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사무실 안에서 일하는 사람보다 사무실 밖에서 일하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매장직원, 외근직원, 택배직원 등 사무실 밖에서 일하는 사람의 비중이 60%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요즘 인기 있는 대부분의 업무용 소프트웨어는 사무직 중심입니다. 매장직원, 외근직원을 위한 잘 만든 업무용 소프트웨어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샤플을 만들었습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다. 많은 창업가가 자신의 일이나 생활 속에서 불편함을 느꼈던 문제에서 창업 아이템을 찾아낸다. 이번에 소개하는 샤플앤컴퍼니(이하 샤플)의 이준승 대표도 바로 그런 경우다. 11년간 동남아를 누비며 지긋지긋할 정도로 고민했던 문제를 인공지능(AI) 기술과 스마트폰으로 해결해냈다. 그리고 멕시코 등 중남미시장을 시작으로 유럽으로까지 고객사를 확장하면서 글로벌 스타트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샤플의 흥미로운 창업스토리를 소개한다.
지긋지긋했던 11년간의 직원관리 경험이 창업 아이디어로
대학에서 유럽사를 전공하고 독일에서 경영학 석사를 마친 이 대표는 2004년 제일기획의 중국 자회사였던 오픈타이드차이나 베이징 본사에 입사했다. 여기에서 이 대표는 해외를 다니면서 거점을 만들고 사업을 확장하는 일을 했다. 대만법인, 홍콩법인, 한국법인, 그리고 동남아법인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마치 단신으로 해외시장에 나가 창업하는 것 같은 일이었습니다. 사내벤처를 만드는 경험을 한 거죠. 그때 법인의 일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고객사인 삼성전자에 가서 할 만한 일이 있냐고 물어봤습니다.” 동남아에서 가전제품 판매에 박차를 가하던 삼성전자는 이 대표에게 수많은 삼성전자 유통대리점의 직원관리 업무를 의뢰했다. “알고 보니 가장 힘든 일을 맡긴 것이었습니다.” 훗날 창업 아이디어를 얻은 계기가 됐지만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다.
11년간 성실히 업무를 잘 해오며 승진도 했지만 아무리 해도 채워지지 않는 아쉬움이 있었다. “마치 양복을 입고 수영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대기업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 제약도 있고 불편한 점이 많았습니다. 나가서 자유롭게 내 사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와 2016년 창업에 나섰다. 처음에는 대학교재 공유서비스를 시작했다. 반응이 뜨거웠고 어느 정도 주목도 받았다. 하지만 1년 동안 운영하면서 이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반복성이 떨어지고 시장이 너무 작았습니다. 1년에 두 번 학기 초에 교과서를 대여해주고 나면 끝이었어요.” 그때 “창업이라는 것은 당신이 잘 아는 문제를 풀려고 해도 될까 말까다”라는 말을 들었다. “아!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해야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사업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우리에게 제일 지긋지긋한 문제를 풀어보자”는 말이 나왔다. 동남아에서 11년 동안 일을 하면서 제일 어려워했던 문제를 풀어보기로 했다. 수많은 매장의 직원관리 문제였다.
전 세계 어디나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프랜차이즈 소매 매장이 있다. 가전제품·화장품·의류 매장 등에서 수많은 직원이 교대제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소매 유통매장들은 매장직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본사 직원이 아니고 파견회사 소속 직원이기 때문이다. 본사는 매장직원들이 언제 출근하고 퇴근하는지, 매장관리와 재고관리는 잘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하도급법 때문에 이들에게 바로 업무지시를 내리기 어려운 법적인 이슈도 있다.
“동남아의 삼성전자 매장은 백화점이나 마트에 들어가 있습니다. 남의 매장에 입점해 있으며 파견직원을 쓰는 형식이라 관리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심지어 출근을 전혀 하지 않고도 월급을 타가는 유령직원이 있을 정도입니다.”
AI와 스마트폰으로 문제 해결…중남미를 시작으로 유럽시장까지 진출
그는 본인이 골머리를 앓았던 경험을 살려 샤플이라는 스마트폰 앱으로 문제 해결에 나섰다. 먼저 가장 중요한 근태관리를 AI를 이용해 해결했다. “매장직원은 출근하면 스마트폰 와이파이를 켜고 샤플 앱을 이용해 얼굴인증을 합니다. 와이파이 정보를 대조해 직원이 매장 안에 있는지 위치를 확인하고 얼굴을 통해 본인인증을 하는 것이죠.”
그날그날 매장에서 해야 하는 업무, 일정 등도 앱을 통해 전달한다. 직원들은 매장에서 생기는 이슈를 사진으로 찍어 앱에 올려 보고한다. 비용도 영수증 사진으로 간편하게 보고할 수 있다.
앱도 아주 간단하게 만들었다. 출근하면 앱 시작화면의 가운데 큰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되는 식이다. “동남아나 남미에 가보면 누구나 페이스북을 잘 씁니다. 그처럼 이용하기 쉽게 만들어서 쓰도록 하니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직원들은 업무진행 상황 등을 현지 언어로 보고해도 된다. 현지 언어가 서툰 본사 담당자도 샤플 앱 내의 자동번역 기능을 이용해 내용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매장관리 담당자의 입장에서 제품을 만들어 예전의 고객이던 삼성전자에 제안했다. 삼성전자 동남아 지사부터 시작해 전 세계 글로벌 지사에 아무 연고 없이 무조건 문을 두드려서 앱에 대해 설명했다. 그랬더니 의외로 멕시코에서 처음 반응이 왔다. “직원관리가 너무 어렵다. 여기 와달라.” 그래서 지난 1년 동안 멕시코 출장만 여덟 번 다녀왔다. 멕시코에서 좋은 반응을 얻자 브라질 등 이웃 남미국가의 지사에서도 요청이 왔다. 콜롬비아, 페루 등 거의 남미일주 출장을 다녔을 정도다. 이번에는 삼성전자의 멕시코법인장이 승진해 프랑스로 발령나면서 따라서 유럽 진출을 하게 됐다. “내가 일할 때 이런 게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할 정도로 담당자의 고충이 풀리도록 잘 만들었으니 영업도 잘 풀렸다. 수익모델은 사용자 1인당 월 5달러에서 20달러의 사용료를 받는 것이다. 때문에 유럽·미주보다 매장직원을 특히 많이 쓰는 동남아나 인도시장으로 확장해나가는 것이 장기 목표다.
하지만 이 대표도 코로나19의 타격을 피해갈 수 없었다. 지난 3월 말부터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얼어붙으며 많은 해외매장이 문을 닫았다. 해외출장도 갈 수 없게 됐다. 그래서 국내시장을 두드려봤다. 많은 매장에서 파견직원들을 고용하는 소비재 기업을 대상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삼성 말고 다른 회사들도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샘소나이트, 발뮤다 등 신규 고객사들을 빠르게 확보하기 시작했다. 샤플이 푸는 문제가 만국공통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은 회사들이 이 기회에 업무의 디지털화를 더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시적인 타격은 있지만 오히려 앞으로 더 잘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대표는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해 “아시아에서 탑 중의 탑”이라며 “요즘 한국에서는 좋은 아이템과 팀만 있으면 얼마든지 투자를 받을 수 있고 정부 지원도 잘돼 있는 것 같다”고 높이 평가했다.
코로나19 이후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샤플처럼 현장의 문제를 적절한 AI 기술을 통해 풀어나가는 한국 스타트업들이 많이 나와 글로벌 확장을 더 많이 하게 될 것 같다. 글로벌을 겨냥하는 스타트업에 기회가 열리고 있다.