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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로드리고의 여행 한 페이지어떤 산해진미보다 간절해지는…당신의 소울푸드는 무엇인가요?
박 로드리고 세희 촬영감독 2020년 04월호
 
연초에 러시아의 항구 도시 블라디보스토크로 여행을 다녀왔다.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유럽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도시답게 일본에 가는 정도의 비행시간으로 완연히 아시아를 벗어난 도시를 만날 수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지리적으로는 아시아에 속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유럽이다. 러시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도시인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유럽대륙에 위치하니 지방 도시들 또한 유럽의 풍속을 따르기 마련이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지만 중국의 연변 조선족 자치주, 그리고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도시라고 하기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전혀 다른 세계였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음식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곳이었다. 서양식 중에서도 너무 뻔하지 않은 동유럽의 전통음식이 다양하고 킹크랩을 비롯한 해산물이 풍부하고도 저렴했으며 유제품이나 빵 또한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채로웠다. 한국, 중국, 일본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즐비했고 심지어는 북한 식당까지 있었으니 식도락가들에겐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그러나 나는 별미에 연연하지 않고 끼니를 대충 때웠다. 몇 번은 숙소에 딸린 주방에서 라면을 끓여 먹었고, 대부분은 마트에서 산 샐러드나 과일로 때웠다. 아니면 아예 굶었거나.
나는 음식을 먹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 여행이 주는 큰 즐거움 하나를 놓치고 있는 셈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던 청년시절에 여행을 다니자니 이것저것 욕망을 다 채울 수가 없어 가장 먼저 포기해야 했던 것이 식도락이었는데, 그 시절 몸에 밴 습관이 여태 이어지는 듯하다. 물론 처음에는 이국의 음식을 접하는 경험을 아주 중요하게 여겼었다. 뉴욕으로 출장이라도 가게 되면 스테이크를 비롯한 양식을 먹을 생각에 설레곤 했는데, 결정권을 가진 어른들은 매 끼니 맨해튼 한가운데에 있는 한국 식당으로 향했다. 여기까지 와서 도대체 왜, 멕시칸 셰프가 끓여낸 설렁탕에 감탄을 쏟아내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내가 동료나 후배들을 설득해 한국 식당으로 가곤 한다. 어느덧 나도 그저 익숙한 음식을 배불리 먹는 게 좋은 ‘꼰대’(?)가 된 것이었다. 몇 번의 혹독했던 경험을 탓하고 싶다.
커피와 코코아의 무역 루트를 추적하는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기 위해 서아프리카로 출장을 간 일이 있었다. 워낙 풍토병이 만연한 곳이라 제작진은 황열병, 뎅기열, 장티푸스 등의 예방접종은 물론이고, 제작진과 동행하는 전속 셰프가 제공하는 음식만을 먹는 것이 방침이었다. 음료나 초콜릿 간식까지도 셰프가 제공하는 것만 먹을 수 있고 현지에서 어떠한 음식을 사 먹는 것도 금지됐다. 꽤나 근사한 계획처럼 들렸지만 한 달 내내 제작진은 똑같은 재료로 만든 스파게티와 볶음밥을 끼니마다 번갈아 먹어야 했다. 그야말로 병에 걸리지 않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끼니였다. 다채로운 식자재를 구할 수 없는 오지였고 아프리카인 셰프가 한식 레시피를 가졌을 리도 없었다. 40~50도에 이르는 기온보다 두려운 스파게티였다. 그럴 때는 어떤 산해진미보다 된장찌개나 국밥 한 그릇이 간절해진다.
티벳을 여행할 땐 고산병을 앓은 적이 있었는데 코르크 마개 같은 것이 가슴에 걸린 듯한 통증 때문에 어떤 음식도 쉬 넘어가지 않았다. 따로 약이 없는 병이라 병원에 가도 고작 침대에 누워 쉬면서 포도당을 맞는 것이 다였다. 그렇게 이틀을 앓고 나자 배낭 구석에 있던 고추장 튜브와 봉지라면이 저절로 떠올랐다. 여행 중에 만났던 어떤 한국인이 먼저 귀국하며 유산처럼 남긴 것이었는데, 한참 혈기왕성하던 그때의 나는 1년 넘게 한국 음식을 조금도 그리워하지 않고 장기 여행을 하던 중이어서 몸이 축나자 잊고 있었던 것이 절로 떠올랐다. 밥에 고추장을 비비고 라면을 하나 먹었다고 해서 고산병이 낫진 않았지만 한결 컨디션이 좋아진 건 사실이었다.
이국의 음식에 흥미를 가지는 것도 본능이지만 반대로 몸과 마음이 힘들거나 아플 때 엄마가 해준 음식 같은 가장 익숙한 음식을 찾게 되는 것도 본능이다. 이른바 소울푸드. 어떤 문화에서는 터부시하고 먹지 않는 음식이 다른 문화에서는 아주 귀한 음식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소울푸드가 있다. 서울 어느 함경도식 냉면집에선 함경도가 고향인 사람들이 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정기적으로 모인다고 한다. 그분들에겐 냉면이 소울푸드인 것이다. 부산이 고향인 나의 소울푸드 목록에는 돼지국밥이 있다. 부산에선 정말 흔한 음식인데, 경상도를 벗어나면 만나기 힘든 음식이란 걸 알았을 때 받았던 문화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지금은 부산에 가게 되면 첫 끼니로 꼭 돼지국밥 하는 곳을 찾는다. 부산에 건네는 일종의 인사 같은 나만의 작은 의식이다.
또 나는 베트남 쌀국수와 중국어로 ‘진저로스’(정확한 표기는 칭자오러우쓰)라 하는 고추잡채를 즐긴다. 베트남을 여행하며 좌판 식당에 쪼그려 앉아 우리 돈 500원 정도 하는 쌀국수를 함께 먹던 현지 친구들을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았지만 쌀국수는 응당 이렇게 먹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듯 손으로 라임을 꾹 짜서 내 몫의 쌀국수 위에 뿌려주던 친구들을 어찌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중국을 여행하며 겨우 알아낸 음식 이름이 진저로스였는데, 채 썬 고추와 돼지고기를 볶은 간단한 음식이었다. 식당마다 맛의 편차가 적어 실패할 확률이 낮았고 무엇보다 저렴했다. 매일 점심 때 진저로스 한 접시를 시켜 절반만 먹고 남은 절반은 싸달라고 해서 배낭에 넣고 다녔다. 그러면 저녁엔 공기밥만 하나 사서 끼니를 해결할 수 있으니.
지금 생각하면 무슨 청승이었나 싶지만 그때는 돈을 아껴 여행을 길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 시절의 가난한 여행을 추억하며 나는 여전히 진저로스를 즐기니 쌀국수와 진저로스도 내 소울푸드 목록에 당당히 들어간다. 진미라 할 순 없어도 그러한 음식의 추억이 내 안에 많으니 흡족하다. 낯선 음식보다 익숙한 음식을 선호하며, 오래된 여행자는 그렇게 나이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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