율주행 플랫폼을 공동개발하고 시범운행 계획을 발표한 것도 이러한 수요를 활용한 사례다. LG전자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연구소를 두고 모바일 등 신제품 개발 연구를 하고 있다.
수출제품의 고부가가치화는 원재료를 수출하는 경제구조에서 1차 가공을 통한 고부가가치 제품을 수출하려는 수요다. 비록 중국 등 경쟁국가 대비 가격 경쟁력에서 열위인 상황이지만 패션, 식품 등의 분야에서 ‘메이드 인 러시아(Made in Russia)’를 홍보하기 위한 러시아 정부 차원의 지원정책이 계속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조선, 항만 등 9개 분야서 협력기반 조성 노력
한편 우리 정부의 대러시아 협력 방향은 신북방정책의 나인브릿지(9-Bridge)로 대표된다. 한국과 러시아 사이에 9개의 경제협력 다리를 놔 동시다발적으로 협력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다. 일본이 대러시아 협력을 위한 8개의 협력점(8-Points)을 내세운 것보다 더 적극적인 협력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라고 볼 수 있다. 나인브릿지 분야는 조선, 항만, 북극항로, 가스, 철도, 전력, 일자리, 농업, 수산으로 단기성과 및 장기성과를 창출하기 위해 정부 역량을 집중하고 협력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단계적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어느 때보다 양국 간 상호 협력의 기회가 많아지고 있으며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러시아시장이 다시 한 번 도약할 때가 오리라 생각한다.  
우리 기업들의 러시아 수출을 지원하는 현장에서 양국 기업 간 신뢰 부족으로 거래가 성사되지 못하는 경우를 볼 때면 안타까움을 느낀다. 우리 측의 신뢰가 부족한 경우가 더 많다. 우리 기업들이 1990년대 혼란했던 러시아시장에 진출했을 당시 앞서 있던 일본 기업들과 어떻게 경쟁했던가를 생각하면 답이 나오리라 생각한다. 자칫 방심하면 지금의 우리가 30년 전의 일본이 되고 지금의 중국이 30년 전의 한국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올해는 양국 수교 3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최근 우리 기업들의 성공적인 활동은 지난 30년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이들이 수고하며 뿌려놓은 씨들의 결실이듯이, 이제는 30년 뒤에 거둘 수 있는 씨가 무엇일까 고민하고 뿌려야 할 때다. 가깝고도 먼 나라였던 러시아는 이제 멀지만 가까운 나라가 되고 있다.
러시아를 설명한 유명한 문구 중에 “러시아는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다. 러시아는 오직 믿을 뿐이다.”라는 19세기 러시아 시인 튜체프의 시구가 있는데, 이는 러시아를 이성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 상호 협력의 의지와 잠재력을 믿고 도전적으로 진출할 때 우리 기업들이 앞으로 30년간 러시아에서 거둘 수 있는 열매 또한 더욱 풍성해질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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