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으로 건더뛰기

KDI 경제교육·정보센터

ENG
  • 경제배움
  • Economic

    Information

    and Education

    Center

칼럼
허남웅의 신나는 시네르네가 연기한 주디, 갈란드로 분한 젤위거
허남웅 영화평론가 2020년 04월호
 

주둥(댕)이, 아니 주디, 그러니까, 입을 나불거린다고 해서 제목이 ‘주디’인 거냐?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다. <주디>의 주인공은 노래를 불러 지금도 기억되는 스타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제목의 주디가 가리키는 건 그 주디가 아니다. 다른 의미의 주디다.

무지개 너머로 부르다
너의 이름은, 주디 갈란드. 도로시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건 <오즈의 마법사>(1939)에서 주디가 맡은 도로시 역할이 큰 인기를 끌어서다. 이 영화에서 도로시는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미국 버전의 캔디다. 캔자스시티를 강타한 회오리바람이 도로시의 집을 오즈의 나라로 날려버려~ 물설고 낯선 이곳에서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담아 “섬웨어 오버 더 레인보우(Somewhere over the rainbow)~” 노래를 부르니, 미국 관객은 희망을 잃지 않는 저 어린 것이 기특해 죽겠다며 도로시를 연기한 주디에게 우리식으로 하면 국민 여동생의 지위를 부여했다.
당시 주디의 나이는 질풍노도의 17세. ‘몹시 세고 빠르게 부는 바람(疾風)’처럼 일상에, 연애에, 먹는 것에 달려들어 ‘무섭게 밀려오는 큰 파도(怒濤)’와 같은 에너지를 쏟고 싶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는 영화사 대표와 엄마의 강압에 못 이겨 눈 뜨자마자 연기 OK, 고칼로리 음식은 NO, 연애는 절대 X, 자기 의지와 무관한 생활을 이어간 결과, 밤이면 밤마다 잠이 안 와 신경안정제를 복용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면서 보통의 생활이 힘들어졌다.
그렇다면 <주디>는 화려한 스타의 이면에서 고통받았던 배우의 삶을 폭로하는 작품인가. 이 영화의 각본을 쓴 톰 엣지의 말을 들어보자. “주디가 본인 과거의 피해자처럼 느껴지지 않게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주디는 할리우드의 생존자였으며 어떤 순간에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오버 더 레인보우(Over the rainbow)’로 희망을 노래했던 것처럼 <주디>는 무대 위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주디의 노력을 다룬다. 그래서 루퍼트 굴드 감독은 “주디 경력의 매우 특정한 두 순간, 즉 처음과 끝을 다뤘다는 점에서 각본에 이끌렸다.”
<주디>는 앞서 언급한 17세 때와 주디가 생의 마지막 무대를 가졌던 40대 중후반의 런던 시절을 리어카의 앞과 뒤 삼아 앞에서 끌어주면 뒤에서 미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40대 중후반의 주디는 17세 때 그랬던 것처럼 대중의 관심을 받는 인물이지만, 신경쇠약 증세는 더욱 심해 무대에 올라 노래 부르는 것이 힘들 정도다. 제대로 노래하라며, 하라는 노래는 부르지 않고 왜 말만 하느냐며 항의하는 관객에 때로 맞서기도 하면서 결국엔 ‘오버 더 레인보우’로 마음을 움직이는 장면은 주디 갈란드가 어떻게 지금까지 할리우드의 전설로 기억되는지를 설득한다.

인생 캐릭터를 갱신하다  
“주디는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았고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엔터테이너로 존경받았던 인물이다.”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로 분한 주디 갈란드를 <주디>에서 연기한 르네 젤위거의 말이다. <주디>의 프로듀서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노래와 연기가 모두 가능한 배우를 찾았다. 딱 한 명 있었다.”면서 르네 젤위거가 주디를 연기한 배경을 설명했다. 촬영 첫날, 루퍼트 굴드 감독은 주디가 돼 촬영장을 찾은 르네 젤위거를 보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제대로 된 배우구나. 옷만 입는 사람이 아니라 역할을 연기하는 사람이구나.’
어느 감독이, 어느 프로듀서가 자신의 작품에 출연한 가장 중요한 배우에게 극찬을 아끼지 않을쏘냐. <주디>의 공개 이후 대중의 반응 또한 ‘르네 젤위거는 주디 갈란드 그 자체’로 모이면서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의 수상자로 결정됐다. 이견의 여지가 없는 결과였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질문에는 이견이 있을 듯하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르네 젤위거의 최고 연기는 어느 작품입니까?
르네 젤위거에게는 대표작이 많다. <제리 맥과이어>(1996)로 로맨틱 코미디 요정으로 등극했고, <브리짓 존스의 일기>(2001)로 여성의 삶을 대변하는 캐릭터를 얻었다. <시카고>(2002)로 춤과 노래가 가능한 다재다능한 배우임을 증명했고 <콜드 마운틴>(2003)으로 생애 최초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리고 17년 만에 <주디>로 두 번째 아카데미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정말 어느 연기 하나, 어느 캐릭터 하나 누락하기 힘들 정도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까닭에 그중 대표작 하나, 인생 캐릭터 하나 꼽기가 쉽지 않다.
“순수한 천재성과 타고난 재능은 백만 년에 한 번 나오는 것.” 누구를 향한 찬사의 말일까. 르네가 주디에게 보내는 것이다. 만약 무덤에서 편히 잠든 갈란드가 자신을 연기한 캐릭터로 젤위거가 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관을 뚫고 나와 똑같은 평가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주디 갈란드가 ‘오버 더 레인보우’로 희망을 노래한 것처럼 르네 젤위거는 연기로 팬들에게 기쁨을 선사해서다. 이왕 관을 뚫고 나온 김에 주디 갈란드에게 르네 젤위거의 대표작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음, 쓰고 보니 너무 쉬운 답이다. <주디> 아니겠는가.
보기 과월호 보기
나라경제 인기 콘텐츠 많이 본 자료
확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