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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전문가 기고산업정책을 다시 생각한다
성창훈 전 기획재정부 일본수출규제대응TF 실무지원반 국장 2020년 03월호
그동안 효과적인 산업정책 등에 힘입어 우리 경제는 제조업 6대 강국(중국, 미국, 독일, 네덜란드, 일본, 한국, 2018년 기준)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산업정책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 많다. 중국에서 발생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도 글로벌 밸류체인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산업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또한 지난해 큰 이슈가 됐던 일본의 수출규제는 우리 산업의 대표주자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마저도 산업생태계에 취약점이 많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근본적으로는 주력산업의 경쟁력은 하락하고 있으나 이를 대체할 신산업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이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산업통상자원부 업무보고(2018년 12월)에서 “일각에서는 산업정책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산업생태계가 이대로 가다가는 무너지겠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지정학적으로는 중국에 편중된 무역구조, 업종으로는 반도체에 과도하게 의존한 경제구조 등의 문제가 있지만, 이 글에서는 역동성(진입→성장→재편→퇴출)과 혁신성 제고의 관점에서 산업정책의 효과를 살펴보고자 한다.

제조업과 서비스업 전체 포괄 못해
첫째, 산업정책이 제조업과 서비스업 전체를 아우르지 못하고 있다. 서비스업은 고용의 70.7%(2019년 기준), 부가가치의 60.5%(2018년 기준)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 경제의 근간이다. 2013~2019년간 제조업 일자리는 12만개 늘어난 반면, 서비스업은 그 10배가 넘는 155만개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일자리가 많이 증가한 서비스업종은 보건업 및 사회복지(40.9%), 부동산업(27.2%), 예술, 스포츠 및 여가관련업(25.5%), 정보통신업(25.5%) 등이다. 앞으로도 서비스업은 경제의 서비스화 등으로 고용과 부가가치 측면에서 더욱 중요해지고, 특히 초연결과 지능화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의 진전으로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융합은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정부도 성장잠재력 확충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2000년대 이후 다양한 서비스업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산업정책은 아직까지는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모두 포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제조업정책은 산업통상자원부 중심으로, 서비스업은 보건복지부(의료 등), 문화체육관광부(관광, 콘텐츠 등), 금융위원회(금융) 등 다양한 부처로 나뉘어 있으며, 기획재정부가 이를 총괄하고 있다.
향후 산업정책은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모집단으로 해 임금수준(부가가치)이 높고, 고용이 증가하고, 미래 성장이 예상되는 중요 업종들에 우선순위를 두고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들 업종에 대해 연구개발(R&D), 세제지원, 인력양성, 정부조달 등 다양한 정책수단을 맞춤형으로 지원함으로써 정책의 효과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포괄해 종합적 시각에서 정책을 추진하면 정책의 효과성이 높아질 뿐 아니라 산업 간의 융·복합이 촉진되고, 그간의 제조업 중심 정책에 따른 불합리한 서비스업 차별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다.

산업생태계 약한 부분 보완 역할 약하고 신산업 출현 제약하는 규제 많아
둘째, 우리 산업정책은 산업생태계의 약한 부분을 보완해주는 역할이 약하다. 그동안 산업정책은 개발연대에서는 정부가 경제발전을 위해 육성하고자 하는 업종과 기업을 선정해 집중 지원했고, 최근에는 기술·인력 등 모든 업종이 공통으로 활용하는 인프라 구축에 중점을 두는 기능별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산업이 역동적으로 발전하려면 산업생태계가 잘 조성돼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산업생태계 분석을 토대로 R&D, 세제지원, 정부조달, 인력양성 등을 통해 약한 고리를 보완해줘야 한다. 신산업 등 초기산업은 정부가 생태계를 조성해야 하고, 기존산업은 생태계의 약한 고리를 보완해야 한다. 즉 R&D 예산(24조원, 2020년 기준)을 활용해 개별 기업이 담당하기 힘든 기술을 개발하고, 공공조달(123조원, 2018년 기준)은 혁신기술, 혁신제품 등 초기시장 창출을 지원해야 할 것이다. 또한 조세지출 예산(기업지원 19조6천억원, 2020년 기준)도 민간 R&D 촉진과 설비투자 등을 위한 유용한 정책수단 중 하나다. 특히 현대의 기업활동이 국제화돼 있는 만큼 글로벌 밸류체인의 변화 속에서 우리 산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을 찾고, 이를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다. 최근 미중 보호무역주의, 주요국의 리쇼어링(reshoring) 확대 등으로 글로벌 밸류체인은 약화되는 추세다.
