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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우리’의 정의
이민규 검사 2020년 04월호
 
로스쿨 1학년 1학기 첫 수업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두각을 나타내 보겠다는 의지로 한껏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이 꿈은 강의실에 입장한 지 2분도 채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활기차고 기세등등하던 내 머릿속은 교수님에게 질문 세례를 받자마자 겨울 들판처럼 황량해졌고, 당황한 나머지 귀를 의심할 정도의 황당한 답변들만 늘어놓았다. 그렇게 부끄러움과 패배감에 고개를 못 들고 앉아 있을 때, 교수님은 뜻밖의 반응을 보이셨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군요. 흥미로운 해석이에요.”
그건 나를 위한 배려임이 분명했다. 누가 봐도 내 대답은 일리는커녕 정답에서 천 리쯤 떨어진 것이 확실했으니까. 하지만 교수님은 그 후로도 늘 그런 식이셨다. 학생들의 주장이 논리에 어긋나거나 교수님이 생각하는 정답의 범주에서 벗어나더라도 틀렸다고 면박을 주는 대신 최대한 존중해주셨다. 그 덕분에 우리는 하나의 정해진 답이라는 결과물에 급급하는 대신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 그 자체에 조금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그 과정에서 성격과 생김새가 각양각색이듯 세상에는 다양하고 다채로운 관점과 입장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 다름 또한 나름 존중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정답과 오답의 구분, 나와 너의 경계를 허물고 얻을 수 있었던 건 보다 넓은 의미의 ‘우리’였다.
흔히들 법정을 이분법적이고 대립적인 곳이라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피고와 원고가 적법과 위법을 다투며 무죄와 유죄를 주장하는 이곳에서 양보와 이해가 끼어들 틈은 없으니까.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지다 보면 세상 또한 이분법적으로 보기 쉽다. 내 정의만 맹목적으로 좇고 내 신념만 맹신하다 보면 나와 다른 상대의 주장에는 철저히 눈과 귀를 닫게 된다. 그럴 때마다 교수님의 가르침은 나를 끊임없이 다잡아줬다. 직장에서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갈 때도.
요즘 우리 사회는 점점 더 법정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전에 없이 이념, 계급, 세대, 성별로 ‘네 편’과 ‘내 편’을 나눠 서로를 판단하고 차별하고 혐오하고 공격한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하나의 정해진 정답에 집착하기보다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 그 자체에 집중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설사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함부로 상대의 의도를 넘겨짚거나 의견을 배척하는 대신 일단 서로의 입장을 헤아려보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미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는 갈등들은 ‘네 편’과 ‘내 편’을 나눠서 해결될 일이 아니니 말이다.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의 첫걸음은 결국 우리가 ‘우리’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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