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으로 건더뛰기

KDI 경제정보센터

ENG
  • Economic

    Information

    and Education

    Center

칼럼
로드리고의 카메라 로드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세상천지에 고향을 두었으니
박 로드리고 세희 촬영감독 2020년 02월호


 

바다를 촬영할 때마다 매번 놀란다. 세상의 모든 색이 다 녹아들어 있는 것처럼 다채롭기 때문이다. 태양이 비추는 빛에는 사람의 눈이 감지할 수 있는 일곱 가지 빛이 들어 있는데, 그중 파장이 짧은 푸른빛만이 바다에 흡수되지 않고 반사돼 산란하기 때문에 우리 눈에는 바다가 푸른색으로 보인다. 그러나 바다는 단 한순간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 것처럼 푸른색 한 가지에 머물지 않는다. 햇빛의 강도와 기울기에 따라, 바다의 깊이에 따라,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나는 일을 하지 않을 때면 버릇처럼 여행을 가지만, 가끔은 여행이 아니라 그저 휴가를 가기도 한다. 동남아의 어디 조용한 바닷가에 가서 선베드를 빌리고 그늘에 누워서 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사진도 전혀 찍지 않고 그저 책이나 조금 읽고 맥주 두어 병을 홀짝이며 바다를 바라보는 게 전부다. 바다는 늘 다채롭고 아름다워서 일주일을 그렇게 보내도 조금도 지겹지 않다. 끝이 가늠되지 않는 바다를 보고 있자면 혼탁한 고민으로 가득하던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렇게 비워낸 가슴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희망으로 다시 차오른다. 
종종 잊고 지내는 사실이지만 지구의 70%는 바다다. 인간이 육지에다 국경선을 긋고 서로 배척하며 전쟁을 벌일 때도 바다는 땅에서 일어나는 일에 무심하게 이웃한 바다와 몸을 섞으며 하나가 되기에 바쁘다. 인간이 제멋대로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이라 구획을 나누고 다시 홍해, 지중해, 아덴만, 페르시아만 따위로 잘게 쪼개놓았지만, 바다는 육지처럼 인위적으로 나뉘지 않는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유체여서 붙잡아둘 수도 벽을 세울 수도 없다. 세상의 모든 바다는 전부 다 연결된 하나의 바다일 뿐이다. 그리고 바다는 육지와 달리 따로 주인이 없다. 국토에 인접한 12해리(22km)만을 영해로 두어 그 나라의 통치권이 작용할 뿐이고, 영해 이외의 바다는 그 누구도 소유할 수 없다. 국토로부터 200해리(370km)를 ‘배타적 경제수역’이라 해서 국가의 일부 권한이 미치기는 하지만 귀속되는 것은 아니어서 어떤 선박이라도 자유롭게 지나다닐 수
있다.
환경 오염을 생각하면 바다는 더욱더 누군가의 소유가 될 수 없는, 인류의 공동자산이다. 바다의 환경 변화는 궁극적으로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중국에서 바다로 유입된 쓰레기는 한국의 서해를 둥둥 떠다니고, 한국의 쓰레기는 일본 앞바다를 떠다니며, 일본의 쓰레기는 태평양 전역으로 퍼져 알래스카 근처의 알류샨 열도에서도 발견된다고 한다. 또한 지구온난화로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지속적으로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는데, 그 피해는 적도 부근의 여러 섬나라가 고스란히 안고 있다. 극단적인 예로 남태평양의 투발루는 9개의 산호섬으로 이뤄져 있는데, 지난 수십 년 사이에 두 개의 섬이 바다에 잠겼고 머지않아 모든 섬이 바다에 잠길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이에 투발루 왕정은 ‘국토 포기’ 선언에 이르렀고 지구 최초의 ‘생태 난민’이 돼 인접한 뉴질랜드로 해마다 수백 명씩 이주하고 있다고 한다. 몇 주 전 제주도 앞바다에선 멸종위기종인 참고래가 죽은 채로 발견돼 부검을 해보니 고래 뱃속에서 플라스틱 쓰레기, 낚싯줄, 부표에서 떨어져 나온 스티로폼, 초록색 나일론 끈 등이 끝없이 나왔다고 한다. 참고래의 활동 반경을 생각한다면, 그 쓰레기들이 비단 제주도 앞바다의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처럼 연결돼 있는 바다는 지구를 하나로 엮어낸다. 바다는 세상의 모든 방향으로 열려 있는, 어디에도 닿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수백 년 전 지금처럼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 해변에 서 있던 누군가는 여기가 세상의 끝이라 여겼을 것이고, 모험심 강한 누군가는 미지의 세계가 시작되는 지점이라 여겼을 것이다. 중세 후기의 유럽에서는 육류를 저장하고 맛을 내기 위해서 인도의 향신료가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동방으로 통하는 길목을 이슬람 세력이 막고 있어 통행료와 세금, 중계 수수료 등으로 착취당하기 일쑤였다. 유럽의 여러 나라는 육지가 아닌 바다를 통해 인도에 닿기를 바랐다.
100년이 넘는 시행착오 끝에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 항로를 개척했고, 포르투갈은 동방으로 향하는 해상 무역을 독점하며 세계 상업의 중심지가 됐다. 육지는 이슬람 세력이 막고, 바닷길은 포르투갈이 막으니 유럽의 다른 나라 입장에서는 동쪽으로 가는 모든 길이 막혀 있었다. 그런 난국에 영웅이 하나 등장했다. 당시에는 아무도 생각할 수 없었던, 서쪽으로 항해해서 인도에 가겠다는 사람이었다. 그가 바로 ‘콜럼버스’였다. 그때는 지구 구체설이 막 피어나던 시기여서 바다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것도 입증된 것이 없을 때였다. 콜럼버스의 무모한 도전 덕분에 신대륙 아메리카가 유럽에 알려진 것이었고, 그의 도전을 이어받아 삼십여 년 후 ‘마젤란’ 탐험대가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성공해 비로소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입증하고 신대륙 너머에 있는 태평양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나는 바다를 보면 언제나 가슴이 뛴다. 바르톨로뮤 디아스, 캡틴 쿡, 로알 아문센, 토르 헤위에르달 등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바다를 향해 몸을 던졌던 탐험가이자 여행자였던 인류의 선구자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20대 초반의 나는 부산 근교의 여러 바다를 찍으며 사진을 익혔다. 바다는 정서적인 고향이어서 언제나 살가운 대상이다. 하나로 연결돼 있으니 세상의 모든 바다가 나의 고향인 셈이다.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세상천지에 고향을 두었으니.
보기 과월호 보기
나라경제 인기 콘텐츠 많이 본 자료
확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