한편 산업생태계에는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이 경쟁할 뿐 아니라 수요-공급기업 등으로 연계돼 있는 만큼 이들의 상생협력이 중요하다. 일본 수출규제에 대응해 반도체 부품 등을 공급하는 중소·중견기업과 수요 대기업 사이에 협력의 장이 열리고 있어 고무적이다. 이런 협력 분위기가 앞으로 다른 업종으로 확대되길 기대한다.
셋째, 새로운 산업의 출현과 기업의 영업활동을 제약하는 규제가 많다. 그 결과 산업의 역동성이 많이 떨어져 최근 10년간 신산업의 부상 없이 10대 주력업종(석유정제, 화학제품, 철강, 금속제품, 반도체, 전자제품, 전기장비, 기계류, 자동차, 선박)이 그대로 유지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아산나눔재단은 2017년 발표한 연구에서, 100대 글로벌 스타트업의 70%(투자액 기준)가 국내 규제기준으로는 정상적 영업활동이 어렵다고 분석했다. 특히 한국에서 불가능한 사업모델은 모두 서비스업(주로 의료·교통·게임·핀테크 업종)에 해당한다.
정부도 문제의식을 갖고 규제샌드박스제, 규제정부입증책임제, 규제자유특구제 시행 등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시장의 눈높이와는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에 정부는 규제완화의 걸림돌인 이해관계자 간의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사회적 타협 메커니즘(한걸음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한편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화학물질관리법」 등 기업의 애로사항이 많은 제도에 대해서는 그간의 시행결과를 토대로 지속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넷째, 잘못된 인센티브 구조로 인해 기업들의 성장이 지체되고, 장수기업이 많지 않아 노하우 축적이 어렵다. 중소기업을 열심히 경영해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성장하면 세제, 정책자금, 인력, 판로 등 각종 지원이 중단된다. 그 때문에 중소기업들이 현재 누리고 있는 혜택에 안주하고 성장을 기피하는 이른바 ‘피터팬 증후군’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경쟁력이 약한 중소기업에 대해서도 자금 등이 지속적으로 지원돼 좀비기업이 시장에서 퇴출되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 아울러 대기업이 되면 47개 법령에 근거해 188개의 규제를 받는다는 연구결과(한국경제연구원, 2019년 8월)도 있다.
이러한 잘못된 인센티브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중소기업 지원을 일정기간으로 제한하는 지원졸업제를 활성화하고, 초기기업과 경쟁력 있는 스케일업(scale-up) 기업에 지원하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대기업 규제는 공정경쟁의 토대가 마련되는 속도에 맞춰 점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한국 기업의 또 다른 문제점은 장수기업이 드물어 기술축적이 안 된다는 점이다. 한 예로 일본의 100년 이상 된 장수기업 수는 3만3,069개인 반면, 한국은 7개(중소기업연구원, 2016년 기준)에 그치고 있다. 가업승계의 원활화를 위한 세제지원과 M&A 활성화가 필요하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협력 강화하고 정책의 통합성 높여야
다섯째,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시너지가 약하다. 2019년 지방예산은 341조6천억원에 달하고, 이 중 산업·중소기업 예산은 5조8,423억원이다. 지난해에는 지방소비세율이 10%p 인상(11%→21%)돼 8조5천억원의 지방재정이 확충됐으며, 향후에도 지방정부의 권한과 재원이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방정부도 고용창출과 세수확대를 위해 산업육성에 적극적인 만큼 중앙정부의 산업정책도 지방정부와의 협력하에 추진돼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정된 재원으로 산업정책의 효과를 높이려면 정책대상에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포괄하고, 부가가치, 고용, 향후 발전전망 등을 고려해 중요 업종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정책의 효과성이 높아질 뿐 아니라 산업 간 융·복합이 촉진되고, 서비스업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도 해소될 것이다. 그리고 업종별 생태계를 분석해 신산업은 생태계를 조성하고, 기존산업은 생태계의 약한 부분에 R&D, 세제지원, 인력양성, 정부조달 등 정책풀에서 맞춤형 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 산업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규제는 비즈니스 기회를 원천적으로 막는 만큼 이를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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